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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안보니 속시원" 톡방 '조용히 나가기' 직장인들에게 인기

수정 2023.06.10 07:30입력 2023.06.10 07:30

'업무 톡방' 아닌 다른 대화방서 퇴장
"회사 사람들과 톡방에 있는 것 자체가 부담"

카카오톡(카톡)의 단체 '채팅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이 출시 이후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회사 업무 대화방을 제외한 단체 대화방(톡방)을 나왔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업무 톡방은 나올 수 없지만, 다른 방에서는 나왔다면서, "속이 시원하다"는 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상사와 같은 톡방에 있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는 의견과 함께, 갑질을 당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라는 시각도 있다.


카카오에 따르면 '채팅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이 카톡 실험실에 적용된 지난달 10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약 200만명의 이용자가 실험실을 활성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톡 채팅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은 이용자가 단체 채팅방을 나갈 때 '○○○님이 나갔습니다' 문구가 다른 참여자들에게 표시되지 않는다. 카카오톡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면 이용이 가능하다.


카카오는 "단체 채팅방의 불필요한 메시지와 알림으로 불편을 겪었던 이용자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해당 서비스의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다만 카카오는 실험실의 경우 기능 활성화가 유동적이고, 변화가 많아 구체적인 숫자는 특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해당 기능 출시 후 채팅이 뜸해졌거나, 이른바 대화방에서 퇴장할 타이밍을 놓친 단체 채팅방의 불필요한 메시지와 알림으로 불편을 겪었던 이용자들의 스트레스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카카오톡 '조용히 나가기' 기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업무 대화방을 제외한, 다른 방은 모두 나왔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회사 업무방은 나갈 수 없겠지만, 기타 불필요한 방은 나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30대 회사원 김 모 씨는 "업무 관련 톡방을 제외하고, 모두 방을 나왔다"라면서 "방을 나온 이유는 직장 스트레스가 많은데, 업무 아닌 방에서 회사 사람들과 같이 있기 싫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후반 회사원 박 모 씨 역시 "직장 동료들과는 일 얘기만 하고 싶다"면서 "다른 톡방에 일회성으로 초대받고, 불필요한 말을 일방적으로 들었는데 조용히 나왔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중간 관리자 40대 과장 차 모 씨는 '조용히 나가기' 기능 이후, 업무방이 아닌 다른 톡방에서 부서원들이 일부 방을 나갔다고 전했다. 차 씨는 "호기심으로 다른 방을 좀 둘러봤다"면서 "방을 나간 직원들도 있는데, 일 얘기하는 방이 아니니까 상관없다. 이 기능이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카톡 대화방 '조용히 나가기' 기능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업무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노동자 권익 보호 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관계자는 "소위 '업무 지시방'에서 방을 나가면 모를까, 그냥 농담 나누는 방에서 나온다고 해서, 업무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퇴근 이후 업무 지시가 없어야 하는데, 해당 기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이 상사가 있는 단톡방에서 나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일종의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한 행동이 아니겠냐는 견해도 있다. 30대 회사원 이모씨는 "직장인들이 회사 관련 톡방에서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쓰는 이유는, 그냥 회사 구성원과 엮이기 싫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사에게 지적받을 때, 인신공격성 발언도 들었는데, 같은 방에 있으면 계속 생각난다. 트라우마다"라고 덧붙였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실제로 아직 많은 직장인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 3일~10일 직장인 1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30.1%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전인 2019년 6월 44.5%에 비해 14.4%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이며, 피해자가 느끼는 괴롭힘의 정도와 수준은 오히려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자 가운데 수준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법 시행 전 38.2%에서 10.3%포인트 증가한 48.5%로 파악됐다. 피해자 34.8%는 병원 진료나 상담이 필요할 정도의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진료·상담을 받은 직장인이 6.6%, 진료·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28.2%였다.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직장인도 10.6%나 됐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59.1%)은 괴롭힘을 당했을 때 참거나 모르는 척한다고 답했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자는 32.2%에 달했다. 가해자 측에 항의(28.2%)하거나 사측·노조에 신고(4.3%),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에 신고(4.0%) 등 피해를 알리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71.0%),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17.0%)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신고한 직장인의 33.3%가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고 답했다. 객관적 조사와 가해·피해자 분리 등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답한 비율은 36.1%에 불과했다.


