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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행운은 누구에게나"…'2등 무더기 당첨' 로또 명당 가보니

수정 2023.03.11 09:10입력 2023.03.11 09:10

제1057회차 동행복권 로또 2등 664명
서울 동대문 판매소서 2등 103장 당첨
평일에도 로또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20·30 MZ세대들도 찾아와 '로또 인증샷'

"조작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대박 명당이 아닐까요?"


로또 2등 당첨자가 무더기로 쏟아진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에 있는 복권판매소에서 8일 오후 만난 50대 직장인 김모씨는 "원래 로또 사는 곳이 있는데, 이번주는 여기로 왔다"면서 "당첨자가 많이 나왔으니 나도 당첨될 것 같다"며 이 같이 말했다.


지난 4일 제1057회 동행복권 로또 추첨 결과, 5개 번호와 보너스 번호를 맞춘 2등은 664명이었다. 그런데 이 복권판매소 한 곳에서 무려 103명이나 당첨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로또 판매점은 평일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몰렸다. 마치 로또가 가장 잘 팔리는 시간대인 금요일 오후 저녁 시간대를 방불케했다. 사람들이 계속 몰리면서 로또를 사려는 줄이 아례 가게 밖에까지 이어졌을 정도다.


20·30대인 이른바 MZ세대들도 로또 당첨의 꿈을 안고 줄을 서 있었다. 한 20대 청년은 "103명이 나왔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된다"면서 "이번에는 내가 될 것 같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 복권판매소는 식음료를 함께 파는 소형 슈퍼마켓이다. 80대 사장 전모씨에 따르면 올해 20년째 가게 영업을 하고 있으며 부부는 평생 장사만 했다고 한다. 복권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남짓이다. 부인 설모씨에 따르면 부부는 살면서 요행이나 재수를 바란적은 전혀 없고 순리에 맞춰 인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로또 2등 당첨자 103명이 나온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에 있는 복권판매소. 사진=한승곤 기자

부인 설 씨는 "그냥 장사하고 복권도 팔고 그랬는데 이번에 2등이 많이 나오면서 유명해졌다"며 "손님들이 많이 와서 오히려 힘들다"고 말했다. 남편 전 씨는 "2등 당첨자가 많이 나오기 전날 특별한 꿈을 꾼 것은 없다. 조상님 꿈도 안꾼다"고 말했다. 매출이 얼마나 뛰었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아유 몰라. 그냥 사람들이 많이 오는거 밖에는…"라며 답을 피했다.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작은 실랑이도 있었다. 한 30대 남성은 로또를 산 뒤 판매소를 나서며 "이거 다 조작 아니냐! 조작이다"라고 말해, 일각에서 제기하는 소위 '정부 로또 조작설'을 제기했다. 한 복권판매소에서 어떻게 103명이나 2등에 당첨될 수 있냐는 지적이다.


이 같은 로또 조작설 여론이 일자, 지난 6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복권위)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복권위는 6일 "2등 당첨 확률은 136만분의 1이다. 제1057회차 판매량이 1억1252만장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구매자가 균등한 번호를 조합했을 경우 당첨자는 (산술적으로) 83명 안팎에서 발생한다"며 "하지만 현실에서 구매자의 선호 번호, 앞선 회차들의 당첨번호, 구매용지의 가로·세로·대각선 같은 번호 배열 유형 등의 이유로 당첨자가 많을 수 있다. (반대의 상황에서 당첨자가) 극단적으로 1명까지 줄어들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고 밝혔다.


2등 당첨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복권판매소에는 평일 시간대임에도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이어 "로또 추첨은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된다. 방송 전 경찰관과 일반인 참관 아래 추첨 기계의 정상 작동 여부와 추첨용 공의 무게·크기 등을 사전 점검한다"며 "복권 추첨기와 추첨용 공은 경찰관 입회 하에 봉인작업과 해제 작업을 진행하기에 누구도 임의로 접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탄 로또 판매점의 수익은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일까. 익명을 요구한 로또 판매점 사장은 "로또 명당으로 소문나면, 그냥 앉아서 돈 버는 장사"라고 말했다. 이어 "자세한 수익은 알 수 없지만, 로또만 팔아서 못해도 월 수백만원은 벌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또 판매점은 로또 판매를 대행하고 정부로부터 판매 수수료를 받는다. 판매 수수료는 5.5%다. 예를 들어 1만원어치 로또를 팔면 550원을 가져가는 셈이다. 하루에 로또 100만원 어치를 팔면 5만5000원을 수익금으로 챙긴다. 따라서 '로또 명당'이라 소문난 판매점들의 경우 판매율이 높아지니, 수익금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로또 판매점은 전국에서 로또 판매액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로 꼽히는데, 한 주 기준으로 로또 판매액이 억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2등 당첨자 103명이 나온 복권판매소에 사장 부부가 붙혀놓은 글귀. 사진=한승곤 기자

