청와대 전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프란체스카 여사가 생 마감까지 즐긴 음식은…
국내외 귀빈 대접 그릇 디자인한 대통령은…
된장찌개에 두부 넣어달라고 요구한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에서 8월 28일까지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를 한다.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역대 대통령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다. 상징적 소품을 통해 이들이 권력의 정상에서 고뇌하고 결단을 내리던 순간을 보여준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공과를 다루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스토리텔링으로 우리 대통령들을 접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문타자기*이승만 대통령은 가방에 영문 타자기를 넣고 다니며 대외 전략을 수립했다. 일흔여덟 살에도 직접 자판을 두들겨 문서를 작성했다. 두 손가락을 쓰는 '독수리 타법'이었지만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 외에는 누구도 타이핑을 대신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먹는 모든 음식과 음료수는 항상 문제가 없는지 검식관이 먼저 먹어본다. 검식관은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키트도 가지고 다닌다. 혹시라도 대통령이 먹을 음식에 유해 물질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것을 제외하면 여느 평범한 식사 자리와 다를 것이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8·15 광복 뒤 귀국해 이화장에서 지냈다. 실업인 서른세 명이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마련해준 집이었다. 2009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현미 떡국을 두 그릇이나 비울 만큼 맛있게 먹었다. 현미는 지금이야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고 쌀보다 가격도 비싸지만 1950년대에는 저렴해서 서민들이 많이 먹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쌀 대신 현미를 빻아 떡을 만들고 떡국을 끓였다. 국물 요리에는 고기 대신 명태 껍질을 이용했다. 손자들이 맛없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프란체스카 여사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즐겼다.
이승만 대통령 두루마기*프란체스카 여사는 '꼬꼬뱅'도 자주 만들었다. 닭고기에 채소와 와인을 넣어 만든 프랑스 전통 요리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포도주 대신 고추장과 버터로 닭을 조리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경무대(청와대 옛 명칭)에 입성한 뒤에도 직접 빨래했고, 남편 음식도 손수 장만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전담 요리사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경무대에 입성한 양학준 씨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한식과 양식을 모두 만들었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지낸 이 대통령은 한식만큼 양식을 자주 찾았다. 일반 식당에서 일하다 은퇴한 양 씨를 채용하고 12년 동안 함께했다. 두 사람은 새벽에 같이 술국을 끓여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등 각별한 우정을 나눴다. 부인과 일찍 사별해 혼자 자주 술을 마시던 양 씨를 이 대통령이 각별하게 신경 썼던 것이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외출할 때도 이승만 대통령의 식사를 반드시 준비해놓고 나갔다. 그때마다 이 대통령은 양학준 씨에게 상을 다시 차리게 하고, 프란체스카 여사가 만든 음식을 경호원에게 먹으라고 줬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 식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비해 규칙적인 식사를 유도하고 율무차, 들깨차 등을 수시로 끓였다. 이런 정성 덕분에 이 대통령은 잔병치레 없이 늘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여든세 살에 북한산 정상에 올라 문수사 현판 글씨를 쓰고 내려올 정도였다. 항간에 인삼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실제로는 잘 맞지 않는 체질이었다고 한다.
윤보선 대통령 여행용 가방*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속옷까지 닳아 떨어지면 꿰매 입었다. 일하는 사람이 빨래를 널다 놀랄 정도로 군데군데 기워 착용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미용실에 갈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쪽을 찐 머리도 고수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한 번도 미용실을 가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씨는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국내 양산을 선물한 적이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자그마치 31년 동안 사용했다. 펴기 전에 먼저 좌우로 흔드는 등 오래 쓰는 방법까지 연구해가며 썼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팥시루떡을 좋아했다. 그는 전쟁 직후 복구할 곳이 많았던 우리나라 곳곳의 준공식을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다녔다. 자동차를 오래 타서 지치고 배가 고픈 상황에서 빠짐없이 준비돼 있었던 음식이 바로 팥시루떡. 얼마나 맛있게 느꼈는지 나중에 하와이에서도 그리워했다고 한다.
