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두 차례 연속 동결 결정
[이미지출처=연합뉴스]한국은행이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금통위는 지난 2월 1년 반 동안 지속된 금리인상 행보를 멈추고 금리를 동결했는데, 이달 두 차례 연속 동결을 결정하면서 사실상 한은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됐다는 '인상 종결론'이 탄력을 받게 됐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키로 했다. 앞서 금통위는 지난 2021년 8월 이후 1년 6개월 동안 금리인상을 지속해 기준금리를 3.00%포인트 끌어올렸다. 올해 2월에는 불안한 경기상황이 이어지면서 금리를 동결해 '숨 고르기'에 나섰는데 이달에도 연속 동결을 결정하면서 긴축 행보가 막바지에 달했다는 시장의 관측에 힘을 실었다. 이날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미국(4.75~5.00%)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1.5%포인트를 유지하게 됐다.
한은이 이달 금리 동결을 결정한 주요 근거는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점차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2%로 1년 만에 가장 낮은 4%대 초반으로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흐름을 보이면서 추가 긴축 필요성이 약화하고 있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인플레이션 안정 기조가 예상된다"면서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가운데 금리인상의 안정효과를 기다리는 차원에서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1.6%)를 소폭 하회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분기 이후 3%대로 낮아져 연간으로는 지난 2월 전망치(3.5%)에 부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 성장세를 점검하면서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가상승세 둔화·국내 경기 둔화에 '동결' 결정
특히 수출과 내수 등 국내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도 금리 동결의 이유다. 수출 부진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도 역성장 탈출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월 경상수지는 45억2000만달러 적자로 '사상 최대'였고, 2월에도 적자가 이어지면서 부진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등 글로벌 은행 관련 리스크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이 완화된 것도 동결의 배경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추가 인상의 주요 근거였던 Fed 긴축 가속화 옵션이 사실상 사라졌다"면서 "물가 상승률도 한은 전망치를 하회하고 경기에 초점을 맞출 여유를 벌면서 이미 한은의 금리인상 사이클은 종료됐다"고 판단했다.
이달 금통위가 동결을 결정하면서 시장은 금리인상 종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인플레이션 완화와 경기 침체 우려로 사실상 금리인상 사이클이 끝났다"면서 "한은이 미 Fed보다 먼저 올해 하반기 금리인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중반 미국 경기가 침체에 진입하고 상반기 중 미국 금리인상이 종료될 것"이라며 "한미 금리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진다는 점에서 한국은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하 전환이 어렵다. 한은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상 최대 한미 금리차·국제유가 재상승은 변수
[이미지출처=연합뉴스]다만 향후 추가 인상 불씨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날 한은이 금리를 동결하면서 한미 간 금리 격차는 1.5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는데, 미 Fed가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 미국(5.00~5.25%)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1.7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이는 2000년 5~10월 기록했던 종전 최대 금리차 1.5%포인트를 넘어 사상 최대 금리차 기록을 경신한다는 점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금리차가 더욱 벌어지면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압박이 커지고 환율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의 감산 발표로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보이는 점도 변수다. 유가가 다시 오르면 항공·운송 가격이 치솟고, 전기 등 에너지 가격도 들썩여 물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세계 3대 유종인 두바이유 가격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24일 배럴당 74.1달러에서 전날 84.28달러로 올랐고, 서부텍사스유(WTI)도 지난달 17일 66.74달러에서 최근 80달러 안팎으로 상승했다.
이란, 노르웨이, 카자흐스탄, 나이지리아 등 중소 산유국들이 감산 합의와 무관하게 석유 생산량을 늘리면서 국제유가가 아직 배럴당 80달러대에서 유지되고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요인인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유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물가보다는 경제 성장률 쪽으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고, 한은도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이런 염려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만약 유가가 다시 올라 물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한은이 다시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은은 올 연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초반대로 떨어져 목표치인 2%로 향해 간다는 확신을 전제로 긴축을 종료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이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에서 안정된다는 전망에 기초한다. 지난해처럼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면 한은 통화정책 역시 긴축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정부도 최근 산유국들의 감산 결정이 유가와 물가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에너지 수급 상황 등을 면밀히 관리하고 취약계층 대책마련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유가 상승이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대응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근원물가' 고민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가 낮아지고는 있지만 '넓고 끈적한' 고착화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구성 품목 458개 가운데 1년 전보다 가격이 오른 품목 수는 395개로 무려 86.2%를 차지했다. 전체 상승률은 둔화되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진 품목은 오히려 더 늘어난 셈이다.
물가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4.8% 올라 소비자물가 상승률(4.2%)을 웃돌았다. 한은이 주요 지표로 삼는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4.0%로 전월과 동일했다. 이외에도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도 주요 변수로 거론된다. 2분기 요금 인상은 보류됐지만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의 경영 악화를 고려하면 공공요금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유가와 공공요금 인상에도 물가가 다시 급등세를 보이긴 힘들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산유국들이 감산을 해도 미국이 2분기부터는 소비를 중심으로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설 것이 유력해 유가가 크게 오르긴 힘들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 모두 금리인상기는 마무리 국면이라고 보는게 맞다"고 말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