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간편식 관련 설문조사
고물가 영향에 밀키트 등 대안으로 각광
양·성분·다양한 품목 등 선택지 넓어
적정 수준 가격대 유지, 지속 성장 관건
"가족 단위 행사가 부쩍 많은 달인데 '오붓하게 식사나 하자'라는 말조차 부담스럽네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강재훈씨(42)는 최근 급격히 오른 외식물가를 절감하고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주요 기념일에 부처님 오신날과 현충일 등이 있는 5~6월 황금연휴 기간 가족 모임을 위해 식사에만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자녀 2명까지 4인 가족인 그는 "한 끼 10만원으로 삼겹살을 먹으려 해도 부족한 수준"이라며 "양가 어른들을 대동하는 행사는 더욱이 메뉴를 선정하는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부처님오신날이 속한 지난 주말 강씨 가족은 샤부샤부와 우동 등을 메뉴로 구성한 밀키트 제품을 전문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해 5만원대에 집에서 가족 식사를 대신했다. 그는 "이전에도 편리함 때문에 양식이나 분식류 등의 밀키트 제품을 종종 이용했다"면서 "식당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구성의 메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밀키트 더 저렴하게 느껴" 63%"식재료 가격 부담" 30대 비중 가장 높아
코로나19가 몰고 온 비대면 트렌드를 타고 급성장한 간편식 시장이 식자재와 외식물가, 배달료 인상 등의 영향으로 엔데믹에도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31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평소 식사 준비를 직접 하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간편식 관련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순 기준 응답자 10명 중 9명(89.5%)이 '밀키트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인기가 대중화됐다. 밀키트는 손질된 식재료와 양념을 포함하는 반조리 형태의 제품으로 식사(Meal)와 키트(Kit)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를 합친 말이다. 완전 또는 반조리 형태의 간편한 식사 대용품을 뜻하는 가정간편식(HMR)의 한 종류다.
이처럼 가정에서 주로 이용하는 간편식 시장이 일상 회복과 야외 활동 증가로 침체기를 맞을 수 있다는 예상과 달리 고물가 여파로 반사이익을 얻는 분위기다. 실제 설문 응답자의 80.1%가 '밥을 직접 해 먹고 싶어도 식재료 가격 인상으로 부담이 커진 편'이라고 했고, '식재료 가격 인상으로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는 것보다 밀키트 등이 저렴하게 느껴진다'고 답한 비율도 63.5%에 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외식물가는 1년 전보다 7.6% 올라 전체 물가 상승률(3.7%)보다 오름폭이 3.9%포인트나 높았다. 이는 1992년 5월(5.0%포인트) 이후 30년11개월 만에 가장 큰 격차다. 외식물가 자체만으로도 지난해 5월(7.4%) 이후 상승률이 1년째 7%대를 지속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식재료 가격 인상 등으로 소비자들이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대신 필요한 재료만 소포장된 밀키트를 이용하거나 외식·배달음식 메뉴를 집에서 대체할 수 있는 간편식에 더 매력을 느끼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 예로 올해 1~4월 온라인 장보기 플랫폼 마켓컬리에서 판매하는 간편식 가운데 양념치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00%, 치킨윙은 35%, 치킨류는 12% 각각 늘었다.
'식재료 가격이 올라 부담이 된다'는 의견은 남성(76.6%)보다 여성(83.6%)에서 비중이 높았고, 연령별로는 30대(83.2%)가 가장 많았다. 이어 50대(80.0%), 20대(79.2%), 40대(78.0%) 순이었다. 가족 구성원 수로는 2인 가구(82.0%), 4인 이상 가구(80.3%), 1인 가구(79.3%), 3인 가구(79.2%) 순으로 부담을 토로한 비중이 높았다.
국·찌개·탕류 74% 압도적 1위
밀키트를 중심으로 응답자 895명이 간편식을 이용하는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제품 구매 빈도는 월 2~3회(23.7%)가 1위였고, 주 1~3회(20.4%)가 뒤를 이었다. 구매 경로는 대형마트 오프라인 매장이 61%로 가장 높았고 대형마트 온라인몰에서 구매한다는 응답이 53.7%로 2위였다. 이 밖에 오픈마켓·소셜커머스 36.8%, 오프라인 밀키트 전문 매장 29.8%, 새벽배송 26.6%, 편의점 26.6%의 비중도 높았다.
'관련 제품을 구매하는 빈도가 이전보다 증가했다'는 응답은 50대에서 35.2%로 가장 높았고, 결혼 유무에서는 기혼 유자녀 응답자 비중이 33.4%로 1위였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50대와 기혼 유자녀 응답자는 평소 집밥 요리를 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면서 "식사 준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밀키트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응답자들이 주로 구입하는 제품은 '국·찌개·탕'으로 74.1%를 차지했다. 이어 '한식 고기류(불고기·갈비 등)' 43%, '떡볶이' 40.7%, '닭갈비·찜닭·닭볶음탕' 등 반조리 닭 제품 35%, '파스타·리소토·뇨키' 32.5%, '전골·샤부샤부·나베' 31.4%, '한식 볶음류(오징어·주꾸미·제육볶음 등)' 30.9% 등이 상위권을 형성했다. 연령별로는 국·찌개·탕을 구매한 40대 비중이 80%로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았고, 30대는 한식 고기류와 양식 제품 구매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간편식을 이용할 때 소비자들은 가격과 조리 난이도, 후기를 중요하게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키트 제품 구매 시 '가격대를 고려한다'는 응답이 64.9%로 1위였고, '난이도'는 40.2%, '구매 후기'는 32%를 차지했다. 이 밖에 연령별로 젊은 층일수록 제품의 '양'을 따지고, 중·장년층일수록 '성분'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파악됐다.
'양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29.4%였는데 20대는 38.9%, 30대는 40.8%로 전체보다 비중이 높았다. '원재료 성분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17.2%로 40대(21.4%)와 50대(32.9%)는 각각 평균을 웃돈 반면, 20대(8.4%)와 30대(7.3%)는 상대적으로 이를 덜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주목할 점은 오프라인 밀키트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한 20대와 30대 비중이 각각 33.2%와 36.5%로 40대(25.5%)와 50대(23.6%)보다 높다는 것이다. 1인·미(비)혼 가구 비중이 높은 젊은 층이 무인으로 운영하는 거주지 인근 전문 매장을 찾아 원하는 메뉴를 간편하게 이용하는 데 훨씬 적극적이었다는 결과로 풀이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에 따르면 2015년 1조6823억원 수준이었던 국내 간편식 시장은 2018년 3조2000억원으로 성장했고, 코로나19를 지나 꾸준히 규모를 키우며 지난해 5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1000명 가운데 80.5%는 '물가 상승 등으로 앞으로 밀키트 이용자가 더욱 증가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반면 '식재료 가격 상승으로 밀키트 가격이 오르고, 이 때문에 이용자가 감소할 것 같다'는 응답도 각각 90.3%와 74.4%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엠브레인 관계자는 "식재료 가격 상승이 밀키트 등 간편식 제품에도 영향을 준다면 구매가 감소할 수 있다는 인식도 강하게 나타난 만큼, (관련 업계에서) 소비자가 수용 가능한 적정 수준으로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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