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중년으로 접어든 40대 비혼자
나이 듦, 노후에 대한 불안감 싹트는 단계
"결혼은 비용 먼저, 비혼은 효용 먼저 누려"
편집자주결혼이 필수가 아닌 세상. 비혼을 선택한 이를 만나는 것은 낯선 경험이 아니다. 누가, 왜 비혼을 선택할까. 비혼을 둘러싼 사회의 색안경만 문제는 아니다.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막연한 시선도 존재한다. 이른바 '비혼 라이프'의 명과 암을 진단해본다.
비혼으로 보낸 20~30대 시절은 황홀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이후의 삶이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고 결국 지나간다. 언젠가는 늙고, 아파지고, 혼자가 된다. 그걸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소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삶의 어느 순간 새삼스럽게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늙어감에 대한 불안감이, 단지 비혼자들만 겪게 되는 고충일까?
미디어 등에서 보이는 비혼 이미지는 화려하다. 직장에서 퇴근한 후 여유 있게 운동하거나 여가를 즐기고, 주말에는 쇼핑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교외로 나가 등산이나 캠핑을 한다.
결혼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주거, 생활비 등 경제적 측면에서 여유로워지는 건 물론, 돌봄·출산·양육에 대한 부담감, 명절·생일·제사 등 가족관계와 관련된 일에도 자유롭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빼면, 그 외 남은 시간은 오롯이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평온한 삶. 많은 이들이 비혼을 선망하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40대, 중년에 접어들면 비혼의 삶도 조금은 달라진다. 몸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아프지 않던 곳이 아파져 오면서 나이를 먹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43세 남성 비혼자 조준호씨(가명)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도 이 시점이다. 조씨는 "작년에 노안이 왔다. 갑자기 휴대전화가 안 보이는데 꽤 당황스러웠다"며 "최근 몸 곳곳의 기능이 떨어지는 게 확연히 느껴졌는데, 노안은 결정타처럼 느껴졌다. 내 몸이 하강 곡선에 본격적으로 올라탄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공무원인 조씨는 '어쩌다 보니' 비혼으로 살고 있다. 딱히 결혼을 안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결혼에 대한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면서 그 준비 과정을 가까이서 목격했다. 조씨는 결혼이 '내가 원하는 삶일까'라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내릴 수 없었다. 30대 후반엔 '이 시기가 지나면 결혼을 선택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도 했지만, 조씨는 비혼으로 남았다.
중년에 접어든 조씨가 느끼는 비혼의 삶은 '100점 만점에 70점'. 그는 "전반적으로 만족하지만, 예전처럼 비혼의 삶에 대해 99점의 확신을 갖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조씨는 결혼과 비혼에 대해 이렇게 규정했다.
"결혼은 비용을 먼저 치르지만, 비혼은 효용을 먼저 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하면 신혼 때 많이 싸우고, 육아와 교육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지만, 배우자와 자식이라는 믿을 구석이 하나는 생긴다고 할까요. 비혼은 젊은 시절 누리며 살 수 있지만, 결국 불안한 미래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얼마 전 코로나19에 걸린 경험이 있다는 조씨는 이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큰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혼자 며칠 앓았는데,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앞으로도 자주 이럴 텐데 혼자서 어쩌지 싶은 생각도 든다"면서 "어차피 비혼도 선택인데,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있다는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동안) 비혼의 효용을 누렸고 이제 비용을 치르는 초입에 와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씨에 따르면 비혼은 '혼자 사는 멋진 삶' 정도로 규정할 수 있는, 간단하고 편안하기만 한 삶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 듦과 노후에 불안감을 갖고 있듯 비혼자들 역시 그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조씨처럼 비혼으로 사는 중년 인구는 적지 않다. 2021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1인 가구 중 중년에 해당하는 40~46세 인구는 269만7716명으로, 전체 1인 가구의 37.6%를 차지했다. 또 여성가족부 2020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2.9%, 30대의 42.7%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중년 비혼자가 이미 전체 인구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 비혼으로 살아갈 의향이 있는 인구도 적은 편이 아니다. 비혼을 소수의 사례로 규정하기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비혼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중년 1인 가구를 탐구한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국내에서 비혼은 비주류로 여겨지고, 특히 비혼 중년은 1인 가구 담론에서 언급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진지한 접근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혼 인구는 갈수록 늘 것이고, 이들 역시 생애주기에서 다양한 문제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비혼자에 대한 편견적 시각이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점을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진지한 고민 없이 비혼에 대한 막연한 선망으로 섣부른 결정을 한 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 "결혼을 왜 안 해?", "외롭지 않아?", "나이 들어 혼자인 삶은 쓸쓸하지 않을까?" 같은 말은 비혼자들이 흔히 듣는 질문들이다.
비혼자를 향한 시선에 대해 조씨는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자신이 책임지고 살면 그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그 사람의 선택을 믿지 못할 때 철없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선택은 과정"이라며 "제가 비혼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과거와는 달라진 것처럼, 선택은 상황에 따라 의미와 결과가 달라지는 과정이다. 설령 '철없는' 선택일지라도 그렇게 흔들리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걷는 노인 뒷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조씨의 말은 비혼자의 삶이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현실적인 조언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설령 비혼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라도 자신이 책임질 일이며 타인으로부터 비난받을 문제는 아니란 뜻이다.
김희경 작가는 비혼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이렇게 반박한다.
"혼자 사는 성인도 경제적 독립, 주거, 친밀한 관계 맺기, 정서적 안정, 노년의 준비 등 모든 사람이 겪는 생애 과제들을 마주한다.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비혼을 선망 또는 의구심으로 바라보거나, 결혼의 대척점으로만 규정하는 건 너무 단순한 평가라고 김 작가는 지적한다. 비혼자도 다른 많은 사람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노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지원과 뒷받침을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김 작가는 강조한다.
다만 조씨는 비혼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너무 일찍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제 선택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며 "다 안다고 느꼈던 저 자신에게서 또 다른 나를 봤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조씨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비혼을 선택하시는 분들을 존중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됐을 때 선택을 해도 늦지 않고, 오히려 그때의 선택이 최선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싶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