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끌려가던 돼지, 트럭서 떨어져
결국 포획 돼 다시 도살장으로 옮겨져
식물성 재료로 고기 맛 내는 '대체육' 관심
"다시 도살장 끌려가다니…불쌍하네요."
도살장으로 실려 가던 돼지가, 차량에서 떨어져 도심을 돌아다니다 포획돼 다시 도살장으로 보내졌다. 그러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안타까운 반응이 잇따랐다. 일각에서는 쇠고기, 돼지고기 대신 대체육을 더 소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면서 대체육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전 7시 46분께 대구 북구 매천대교 인근을 달리던 차량에서 돼지 한 마리가 떨어져 나왔다. '매천대교 다리 위에 돼지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은 20분 만에 현장에서 돼지를 발견해 오전 8시 6분께 포획하고 인근 지게차를 동원해 차량에 다시 실었다. 돼지는 도살장으로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으며 포획 후 다시 도살장으로 옮겨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안쓰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티즌은 관련 기사 댓글을 통해 "불쌍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대체육을 소비하면 안 될까요" 등 의견을 내놓았다. 일부는 "닭도 불쌍하죠", "닭은 왜 안 불쌍하죠" 등 다른 견해도 보였다.
대체육은 콩 등의 식물성 재료 또는 버섯과 같은 균류, 또 곤충 등을 이용해 고기처럼 만든 식자재다. '페이크 미트'(가짜 고기)라고도 불린다. 여기에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구온난화 문제, 생태계 파괴 등 동물권과 환경을 생각해 미래 먹거리로도 통한다.
특히 소비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가치소비 트렌드가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유통가도 적극적으로 대체육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가 올해 11조5300억원에서 2025년 14조 57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 대체육 시장은 270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동물 도축, 공장식 축산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10월 4일 당시 동물권 활동가들은, 세계 동물의 날을 맞아 경기도 용인의 한 도계장을 찾아가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폭력을 멈춰주세요"라며 집회를 연 바 있다. 이는 미국, 영국, 멕시코 등 전 세계 14개국 29개 도시에서 진행된 '글로벌 락다운'(lockdown·도살장 등을 점거하는 동물권 직접 행동)에 한국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위였다.
이날 활동가들은 동물은 존재 자체로 보호받을 권리를 법제화하자며,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하기도 했다. 동물권리장전은 '로즈 법(Rose`s law)'에서 유래했다. '로즈'는 2018년 동물권 행동 단체인 '디엑스이(DxE)'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계장에서, 활동가들이 공개 구조한 닭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닭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활동가들은 로즈처럼 모든 동물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활동가들의 동물권 보장 움직임과 육류 섭취량을 줄이려 노력하는 채식주의자들이 늘면서, MZ세대 3명 중 2명 이상이 '환경을 생각해 대체육으로 식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2월 신세계푸드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20·30 세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체육에 대해 67.6%가 긍정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체육을 소비해야 하는 이유(복수 응답)로는 환경 보존이 71.4%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동물 복지(53.0%), 건강한 식습관(43.5%), 식량난 대비(36.5%) 등의 순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체육 시장과 관련한 유통가의 대응도 활발하다. 다양한 대체육과 비건(Vegan) 식음료가 출시되고, 비건 전문식당도 늘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대체육에 집중했던 것을 넘어, 대체유·치즈 등을 비롯해 대체식품 사업군을 폭넓게 키운다는 계획이다. B2B(기업 간 거래) 위주였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부터는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방식으로 '베러미트 식물성 런천 캔햄' 판매를 시작했다. 앞서 지난해 7월 신세계푸드는 런천 캔햄을 선보인 바 있다. 신세계푸드는 외식사업 부문의 대체식품 메뉴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베이커리 매장과 단체급식 사업장 중심으로 식물성 햄·패티를 활용한 제품을 공급하던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외식업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CJ제일제당도 지난해 '플랜테이블'이라는 식물성 식품 브랜드를 출시하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플랜트-베이스는 곡물, 채소, 견과류 등 환경친화적 식단을 의미한다. SPC는 저스트 에그라는 식물성 달걀을 개발해 채식주의인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집중하며 미국 실리콘밸리의 푸드테크 기업 '잇 저스트'(Eat Just, Inc)와 함께 생산했다.
비건 전문식당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풀무원은 비건 인증 레스토랑 '플랜튜드' 코엑스점이 오픈 약 1년 만에 누적 방문 고객수 7만5000명, 메뉴 1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플랜튜드는 지난해 5월 20일 오픈한 식품업계 최초 비건 인증 레스토랑이다. 파스타, 떡볶이, 비빔밥 등 대중적인 메뉴를 순식물성 재료로 재해석해 구현했다. 지난 3월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테이스트파크 7층에 2호점을 개점했다. 올해 플랜튜드를 4호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전문가는 동물권 복지를 위해, 육류 소비 방식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에 대해 시민들도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소비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라며 "동물 복지 향상과 관련해 대체육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당장 하루아침에 모든 육류 소비를 대체육으로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육류 소비를 점차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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