*윤보선 대통령은 1920년대에 부엌에서 종일 있어야 하는 여자들의 수고스러움을 덜기 위해 자택 한옥 구조를 서양식으로 바꿨다. 혁신적인 식사 방법도 제시했다. 한식은 대개 반찬 그릇을 한 상에 늘어놓고, 여럿이 밥을 같이 먹는 식이다. 그는 서양식처럼 개인 접시를 두고 음식을 덜어 먹게 했다. 그릇이 적게 나오고 음식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윤 대통령은 그릇에 직접 태극 문양을 넣기도 했다. 이 식기들은 청와대에서 국내외 귀빈들을 대접할 때 쓰였다.
*윤보선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술을 입에 잘 대지 않았다. 그래서 술잔을 소꿉놀이할 때 쓰이는 찻잔처럼 작게 만들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집에서 항상 옷을 단정히 입고 예의 갖춘 모습으로 식사했다. 영국 신사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품위와 품격 있는 모습을 생활 속에서 보였다.
*윤보선 대통령은 양식을 먹을 때 탄수화물(밥·빵), 단백질(고기), 채소(샐러드)가 올라와 있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서 점심으로 양식을 먹을 때는 그라탕 종류를 많이 찾았다. 그는 거의 집에서 식사를 해결해 손님 초대가 끊이지 않았다. 주로 신선로 같은 한식 요리와 함께 양식 요리를 같이 올리라고 당부했다.
윤보선 대통령 모자와 안경*윤보선 대통령은 선거 유세를 다닐 때도 장갑을 늘 끼고 다닐 정도로, 언제 어디서나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며느리 양은선 씨는 그런 시아버지에게서 의외의 면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아버님이 외출하실 때 보니까 모자에 구멍이 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님, 모자에 구멍이 났어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아버님이 '통풍되고 좋은데 뭘 그러냐'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가셨어요."
*윤보선 대통령은 아흔세 살까지 장수했다. 양은선 씨는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극적인 거 안 드시고, 소식하시고, 잡곡 드시고 그랬죠. 특별히 몸에 좋은 거를 찾아서 드시고 그러시지는 않았어요. 연세 드신 다음부터는 집 실내의 마루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잔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시면서 운동을 꾸준히 하셨고요."
박정희 대통령의 드로잉 수첩*박정희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이 되기 전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당시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그림을 배워야 했다. 박 대통령은 드로잉 수첩을 갖고 다녔다. 때때로 국정 상황을 그림으로 파악했다. 직접 스케치한 경부고속도로 계획안이 대표적 예다. 휴가지에서는 이젤에 캔버스를 올리고 구미 생가, 동해안, 서울 풍경 등을 그렸다. 방울이(스피츠)의 귀여움도 연필로 담았다. 주인이 비극적 운명을 맞은 뒤에도 본관 침실 문이 열리면 꼬리를 흔들던 반려견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음식은 손성실 씨가 담당했다. 원래는 포항제철 요리사였다. 그곳을 방문한 청와대 고위층이 실력을 눈여겨보고 데려왔다. 박 대통령은 그가 일하는 주방에 찾아와 직원들이 먹는 반찬을 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손 씨는 시골 논두렁에서 먹는 새참 같은 비듬나물 비빔밥을 올리곤 했다. 박 대통령이 어린 시절 경북 구미 상모동 열다섯 평 남짓한 초가집에서 자주 먹었던 음식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육영수 여사에게 종종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훗날 자서전 '나의 소년 시절'에서는 손 씨가 내온 비듬나물 비빔밥을 별미라고 손꼽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완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전자공학과 교수에게 쓴 귀국 요청 손편지*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식사할 때도 토속적 음식을 즐겨 먹었다. 특히 해물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좋아했는데, 반드시 두부를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점심은 간단히 국수로 해결하곤 했다. 깍두기나 김치 외에 다른 반찬은 아무것도 놓지 말라고 했는데, 건강을 걱정한 요리사들이 슬쩍슬쩍 고기를 넣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제럴드 R. 포드 미국 대통령 등 외국 귀빈이 방문하면 꼭 한식 만찬을 대접했다. 테이블에 편육, 구절판, 전유어 등을 올렸다. 외국 순방을 나갔을 때는 서양 음식이 느끼해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일이 잦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반려견 스케치*박정희 대통령은 '혼분식의 날'을 철저히 지켰다. 혼분식이란 쌀에 보리를 섞어 짓는 밥을 뜻한다. 혼분식의 날에는 보리밥이나 밀가루 음식을 먹어야 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쌀 생산량이 부족해 혼분식 장려 운동을 펼쳤다. 당시 청와대는 이를 엄격히 지켰다. 