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계가 기업 오너들을 겨냥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에 바짝 움츠린 분위기다. 관계자들은 "검찰 수사가 아플 정도로 깊숙이 파고든다"며 혀를 내두른다. "전쟁을 하는 것 같다"는 말도 들린다. 특히 지난달 27일 계열사 부당지원과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 된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동향을 보며 다소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5일 재계와 법조계는 조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내용을 "이례적"이라고 본다.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가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MKT)를 부당하게 지원해 회사에 약 131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조 회장을 이 내용에 대해서만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자체 판단에 따라 수사를 확대해 조 회장이 2017~2022년 회삿돈으로 자택의 가구, 외제차 구입 등에 쓴 개인 비리까지 파헤쳤기 때문이다. 기업이 연루된 수사에서 검찰이 얼마나 전방위로 수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분석된다.
이런 검찰 수사로 재계는 매일 긴장된 상태로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외식업계의 모 회장은 연일 보도되는 기업 오너들의 구속 소식에 경각심을 느껴 사회공헌활동을 늘리며 이미지 쇄신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기업 입장에선 곳곳이 지뢰밭인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는 여러 기업의 불공정거래 사건들을 맡아서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기업에 맞춰진 수사도 곧 오너들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도 기업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앙지검 공조부는 기업들의 '저승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조현범 회장을 재판에 넘긴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구현모 전 KT대표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과 관련해 공정위로부터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 방식으로 넘겨받았다. 자료는 공정위가 이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KT텔레캅을 조사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검사 민경호)도 지난 13일 이상영 대우산업개발 회장과 한재준 전 대표의 횡령·배임, 분식회계 혐의점을 잡고 인천 연수구 본사와 서울 중구 사무소, 두 사람의 주거지 등 10곳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회계자료 등을 확보했다. 대우산업개발은 회계법인 등과 공모해 수백억원대 분식회계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한 전 대표는 하청업체 대표 방모씨에게 하청을 맡기면서 공사수주비를 통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의심 받는다.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도 지난달 28일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을 배임, 횡령 혐의로 구속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남부지검도 당초 고발내용보다 더 수사를 확대해 김 회장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쓰는 등 회삿돈 약 1억원을 횡령한 내역까지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김 회장은 지난해 2월 한국코퍼레이션 소액주주들에 의해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됐다. 2018년 한국코퍼레이션 유상증자 당시 빌린 돈으로 증자 대금을 납입한 뒤 유상증자가 완료되자 이를 인출해 차입금을 변제했다는 내용이다. 2020년 3월 한국코퍼레이션 주식거래가 정지되기 직전 미공개 중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보유주식을 처분해 손실을 회피한 혐의도 있다.
당분간 이런 검찰 수사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검찰이 기업 법인에 국한해 진행 중인 수사들도 모두 대상을 오너들로 키울 가능성이 짙다. 당장 가구회사들의 ‘입찰 담합’ 의혹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은 전날 공정위에 이 사건에 대한 고발을 요청했다. 검찰은 사전 조사를 한 뒤 혐의점들을 확인하면 공정위에 정식 고발을 요청할 수 있다. 이 사건에는 한샘, 에넥스 등 8개 가구업체와 임직원 10여명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가 고발하면 검찰은 정식으로 수사 권한을 쥐고 전방위로 사건을 살필 수 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도 기업의 긴장감을 키웠다. 현재 14곳이 이 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SK지오센트릭, 현대제철, 여천NCC, 쌍용C&E 등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의 칼날이 그룹 총수에게까지 뻗칠지가 관심이다. 지난달 기소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에 대한 법원 판단이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어 재계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법원은 정 회장에 대해 판결하며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 범위를 어디까지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그룹 회장에게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해 정 회장을 회사와 함께 재판에 넘겼다. 앞서 지난 6일에는 의정부지법이 온유파트너스 대표의 관리 책임을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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