한편 이제는 '로또 명당 판매점'을 운영하게 된 80대 노부부는 인생에서 요행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복권판매소에는 이런 부부의 철학이 담긴 글귀가 적혀있었다. 부인 설 씨는 '로또 명당으로 소문나면서 이제 부자 될 일만 남은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그런 것 나는 몰라요. 그냥 다른 사람들과 같이 눈 뜨면 장사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가고 그랬지"라며 "로또도 꾸준히 사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 그런 행운이 찾아 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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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쇼크웨이브]⑤이스라엘 보면 애플의 현재 보인다
수정 2024.01.18 09:15입력 2023.03.11 10:50

잡스, PA세미 인수로 애플 실리콘 토대 마련
반도체 책임자는 이스라엘 출신 조니 스루지
이스라엘, 애플 반도체 설계 주도적 역할

편집자주[애플 쇼크웨이브]는 애플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며 벌어진 격변의 현장을 살펴보는 콘텐츠입니다. 애플이 웬 반도체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애플은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노력 끝에 애플은 모바일 기기에 사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설계해 냈습니다. PC 시대에 인텔이 있었다면, 애플은 모바일 시대 반도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 위기와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 설비 투자가 이뤄지는 지금, 애플 실리콘이 불러온 반도체 시장의 격변과 전망을 꼼꼼히 살펴 독자 여러분의 혜안을 넓혀 드리겠습니다. 애플 쇼크웨이브는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40회 이상 연재 후에는 책으로 출간합니다.

"나는 항상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기본이 되는 기술을 소유하고 컨트롤하고 싶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2004년 10월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잡스가 이 말을 했을 때 애플은 아이팟에 사용할 칩을 전량 '포탈플레이어'에 의존하고 있었다. 맥 컴퓨터에 사용하던 '파워PC' CPU는 좀처럼 잡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잡스는 맥 컴퓨터가 인텔 칩을 사용한 PC에 대항할 강력한 '파워'를 갈구했다. 그런데 잡스는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한 1년 뒤인 2005년, 공들여 진행하던 파워PC를 포기하고 적이던 인텔의 손을 잡았다. 당시에는 충격적인 '적과의 동침'이었다. 1년뒤인 2006년, 폴 오텔리니 당시 인텔 최고경영자가 방진복을 입고 애플의 행사장에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나타난 장면만 보면 애플은 반도체를 포기한 듯했다. 보통의 경영자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잡스는 달랐다. 조용히 반도체 확보를 위한 물밑 작전에 돌입했다.

스티브 잡스(왼쪽) 애플 창업자가 2006년 열린 WWDC 행사에서 방진복을 입고 등장한 폴 오텔리니 인텔 최고경영자가 건네준 웨이퍼를 들고 있다. 사진=유튜브
인수합병 외부수혈 승부수

잡스는 일단 PC는 인텔에게 맡기고 모바일 기기용 칩에 전력을 쏟는 '투트랙' 전략을 시도했다. 강력한 성능의 칩은 인텔에 맡기고 이제 개화하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용 칩은 자체적으로 추진했다.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칩과 휴대용 기기를 위한 저전력 칩을 구분한 것이다. 자체 개발을 통해 저전력 칩에 회사의 운명을 건 셈이다.


잡스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2007년 등장한 첫 아이폰은 애플의 반도체 기술을 담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DVD플레이어 등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칩이 첫 아이폰에 사용됐다. 삼성의 칩도 잡스가 원하던 수준의 성능에 미치지 못했다.


잡스는 결단했다. 방법은 인수합병이었다. 잡스는 애플에 없는 기술을 가진 기업을 사들여 그동안의 성과와 인력을 고스란히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활용했다.

