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봉하마을에 4000여명 시민
여야 대표·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 참석
한덕수 총리 무대 서자 야유·고성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4주기 추도식이 23일 경북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구름 없이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날씨에도 이날 봉하마을에는 40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추도식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모인 시민들은 노란 모자와 부채를 쓰고 떡을 나눠 먹었다. 땡볕이 쏟아지는 잔디광장에서 앞쪽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노란 양산을 펼치고 자리를 잡아두기도 했다.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봉하마을 입구에 세워진 큰 종이를 가득 채웠다.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잘 계신지요?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등 손글씨가 빼곡히 적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이날 추도식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문 전 대통령 내외는 권양숙 여사와 함께 마지막 순서로 잔디광장에 입장했다. 시민들은 권 여사의 모습이 무대 모니터에 보이자 일제히 일어서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노무현 화이팅" "여사님 건강하세요" 등 응원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권 여사와 문 전 대통령 내외는 나란히 함께 자리에 앉았다. 이밖에도 한덕수 국무총리, 이진복 정무수석, 유시민·한명숙·이해찬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정세균 현 이사장이 추도식에 참석했다.
여야 대표도 출동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잔디광장에 입장할 때마다 시민들은 큰 함성을 터뜨렸다. 이 대표가 입장하자 휴대폰을 든 유튜버들이 일제히 몰려들어 "이재명!"을 연호했다. 귀빈석을 둘러싼 울타리 근처로 시민들이 올려 이를 막으려는 봉사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김기현 대표와 구자근 비서실장, 정점식 의원 등이 참석했다.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가 추도식에 입장할 때 지지자들이 야유를 보냈던 것과 달리 이날 김 대표의 입장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김 대표는 먼저 자리에 앉은 권 여사, 이재명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과 악수를 나누고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김 대표는 권 여사와 악수하며 "자주 봬야 하는데 못 봬서 죄송하다. 건강하시라"는 등 짧게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덕수 총리의 추도사에서 소란이 일었다. 한 총리가 무대 위로 올라서자 지지자들은 일제히 "내려가라" "뭣 하려고 여길 와" 등 야유를 퍼부었다. 한 총리가 추도사를 읊는 내내 야유는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 퇴진하라" "가서 후쿠시마 물이나 먹어라" 등의 고성도 터져 나왔다. 노무현재단 관계자들이 잔디광장을 돌아다니며 야유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 총리는 이날 추도사에서 "대통령님께서 그토록 꿈꾸시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향한 발걸음이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며 한일관계를 언급했다. 한 총리는 "'동북아 시대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한 차원 높은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시던 대통령님 말씀처럼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에 불을 지피며 평화와 공존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에 시민들이 노란 모자를 쓰고 모였다./사진=김영원 기자앞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정치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김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님은 사람 사는 세상과 정치개혁을 갈망하셨다. 요즘 저는 대통령님께서 남기신 정치개혁의 유업을 떠올리는 날이 많다"며 "대통령님이 남긴 정치개혁의 유업을 완수하는 것이 제가 풀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담담하게 노 전 대통령에게 '경제의 중요성'을 설득한 일, 노 전 대통령 내외가 사무실을 찾아온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김기현 대표는 이날 오전 경남 거제에 위치한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도 방문했다. 김 대표는 생가와 김영삼 기록전시관을 둘러본 뒤 기자들과 만나 방문 취지에 대해 "우리 당의 뿌리를 이룬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다시 새겨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공직자 재산등록 등 과감한 개혁에 앞장서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 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잘 승계해서 우리 국민의힘이 국민에게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 대표의 아버지와 김 전 대통령의 인연도 소개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가 1960년 경상도의원을 했는데 그때 소속이 같은 당이었고 정치 행보를 같이했다. 5·16 군사정권이 들어와 의회가 해산되고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 시대 청산을 위한 반독재 운동에 앞장선 것이 저의 아버지인데, 그 최고 일선이 김 전 대통령이 있었다"며 "오랫동안 김 전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 맥을 이어왔던 집안이라 어느 누구보다 특별한 애정이 있다"고 전했다.
김해=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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