직장갑질119 대표 권두섭 변호사는 "무엇보다 기업의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현재 공공기관이나 일부 기업에서 하는 괴롭힘 예방 교육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먼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직급을 나눠 서 토론하는 등 실질적인 예방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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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학맥]⑦LG·효성·경방 창업주에서 이어진 재계인맥 산실 '중앙고'
수정 2023.06.12 08:27입력 2023.06.10 08:00

윤석열 정부 금융사령탑 김주현 금융위원장 배출
김종인 정몽준 허태수 최불암 등 각계 활약
고딕형 건물, 붉은 벽돌 '겨울연가' 촬영지

편집자주한국 사회는 거대한 그물망 사회다. 학연, 지연, 혈연이 얽혀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관심으르 끈 것은 학맥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하버드대, 서울법대, 충암고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이 상징적이다. 연결망은 단순한 인연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정책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아시아경제는 새롭게 주목되는 고등학교들을 중심으로 인맥을 살펴보는'新학맥'을 격주로 토요일에 보도한다. ①충암고 ②경문고 ③마포고 ④경기고⑤여의도고⑥현대고⑦중앙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중앙고)는 1908년 6월 애국계몽단체인 기호흥학회가 기호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호남학회, 교남학회, 관동학회 등이 1910년 11월 기호흥학회에 통합되면서 학회 이름을 중앙학회로 바꿨고 교명은 중앙학교로 변경했다. 1951년 중앙중학교와 분리하며 중앙고등학교로 개편됐다. 고려대학교 재단이기도 한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이 중앙고를 운영하고 있다.


중앙고는 김성수(1회·전 부통령), 이희승(2회·국어학자·전 동아일보 사장), 고재욱(3회·전 동아일보 사장), 김용식(4회·전 외무부장관), 변영로(6회·영문학자), 정진석(41회 ·전 추기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다. 관계에서는 김용식(22회·전 UN대사), 김종인(49회·전 국회의원·보건복지부 장관), 최광식(62회·전 문화부 장관), 최기영 (65회·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금융사령탑인 김주현 금융위원장(68회)도 중앙고 동문이다.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위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재무부(재정경제원, 기획재정부로 명칭 변경)를 거쳐 금융위원회에서 금융정책국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이후 예금보험공사 사장,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윤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인사청문 요청 사유에서 "공직과 민간을 아우르는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금융정책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금융시장 및 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안정적인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 금융시장 안정, 가계부채 관리, 코로나19 대응 후속 조치 등 당면한 금융 현안을 효과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금융혁신 가속화 및 자본시장 선진화 등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한 핵심 정책을 훌륭히 수행할 최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내정 이유를 밝혔었다.

중앙고 출신 주요인사.(왼쪽부터)김주현 금융위원장, 김재호 야구선수(두산베어스),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허태수 GS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승현우 서울여자대학교 총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최불암 탤런트, 김창완 가수 (밴드 산울림), 박지만 EG 회장

중앙고 출신 인사들은 재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범 LG그룹과 현대그룹에 중앙고 동문이 많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1924년 중앙고에 입학했지만 2학년을 마치고 귀향, 1931년 진주시에 LG그룹의 모태가 되는 구인회 상점을 열었다. 허진수 GS칼텍스 상임고문 (63회)이 중앙고를 나왔으며, 구자균 LS일렉트릭 대표이사 회장(67회)과 구본걸 LF 회장(67회), 허태수 GS 회장(67회)은 중앙고 동기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6남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61회)과, 7남인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64회)은 중앙고 선후배 사이다. 특히 정몽윤 회장은 사촌동생 정몽선 성우그룹 회장(64회)과 중앙고에서 함께 수학했다. 또 현대가는 아니지만 김주용 전 현대전자 사장(49회)도 중앙고 출신이고,이수호 현대중공업 전 기획실장(61회·부사장)은 정몽준 이사장과 중앙고 동기 동창이다.