2008년, 애플은 반도체 설계회사 PA세미(PA Semi)를 인수했다. 1970년대~1980년대 중반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의 강자였던 DEC 출신의 다니엘 W. 도버풀 창업자가 만든 회사다. 도버풀 창업자는 PA세미 설립 전 설립했던 반도체 회사 시바이트를 대형 업체인 브로드컴에 인수시킬 만큼 많은 성과를 내온 인물이었다. 그는 60세를 앞둔 2004년 돌연 브로드컴을 떠나 독립을 선언하고 PA세미를 출범시켰다. 목표는 인텔과 IBM이 장악한 서버, 스토리지, 각종 임베디드용 마이크로프로세서. DEC의 역작이었던 '알파칩'을 개발한 창업자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애플에 인수되기 전 PA세미는 애플에 큰 기대를 걸었다. 애플이 PA세미의 CPU를 맥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신생기업 PA세미는 흥분했다. 애플과의 대형 거래가 임박한 듯 했다. 포탈플레이어 처럼 대박을 꿈 꿨다. 이때 잡스가 돌연 2005년 WWDC에서 인텔 CPU로의 전환을 발표했다. PA세미의 자리는 없었다. PA세미는 잡스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꼴이었다. 그런데 잡스는 PA세미의 제품을 사는 대신 아예 회사를 사들이는 선택을 했다.

반도체 업계의 '록스타' 짐 켈러. 사진=짐 켈러 링크드인

PA세미 인수는 성공적이었다. 미국 IT매체 IT월드는 애플의 10대 인수합병 성과 중 하나로 PA세미 인수를 거론했다. PA세미 인수는 최고급 반도체 인재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150명의 반도체 전문가가 애플 직원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짐 켈러(Jim Keller)다. 켈러는 도버풀 PA세미 창업자와 함께 시바이트, 브로드컴에서 일하다 PA세미를 거쳐 애플에서 반도체를 설계한다. 켈러는 애플이 자체적으로 설계한 첫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A4' 탄생을 주도했다. 애플 반도체 독립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켈러의 언급은 애플 실리콘이 탄생하게 된 이유를 보여준다. 켈러는 벤처비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애플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몰랐다. 그들은 비밀이라고만 했다. 반도체 업체로부터의 독립은 잡스의 생각이었다"고 했다. 잡스는 반도체 설계 직원들에게 조차 특유의 정보 차단 조치를 취했던 셈이다. 애플 실리콘을 통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수직계열화 완성 청사진 자체를 잡스가 그린 셈이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함께 첫 아이폰에 사용된 칩을 설계한 인트린시티(Intrincity)도 손에 넣었다. 애플이 PA세미와 인트린시티 인수에 사용한 투자금은 각각 2억7800만달러와 1억2000만달러다. 약 4억달러, 우리돈 약 5200억원의 투자는 엄청난 이익으로 돌아왔다. 자체 설계칩을 통해 애플은 기존 반도체 산업의 공식을 깨뜨리며 경쟁자가 따라오기 어려운 제품을 선보였다. 외부에서 사오던 칩을 내부에서 만들면서 수익도 치솟았다. 애플이 세계 최초 3조달러 기업으로 부상하는 데는 애플 실리콘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 애플 실리콘에 날개를 달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2015년 집무실을 방문한 조니 스루지 애플 부사장(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리블린 대통령은 자국 출신 스루지를 크게 반겼다고 한다.사진=이스라엘 대통령실

PA세미가 애플 실리콘의 출발점이라면 이스라엘은 애플 실리콘의 현재다. 애플과 이스라엘의 만남은 현재 애플 실리콘의 책임자인 조니 스루지(Johny Srouji)가 애플에 합류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스라엘 출신 스루지는 짐 켈러를 도와 A4칩 설계에 힘을 보태고 켈러가 떠난 이후에는 사실상 애플 실리콘을 책임지고 있다. 인텔과 IBM에서 칩 설계를 했던 스루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는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지금껏 인터뷰를 한 사례도 손에 꼽을 정도다. 스루지는 잡스 시대를 거쳐 팀 쿡의 휘하에서 A, S, W, U를 거쳐 M으로 이어지는 애플 실리콘 로드맵을 완성했다.


최근에는 스루지가 애플 내에서 가장 중요한 경영진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애플의 하드웨어(토니 파델), 소프트웨어(스콧 포스탈), 디자인(조니 아이브)을 상징하던 이들이 회사를 떠났지만 스루지는 수석 부사장으로 반도체와 배터리 등을 책임지며 애플 실리콘 혁신을 이끌었다.


