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사태로 환율 하락…美긴축 기대↓
Fed 긴축 꺾이면 한은 금리동결 가능성
다만 외국인 자금유출, 원화약세 우려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전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우리 금융·외환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은행 유동성 지원책을 내놓는 등 위기 확산을 막고 있어 당장 문제가 커질 가능성은 작지만, 이번 사태로 Fed의 통화정책과 외국인 자금흐름, 원·달러 환율에도 일부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한국은행과 금융당국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은은 13일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SVB가 사태가 국제 금융시장과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이 부총재는 이날 회의에서 "이번 사태가 국내 금리, 주가, 환율 등 가격변수와 자본 유출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적절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은과 정부는 SVB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는 당장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재무부와 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자 보호조치를 즉각 시행한 것을 고려했을 때 SVB 파산이 시스템 리스크로 번져 우리 경제까지 흔들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부총재는 "현재로서는 SVB, 시그니처뱅크 폐쇄 등이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일각에선 SVB 파산이 Fed의 긴축 행보에 제약을 걸어 한은에 대한 금리인상 압박도 줄어들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이후 미국 고용·물가 지표가 강한 모습을 보여 Fed의 긴축이 더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컸는데, 이번 사태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Fed가 금융위기 가능성을 고려해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속도조절에 들어갈 경우 한은 역시 한미 금리차 확대 부담 없이 3.5%에서 금리인상을 멈출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의 강력한 긴축 행보에 급등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7.2원 내린 1317원에 거래를 시작해 장 초반 1310원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오늘 원·달러 환율은 SVB 사태 등에 따른 긴축 장기화 가능성 약화로 하락할 전망"이라며 "시장은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베팅을 되돌리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SVB 사태가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를 키워 외국인 자금 이탈이나 원화 약세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외국인 채권 투자 자금은 지난달 6800억원 이상 빠져나가며 석달째 순유출 흐름을 이어가는 중인데, SVB 사태로 외국인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면 외화 유출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원·달러 환율에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 등으로 인한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 확대는 원화 약세 심리를 부추긴다"며 "신용위기 우려감 증폭으로 달러 강세 압력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당분간 외환시장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관망세를 보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미국의 통화정책 역시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번주 나오는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만큼 둔화하지 않으면 SVB 사태에도 불구하고 Fed가 3월 FOMC에서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수 있어서다. 한은은 "이번 사태가 투자심리에 미치는 영향, 14일에 나오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결과 등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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