13회 졸업생인 김용완 경방그룹 창업주는 1946년 경성방직 4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1970년 경방그룹 초대 회장에 올랐다. 1975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경방을 이끌었다. 6차례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맏아들 김각중 전 경방 명예회장(33회)도 중앙고를 졸업했다. 1962년 효성그룹 전신인 효성물산을 창업한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18회),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41회), 조중건 대한항공 고문(42회·전 부회장)도 동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대표이사 회장(68회),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67회)도 중앙고 출신이다.


제약, 철강, 건설, 금융계에서도 동문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고 이철배 대웅제약 명예회장(40회), 정지석 한미약품 공동설립자(51회),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66회), 백승호 대원제약 대표이사 회장(66회), 김원규 삼성제약 전 대표(67회), 윤재승 대웅제약 최고비전책임자(72회) 등이 중앙고 출신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동국제강 그룹의 장세주 회장(63회), 이필승 풍림산업 대표이사 사장(60회) 등이 활약하고 있다.


서울 중앙고등학교 전경 인촌 김성수 상.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금융계에는 고 이겸재 전 대한생명보험 회장(20회)을 비롯해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57회), 이강만 전 하나은행 부행장(65회), 황서광 전 흥국쌍용화재보험 사장(66회), 김주윤 전 흥국생명 사장(62회) 등이 있다. 윤용로 코람코자산신탁 회장(65회·전 외환은행장), 고정석 일신창업투자 대표이사 사장(67회), 백승엽 서스틴베스트 상임고문(70회) 등도 모교를 빛내고 있다.


정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해 '별의 순간'을 언급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49회·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 외에도 전 동국대 불교대학장으로 한 평생을 불교 연구에 몸담았던 고 김잉석(17회), 국내 최초 미술사학자로 이름을 알린 고 이용희(25회·3·1운동 대표 이갑성씨 아들), 섬유공학자로 세계 최초로 방탄섬유를 개발한 KIST 전 석좌연구원이었던 고 윤한식(40회) 등 학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동문들도 많다.


계우회보 181호

최근에는 '세계폐경학회'에서 'Henry Burger'을 수상한 윤병구 성균관의대 명예교수·리투클리닉 원장(67회)이 눈에 띈다. 이 학술상은 세계폐경학회 회장을 지낸 'Henry G Burger' 교수의 폐경 분야에 대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 탁월한 연구 업적과 폐경학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의학자 1명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또 이양복 성신여대 창의융합대학장(68회), 승현우 서울여자대학교 총장(68회) 등도 동문이다. 동문은 아니지만, '100세 철학자'로 유명한 김형석(103세)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1947년 약 7년간 중앙고에서 교사로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언론계에서는 이웅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40회·문화체육관광부장관·13·14·15대 국회의원), 주명갑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47회), 조강환 동아일보 동우회 명예회장(50회), 전승훈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이슈앤피플팀 부장(80회) 등이 있다. 법조계에는 김태현 전 대법관(33회), 심훈종 전 서울형사지법 부장 판사(47회), 안동수 전 법무부장관(50회) 등이 눈에 뛴다.


문화·방송·스포츠계에서도 중앙고 출신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우선 '영화계의 산증인' 남궁원(45회·본명 홍경일)이 중앙고를 나왔다. 남궁원의 아들은 자서전 '7막7장'으로 유명한 하버드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이다. 또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 최불암(49회), 뮤지컬 배우 박건형(87회), 가수 김창완(62회),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인 홍수환 전 권투위원회(KBC) 회장(60회),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강사(69회·전 베트남 호치민FC 감독) 등이 있다.


중앙고 야구부는 1910년 창단했다. 1972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1965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2회 우승했다. 현재 프로야구 1군에서 맹활약하는 김재호 두산베어스 선수가 중앙고 출신이다. 축구부는 1918년 창단해 1940년대 해체했지만, 1962년 다시 창설 1977년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2019년 대통령금배 전국고등학교축구대회에서는 축구부 창단 이래 대회 첫 우승을 했다.


