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합수단 부활 이후 '여의도 저승사자' 위용 되찾아
검사들은 "능력 발위할 승진 요지", 수사관은 "일만 많아서 기피"
"남부지검은 시장경제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 자본시장을 무너뜨리는 범죄자에 대응해 최일선에서 싸우는 첨병입니다. 여의도 저승사자가 아닌 수호천사로 불러주세요."
지난해 9월27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서울남부지검을 방문해 한 말이다. 남부지검은 금융·증권범죄 수사에 특화해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최근 'SG증권 발 주가폭락 사태', '테라·루나 사태' 등 대형금융 범죄 수사를 남부지검이 맡으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최근 '김남국 의원 60억 코인 보유 의혹' 등 반부패 사건까지 모여들어 금융사건의 '이슈 블랙홀'이라고 불린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서울남부지검이 금융범죄의 '이슈 블랙홀'이 된 까닭은 검찰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합수단은 원래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됐다. 그러나 검찰은 여의도 증권가를 관할하는 남부지검을 '금융·증권수사 전문 검찰청'으로 육성하기 위해 2014년 2월 합수단을 이곳으로 옮겼다.
검찰은 이듬해에는 아예 남부지검을 금융범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하고 서울중앙지검에 있던 금융조세조사1·2부까지 서울남부지검으로 이관했다. 동시에 금융범죄 수사를 총괄·지휘할 2차장검사 직제도 신설하면서 금융·증권 범죄 전문 수사의 진용을 갖췄다.
최근 세간을 뒤흔든 굵직한 금융·증권 범죄는 모두 남부지검에서 수사했다.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이승형)에서는 코인 상장을 대가로 뒷돈을 주고받은 '코인원 사건'을 수사해 임직원과 브로커들을 구속기소했다.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채희만)은 '빗썸 실소유주 의혹'을 받는 강종현과 관계사 임직원들을 구속기소하고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금융조사1부는 2015년에는 7000억원대 금융사기를 일으킨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와 경영진을 기소했으며, 금융조사2부는 미공개 정보로 주식 시세차익을 챙긴 삼성테크윈, 한미약품 사건 등을 수사해 관련자를 기소한 바 있다. 합수단은 2016년 1600억원대 불법 주식거래를 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일당을 기소했다.
김오수 검찰총장 등이 2021년 9월1일 서울 마포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 출범식에서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여의도 저승사자'로서 남부지검의 위용은 2020년 1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이 합수단을 폐지하면서 쪼그라들었다가, 이번 정부에서 합수단을 부활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현재 합수단(단장 단성한)은 부활 2년 4개월 만에 맡았던 첫 대형 사건인 '테라·루나 사건'의 주범 신현성 차이코퍼레이션 전 총괄대표 등 10명을 지난달 재판에 넘겼다. 테라·루나 사건은 국내 피해자만 28만명에 달한다. 시가총액도 1주일 새 450조원이 증발했다. 투자자들은 당초 남부지검과 서울지방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중 한 곳에 고소·고발을 검토하다가 새로 문을 연 합수단을 선택하며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 등 9명도 재판에 넘겼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 역시 합수단 몫이다.
남부지검의 금융 관련 사건은 허정 2차장검사가 총괄한다. 그가 지휘하는 공공반부패마약부(형사6부)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상화폐 투자 의혹' 사건을 맡았다.
허정 2차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특수통'이다. 광주지검 특수부장,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반부패수사3부장 등을 지냈다. 허 차장 휘하의 단성한 합수단장은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근무했으며, 사법행정권한 남용 의혹 사건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소환조사한 바 있다.
검찰 최고위층은 물론 정치권과 전국민의 주목을 받는 금융사건이 남부지검에 몰리면서, 검사들은 경력에 큰 도움이 되는 남부지검 근무를 선호하는 분위기이다. 실제 남부지검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고검장으로 영전한 검사가 많다.
반면 검찰 수사관들 사이에서는 남부지검이 기피 검찰청으로 뽑힌다고 한다. 수사의 공적이 검사에게 쏠리는 현실상, 업무만 많은 남부지검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승진시험을 통한 일반 승진이 아닌 수사 실적으로 바탕으로 이뤄지는 특별승진을 노리는 수사관들은 특수수사 경력을 쌓기 쉬운 남부지검을 선호하기도 한다고 법조계 관계자는 전했다.
최근 합수단의 정식 직제화가 결정돼, 서울남부지검의 금융·증권 범죄 수사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행정안전부는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고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와 금융·증권 범죄수사과를 신설하고 수사과장 직위에 필요한 인력 1명을 증원하기로 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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