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6월 말 회계개혁 개선안 발표 예정
자율 6년+지정 3년의 주기적 지정제 현행 유지
직권지정 사유 감소…2조 미만 상장사 연결기준 내부회계 감사 유예
신(新)외부감사법(외부감사법 개정안)으로 추진한 회계개혁 제도 도입 효과가 크지 않은 반면 경영계의 고충은 큰 것으로 나타나 금융당국이 6월 말 '완화'에 초점을 둔 개선안을 발표한다. 주기적 지정제는 현행 그대로 유지하고, 직권지정 사유는 줄이기로 했다. 자산 2조원 미만 상장사 대상 연결기준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도 유예한다.
30일 금융당국·금융투자업계·회계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금융위원회에서 기업·회계업계·학계 등과 꾸린 '회계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은 6월 말 회계개혁 개선안을 발표한다. 금융위가 한국회계학회에 발주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감사품질 개선 등의 효과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은 반면 감사보수, 감사시간, 시간당 감사보수 등이 모두 증가하는 등 기업의 고충이 큰 만큼 '완화'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금융당국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주기적 지정제는 제도가 시행된 지 한 주기(사이클)가 돌아야 한다는 판단이 선 가운데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면서 "폐지를 원했던 기업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대신 직권지정 사유를 줄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내부회계관리제도는 회계업계와 기업 측의 신경전이 팽팽해 금융당국의 고심이 깊지만 결국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덧붙였다.
2019년 본격 시행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6년 연속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하면 다음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계기가 돼 2018년 11월 시행된 개정 외부감사법(신외감법)에 따라 도입했다. 이 제도 도입 이후 회계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감사시간과 비용이 크게 늘었다는 기업의 불만이 꾸준히 제기됐다. 감사인의 과도한 자료 요구 등도 증가했다는 토로도 이어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회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수검 과정에서 비효율이 상당하며, 전임 감사인과 이견이 자주 발생하며 재무제표 재작성이 빈번해졌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지정감사인이 고압적이며 일방적 주장이 많은 가운데 한번도 요구한 적 없는 자료까지 요구한다"고 하소연했다.
회계학회 역시 "2021년 기준 상장사 중 지정감사인(주기적 지정 및 직권지정)의 선임 비중이 50%를 넘어 지정감사인 선임으로 감사보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감사인의 과도하고 불합리한 요청이 증가했다는 의견이 있는 데다, 감사인 선임 방식이 원칙적으로 자유 선임 방식임을 고려하면 50%를 넘는 지정감사 제도의 완화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회계업계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자유 선임 기간을 현행 6년에서 9년으로 확대하거나, 지정 기간을 현행 3년에서 2년으로 축소하는 안을 제시했다. 다만 지정 기간을 2년으로 축소하는 것은 시행령으로 가능하지만, 자유 선임 기간을 9년으로 확대하는 것은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특히 지정 기간을 2년으로 축소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게 경영계 입장이다. 오히려 잦은 변경이 피로감을 더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더구나 감사 계약은 3년 주기로 행해진다.
경영계는 한국에만 있는 이 제도가 인위적으로 감사시장을 왜곡하고 감사인과 기업 간 갈등을 고조시키기 때문에 폐지를 원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로도 입증됐지만 기업 현장의 목소리는 회계 투명성 향상 효과는 확인할 수도, 체감할 수도 없다는 것"이라며 "주기적 지정제도는 종국적으로 당국이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제도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근본적인 회계감독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는 9년으로 늘리는 것은 법 개정과 다양한 악재 발생 우려로 쉽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더욱이 2년으로 축소하는 것은 경영계의 판단이 맞다고 봤다. 다만 폐지 문제에는 선을 그었다. 회계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회계학회가 금융위에 직접 주기적 지정제가 충분히 시행된 시점(한 사이클 종료 후)에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을 재수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면서 "금융위도 주기적 지정제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론을 냈다"고 전했다.
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 규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다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국회 입법조사처와 회계학회는 업무의 비효율과 비용 부담으로 기업 피해가 심각하다는 현장의 목소리와 현실을 외면한 채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으로 세계 유일의 비정상적인 제도를 유지하기로 해서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금융위가 최대한 빠른 시기(2~3년 내)에 주기적 지정제의 비용 대비 효익을 재검토해 결론을 내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정 사유는 현행 27개에서 줄어든다. 직권 지정제는 증권선물위원회 감리 결과에 따른 감사인 지정조치, 선임기한 내 감사인 미선임, 상장 예정, 관리종목, 3개 사업연도 연속 영업손실 발생(재무 기준) 등 27개 직권지정 사유에 대해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정한 감사가 필요한 경우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주기적 지정제는 현행 유지로 가닥을 잡은 만큼, 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완화 개선 방안으로는 2조원 미만 상장사에 대해 연결기준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유예 등이 꼽힌다. 내부회계관리제도는 신뢰성 있는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하기 위해 설계·운영되는 내부통제를 의미한다. 회계법인을 통해 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 실태 보고서를 포함한 회계정보 내부통제 설계 및 운영 전반을 검증하도록 했다. 신외감법에 따라 '검토'에서 '감사'로 인증 수준도 강화됐다. 별도 내부회계관리제도는 2019년 시행됐다. 올해부터는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부터 시행한다. 이후 2024년에는 자산 5000억원 이상, 2025년 전체 상장사에 대해 시행될 예정이다. 비상장사의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 범위는 별도(개별) 기업 재무정보로 한정된다.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선 회계업계와 경영계의 갈등이 첨예했다. 회계업계는 오스템임플란트와 우리은행 등 여러 횡령 사태가 발생하면서 내부회계관리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해당 제도에 대한 완화가 이뤄지면 기업 투명성 제고라는 제도 도입 취지가 약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업의 비용 부담은 존재하지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자본시장을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선 제도를 계획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계의 입장은 반대다. 특히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반감이 크다. 한 기업 관계자는 "개별 내부회계관리제도도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반감이 큰 것은 비용 문제가 커서다. 제도 개선의 측면에선 환영하지만 비용 대비 효익을 고려할 때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유예가 아닌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기업의 경우 종속회사의 수가 100∼400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위해 이들 기업 전체에 대해 제도를 마련하게 되면 효익 대비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실무에서도 애로사항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도입한 미국과 국내 기업의 사정도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에는 해외 종속기업도 포함되는데, 현지법상 내부회계관리에 대한 의무가 없다면 해당 종속기업의 거부감이 커서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은 연결기준이 보편적이지만, 국내는 별도(개별)와 연결 기준이 모두 활용돼 감사 환경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같은 경제력과 국가신인도를 가진 국가에 속한 기업이 아니라면 해외 종속기업을 상대로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수행하기 어렵다.
또 미국 기업은 100% 지분을 보유한 종속기업이 많은 반면 국내 기업은 종속기업 지분율 100% 미만인 곳이 많아 미국 기업처럼 종속기업에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강요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이 외에도 경영계는 "미국에서는 소규모 회사에 비용 부담이 존재한다는 일관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소규모 회사의 감사 면제 범위를 지속해서 확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회계업계의 반대 의사에도 기업의 고충을 해소하는 것이 현 경제 상황에서 좀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내부회계관리제도는 결국 내부에서 관리하지 않으면 외부에서는 잘못된 회계 처리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취지로 도입했는데 개별 기업 레벨에서 충분히 잘못된 사항을 잡을 수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이것을 연결기준으로 하는 것은 효익보다는 비용이 더 드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비용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당시에는 금리 인상 시기가 아니었다"라며 "경기가 안정된 이후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식으로 발표한다면 금융당국의 판단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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