중앙고등학교 교정의 6.10 만세기념비.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사까지…'개교 115년' 중앙고]


올해 개교 115주년인 중앙고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와 흐름을 같이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3·1운동, 6·10만세운동 등 중요한 역사의 고비마다 중앙학교의 인물들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까지 중앙고 동문들의 자긍심 원천이이기도 하다.


중앙학교의 역사는 1908년 1월 경기·충청도 출신의 우국지사들을 중심으로 창립된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로부터 비롯했다. 당시는 을사늑약(乙巳勒約·1905) 체결로 나라의 명운이 위태롭던 시절이었다. 이에 민족 선각자들은 신교육·문화의 계몽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실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해 학회·학교를 조직하는 데 힘을 썼다. 기호흥학회는 같은 해 6월 신문에 학생모집 광고를 내고 '기호학교'라고 알렸다. 20일 한성 북부 소격동 학회 건물에서 열린 개교식에는 입학생 90명과 함께 수많은 학회 관계자와 시민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제대로 운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1915년 인촌 김성수 선생이 인수했다. 김성수는 1917년 3월 교장에 취임해 현 위치인 종로구 계동 1번지에 학교부지 4311평을 매입하고 11월에는 건평 120여 평의 2층 건물을 완공해, 12월에 학교를 이전했다.


1919년 중앙학교 학생들은 3·1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시위는 물론 3월 5일 남대문역 광장에서 시작된 서울 제2차 시위에도 전교생이 참가했다. 서울과 지방에서 검거된 중앙학교 학생들은 확인된 수만도 30여 명에 달했다. 결국 3월 중에 열려야 할 졸업식도 치를 수 없었다고 한다.


중앙고는 한국 보이스카우트 운동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세계 보이스카우트 운동은 1907년 영국에서 육군중장 바덴 포웰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학교가 발상지다. 1922년 10월 중앙학교 교사였던 관산(冠山) 조철호 선생이 학생 8명과 함께 결성한 '조선소년군'이 모태가 됐다. 관산은 "너희는 이 민족의 화랑이다. 민족을 구하는 선봉이 돼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일제는 해산을 종용했고, 조선소년군은 끝내 1937년 가을에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학교는 변화를 추진했다. 2005년 12월 정보과학관, 2006년 2월에는 체육관을 완공한 데 이어 기존 교사(校舍)도 리모델링했다. 2008년 인조 잔디구장 개장식도 가졌다. 이로써 중앙고는 선진국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최첨단 시설을 갖추게 됐다. 이를 두고 동문들은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진 배움의 전당이라고 평가한다. 또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겨울연가' 촬영지로 쓰이는 등 이른바 '예쁜 학교'로 잘 알려져 각종 촬영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용균 중앙고 교장은 "1908년 민족 선각자들이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교육으로 나라를 세우고, 교육으로 나라를 융성하게 일으키자는 일념으로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 학교다"라면서 "앞으로도 중앙고에 대해 늘 관심을 가져주고, 많은 격려를 해달라"고 말했다.


채정석(65회) 교우회장은 "구한말 일제의 침략기에 신학문을 통한 교육구국· 교육입국의 취지로 우국지사들에 의해 설립된 중앙고는 독립 운동의 산실이었다"며 "지난 115년 동안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내며 명문사학으로서의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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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정담]축구해설가? 구본무 회장이 인정한 '미술 애호가' 신문선
수정 2023.06.10 07:00입력 2023.06.10 07:00

'축구해설가'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65)는 지난 8일 저녁 대학원 재학생, 졸업생들과 조촐한 은퇴식을 하고 교편을 내려놨다. 그는 더 이상 학생들 앞에서 강연하지 않는다. 오는 17일 신입생 면접에만 참석할 예정이다. 2006년 처음 강단에 선 이후 17년 만이다.