혼분식이 시행되는 수요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보리밥이나 국수를 먹었다. 한번은 박 대통령이 혼분식의 날에 수원의 한 식당에서 갈비탕을 먹었다. 식당 주인은 대통령이라고 신경 써서 쌀밥을 올렸다가 벌금을 물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막걸리로 시름을 풀곤 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반주 삼아 식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쌀이 부족해 쌀막걸리 제조를 금했다. 바로 박 대통령의 정책이었다. 그는 맛이 깊고 진한 막걸리에 종종 사이다를 타서 마셨다. 그래서 생긴 신조어가 '막사이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쓰던 각궁과 화살*박정희 대통령은 고양시에 있는 배다리술도가의 막걸리를 자주 찾았다. 대를 이어 막걸리를 빚어온 주인은 대통령에게 납품되기에 맛 못지않게 보안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전용 발효실을 마련하고, 경찰서 정보과장에서 열쇠를 맡겼다. 하지만 한여름 더운 날씨에 재료가 끓어오르면서 발효에 지장이 생겨 직접 열쇠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서거 뒤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늘 막걸리로 먼저 목을 축이고 양주를 마셨다. 막걸리에 맥주를 섞어 마시기도 했다. 교사 시절 모내기할 때 막걸리에 맥주를 섞어 마셨던 맛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키가 작은 편이라 비교적 상의가 짧은 양복을 선호했다. 또 키가 커 보일 수 있는 짙은 회색 줄무늬가 있는 양복이나 감색 양복을 즐겨 입었다. 구두 굽은 일반적인 15㎜의 두 배인 30㎜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축농증 수술 뒤 담배를 끊으면서 허리 치수가 늘었다. 그래서 수선을 맡겼는데 안감까지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있었다. 양복점에서 새로 맞추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수선만 해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애용한 카메라*청와대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재임 전까지 일본에서 수입한 자기 세트가 사용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육영수 여사는 국산 본차이나(Bon China)로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소뼈를 갈아 원료로 사용하는 반투명 도자기다. 견고하고 가벼우며 맑은 빛이 돈다. 내구성과 아름다움도 각별하다. 제작 기술은 1973년까지 국내는 물론 일본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2000개 이상 제작을 시도해 10~20개를 건질 정도였다. 육 여사는 김동수 한국도자기 전무에게 영국 기술을 배워 자체 생산해달라고 요청했다. 개발에 성공한 뒤에는 해외 공관까지 사용하게 해 우수한 품질을 알렸다.
*김동수 전무는 영국 로얄 덜튼 그룹에 연락해 의견을 구하고, 직접 2년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제휴한 끝에 동양 최초로 국산 본차이나를 생산했다. 그는 "청와대의 상징인 봉황 무늬가 새겨진 본차이나 식기를 청와대에 납품한 순간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일제 그릇도 있었고 좋지 않은 그릇도 섞여 있었는데 이렇게 모두 국산 도자기로 바꿔서 납품하니 청와대 측에서도 굉장히 칭찬하셨어요. 사실 저로서는 그때 도자기 공장을 하느라 굉장히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보람을 느꼈죠."
청와대에서 사용한 식기들*한국도자기 박물관에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사용했던 식기가 전시돼 있다. 육영수 여사의 고등학교 시절 학교 배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방울꽃 무늬가 있는 청초한 그릇과 군인 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식판 모양의 접시 등이다.
*한국도자기 박물관에는 다른 대통령이 사용한 식기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평소 화려한 한복을 즐겨 입은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식기 역시 분홍 철쭉꽃 무늬가 있는 화사한 것을 찾았다. 노태우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금색 십장생과 푸른색 테두리가 조화를 이룬 현대적이면서 고전적인 식기를 사용했다.
참고 자료 : 박병호·반보현·박연재 등 MBN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 지음·발행처 고래미디어 '대통령의 밥상(2012)', 이강래 지음·발행처 형설라이프 '대통령을 완성하는 사람(2022)', 박영규 지음·발행처 웅진지식하우스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2022)', 노무현재단 지음·발행처 한걸음더 '내 마음속 대통령(2009)', 박영규 지음·발행처 웅진지식하우스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2022)', 이명박 지음·발행처 알에이치코리아 '대통령의 시간 2008-2013(2015)'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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