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앞으로도 초급속 충전기 1위 기업으로 미국 시장을 선도할 것이다."
SK그룹의 SK시그넷이 미국 텍사스 생산기지를 완공하고 다음달부터 현지 최초로 400kW급 초급속 충전기 상용화에 나선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보조금 정책에 발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미 충전기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확고히 하는 한편, 2025년 매출 1조원까지 달성한다는 목표다.
신정호 SK시그넷 대표는 5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플레이노시에 위치한 생산공장(SSMT) 준공식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2025년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밝혔다. SK㈜가 2021년 인수한 SK시그넷은 전체 매출의 80%이상을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미국에서 거두고 있는 현지 초급속 충전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급성장 중인 전기차 및 충전기 시장에 힘입어 올해는 작년 매출(1600억원)의 두배인 3200억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3년 내 1조원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는 글로벌 25~30%, 미국 40~50%다.
특히 연산 1만기 규모의 텍사스 공장 준공은 SK시그넷의 성장에 있어 주요 기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신 대표는 "텍사스 공장을 통해 ▲미국 내 최종 조립 ▲미국산 철강 사용 ▲150kW급 전기차 4대 동시충전 등 (전기차 충전 인프라 보조금정책인) 바이아메리칸 요건을 모두 갖추게 됐다"고 텍사스 공장 준공의 의미를 강조했다.
SK시그넷으로선 미 보조금 정책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통해 2025년 32억달러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미 충전기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굳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신 대표는 "미국에서 굉장히 큰 보조금 시장이 열린 상황"이라며 "SK시그넷은 다른 경쟁사들보다 생산 규모, 시점 모두 앞서 있다"고 자신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올해부터 미국산 철강 사용 요건을 추가하면서 보조금 기준을 모두 갖춘 기업은 현재 SK시그넷과 테슬라, 트리티움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 충전기 시장은 200kW급 이상 부문은 SK시그넷, 급속 부문은 테슬라가 각각 장악 중이다. 신 대표는 "테슬라 역시 모든 보조금 요건을 갖추고 있다"며 "저희 입장에서도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고 평가했다. 다만 350~400kW 초급속 충전이 가능한 SK시그넷과 달리, 테슬라의 경우 자사 차량을 위한 200kW 이하 급속 충전이 중심이라는 차이가 있다. 또한 테슬라가 타사 전기차에 충전 네트워크를 개방하는 매직독 역시 11개에 불과하다.
신 대표는 "지금으로선 (SK시그넷에) 그렇게 큰 위협은 아니다"면서도 "향후 테슬라가 출력을 높이고, 매직독을 보편화하고, 포드 등 타 자동차 브랜드와 협력을 강화하면 점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SK시그넷은 초급속 시장에서 강점이 있고, 수많은 브랜드의 차량과 적합도 테스트 등을 거친 노하우가 있다"며 "미국에서 발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추고 있다"고 자신감도 표했다. 이어 그는 "규모가 작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게 아니라, 급성장 중인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강점을 상당 기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신 대표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는 미국처럼 향후 유럽 등에서도 유럽산 사용 등 관련 규제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답했다. 아울러 미국산 철강 사용 등으로 한국산 철강업계에 부정적 여파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에는 "이 시장은 성장 중이다. 현지 생산으로 인해 한국산 철강을 덜 쓰는 게 아니라, 미국산도 한국산도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라남도 영광에 위치한 한국 공장의 생산규모 역시 두 배이상 확대하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텍사스 생산 거점을 통해 SK시그넷은 글로벌 2만기 생산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텍사스 공장에서는 단일 포트에서 최대 400kW까지 출력 가능한 V2 제품이 오는 2분기부터 생산돼 미국, 유럽 등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앞서 CES 2023에서 처음 선보인 V2는 단 15분만에 아이오닉5 차량을 80% 완충할 수 있는 초급속 충전기다. 이는 현재 미국 내 생산되는 초급속 충전기를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다.
이날 준공식에서는 V2제품을 활용한 충전 시연 이벤트가 진행돼 고객, 협력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각각 800V, 400V배터리를 탑재한 포드 150, 현대 아이오닉5를 동시에 충전하자, 불과 이십초만에 각각250kW, 150kW의 최고 출력이 확인됐다.
준공식에 참석한 아드리아나 크루즈 텍사스주 경제개발국장은 그레그 애벗 주지사를 대신해 “SK시그넷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 활성화에대한 지원에 감사하며, 텍사스주는 장기적인 파트너로서 앞으로도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약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고객사인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 이브이고, 레벨, 애플그린 일렉트릭 등 관계자들도 함께해 준공을 축하했다. 유정준 SK그룹 북미 대외 협력총괄 부회장은 "SK시그넷의 생산시설은 제조업과 운송업의 미래가 될 것이며, 전기차 보급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플레이노=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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