9일 본지와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자택 근처에서 만난 신 교수는 "스포츠기록분석 전공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대학원에 와서 많은 결실을 맺었다"며 "독일과 영국에서도 탐내는 인재들이 우리 대학원에서 많이 배출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다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 교수 퇴임이 아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신문선 교수.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신 교수는 가족들과 20년간 지낸 상수동 자택에 미술관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에 정원까지 있다. 이름은 '신문선 공간'으로 지었다. 서용선 화백이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신 교수가 본지를 통해 처음 공개한 이곳에는 그가 그동안 수집한 미술작품 약 100여점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나머지 100여점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미술관과 함께 신 교수 인생 제2막이 열릴 것이다. '만보'로 다져진 심신은 그가 미술관을 열의 있게 준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신 교수는 "매일 자택이 있는 청운동에서 인왕산을 따라 1만~1만오천보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만보 마니아"라고도 했다. 인왕산에는 본인이 이름을 딴 '신문선 코스'도 있다고 귀띔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걷다가 수성동계곡 쪽으로 틀어 골짜기를 따라 걷는 코스다. 신 교수가 이 길을 따라 걷게 된 계기도 결국 그림이었다. "인왕제색도를 그린 겸재 정선이 청운동에 살면서 그림을 그린 곳이 많이 남아 있다"며 "대학 때부터 인왕제색도의 배경이 된 곳이 궁금해서 찾아다니다 보니 이 길이 좋아졌다"고 회상했다.


신문선 교수.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故 구본무 회장도 그림 선물… 40년 넘은 안목

신 교수는 대중들에 축구인으로 익숙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보면 대단한 '미술 애호가'다. 그림을 보는 안목을 길러온 지는 40년이 넘었다. 신 교수는 "대학 선수 시절부터 쉬는 날 인사동에 가서 그림을 찾으러 돌아다녔다"고 회상했다. 안목이 생기자 스토리가 있는 미술작품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신 교수는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등지에서 여러 작품을 수집했다. 현재는 변시지 화백, 권순철 화백의 작품은 각각 40점을 소유하고 있다. 2003년에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으로부터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을 선물 받았다. 신 교수는 "함께 전시회를 갔다가 구 회장께서 작품을 조용히 구매하시더니 나중에 내게 보내주셨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도 미술관이 열릴 고택 내 계단 옆 벽 한편에 전시돼 있다.

미술관은 그의 예술적 감성이 집약된 공간이다. 개관을 계획하는 과정에선 '짐 톰슨 하우스(태국 방콕)',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관(일본 도쿄)'을 참고했다고 한다. 신 교수는 이미 2021년 9월 와우갤러리를 개관해 운영하고 있지만, 미술관을 여는 일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신 교수는 "홍익대 앞은 예술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지만 지금은 음식, 주점이 많은 복잡한 거리가 됐다"며 "인근에 한적한 미술관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문선 교수.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신문선 교수.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축구해설도 은퇴 무대 기다려"

여전히 축구계에서 신 교수의 영향력은 크다. 많은 프로축구 구단이 그에게 특강을 부탁하고, 조언을 구한다. 대구FC는 지난 시즌 신 교수의 도움으로 2부 강등 위기를 피했다. 조광래 대구FC 사장이 지난해 9월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신 교수에게 SOS를 쳤다. 신 교수는 곧바로 선수단 숙소로 내려가 특강을 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수치상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경기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강조했다. 지지부진하던 팀의 핵심 선수 세징야(브라질)를 불러 책임감을 강조했다. 심판 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라고도 했다. 대구는 제주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내주고 두 골을 따라잡아 무승부를 거뒀다. 이후 4승 2무로 상승세를 타며 1부에 잔류하는 데 성공했다.


신 교수는 지금도 축구계의 러브콜을 내심 기다리고 있다. 그는 "축구 행정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보직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축구 해설도 "은퇴를 공식화할 수 있는 마지막 중계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늘 축구판에서 야인으로 살았다. 우리 축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관계기관들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본지와 만나서도 "축구협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4강 신화를 쓴 우리 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의 활약에 "도취하면 안된다"라고도 말했다. "일본이 예선에서 탈락했고 우린 4강에 올랐다고 해서 일본보다 우리가 앞섰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대표팀은 세트피스를 통한 전략이 확실하고 김은중 감독이 공격진에 자율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이런 선수들이 앞으로도 좋은 활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라고도 덧붙였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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