팀 쿡 애플 CEO가 2015년 레우벤 리블린 당시 이스라엘의 대통령을 예방했다. 쿡 CEO는 리블린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이 애플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리블린 전 대통령 유튜브

스루지는 애플의 이스라엘 행도 주도했다. 스루지는 애플이 캘리포니아 본사 외부에 처음 만든 연구 조직인 이스라엘 헤르츨리아 R&D센터 설립에 깊숙이 관여했다. 애플은 스루지의 고향인 팔레스타인 하이파에도 R&D센터를 만들었다. '디자인드 인 캘리포니아'를 강조했던 애플이 두뇌인 반도체 칩은 이스라엘에서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 R&D센터를 만든 직후인 2013년, 애플은 업계 최초 첫 64비트 모바일 칩 'A7'을 선보여 경쟁자들을 놀라게 했다. 반도체 전문 매체 아난드테크의 편집장인 라이언 스미스는 "A7이 정말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고 평가했다.


스루지는 쿡 CEO의 이스라엘 방문에도 동행했다. 쿡은 레우벤 리블린 당시 이스라엘 대통령을 예방하며 스루지 부사장을 동행했다. 리블린 대통령은 “조니 스루지가 5명 더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며 농담했고 쿡은 “스루지 5명을 찾으면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화답했다. 리블린 대통령은 스루지가 이스라엘계 아랍인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다양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M1' 역시 상당 부분 이스라엘에서 설계됐다고 알려질 정도다. 어느덧 이스라엘 내 애플 실리콘 연구 인력은 2000명을 넘어섰다. 지금도 애플 홈페이지에는 헤르츨리아와 하이파 R&D센터에서 근무할 반도체 인력 채용 공고가 수십건 올라와있다. 애플은 지난해에도 예루살렘에 별도의 반도체 연구 조직도 신설했다.

애플의 이스라엘 헤르츨리야 R&D센터. 사진=구글스트리트

스루지의 발언은 이스라엘이 애플 실리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스루지는 이스라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쿠퍼티노 본사와 함께 M1, M1프로, M1맥스 등 칩을 포함한 M1 프로세서의 프리미엄 버전을 개발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스루지도 지금 애플 실리콘의 성과가 잡스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스루지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스티브는 애플이 진정으로 독특하고 훌륭한 제품으로 경쟁자와 차별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체 반도체를 소유해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애플 홈페이지에는 이스라엘 헤르츨리야 R&D센터 구인 공고가 올라와 있다.

스루지는 한때 인텔 최고경영자가 될 기회도 있었다. 2019년 인텔이 그를 최고경영자 후보로 선정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그는 애플에 남았다. 그 자리는 인텔에서 반 강제적으로 축출됐던 팻 갤싱어에게 돌아갔다. 스루지가 인텔행을 포기한 얼마 후 애플은 M1을 선택했다. 팀 쿡은 M1을 기반으로 애플 PC에서 인텔을 지워버렸다. M1의 놀라운 성능과 애플의 탈 인텔 전략을 알고 있던 스루지가 인텔의 CEO직을 맡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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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김새론, 생활고 인증하려다 ‘위생 논란’ 역풍
수정 2023.03.11 19:10입력 2023.03.11 19:08

장갑 낀 손으로 머리 묶고
베이킹 할 때 마스크 안껴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배우 김새론(23)이 재판에서 형량을 줄이기 위해 ‘생활고’를 호소하려다 ‘위생 논란’ 역풍을 맞았다.


김새론은 지난 8일 열린 공판에서 “소녀 가장으로 가족 부양하고 있어 범행 이후 피고인뿐 아니라 가족 역시 생활고에 시달려왔다”며 “경제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린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사진출처=김새론 SNS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김새론은 앞서 직접 고가의 집과 외제차를 자랑하며 ‘영 앤 리치’ 이미지를 만드는데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재판을 위해서도 국내 10대 로펌에 속하는 곳의 대표변호사이자 부장검사 출신인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사실도 알려졌다. 대형 로펌 두 곳의 법무법인에서 각각 2명, 4명씩 총 6명의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 알려져 ‘생활고’ 주장이 힘을 잃게 됐다.

이런 와중에 김새론은 11일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인증 사진을 공개해 위생 논란이 일었다. 생활고를 입증하려다 새로운 논란을 만난 셈이다.


사진 속 김새론은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를 묶고 있다. 카운터에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정작 베이킹할 때는 마스크 없이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모습이다.

사진출처=김새론 SNS

네티즌은 “매장 본사 측에서 님 고소 안 해요?”, “매출 떨어지겠다”, “생활고인데 변호사 6명 선임. 머리가 나쁜 건지 웃고 갑니다” 등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또래 20대들이 주로 하는 아르바이트를 생활고로 포장한 것도 반감을 샀다. 각종 커뮤니티엔 “우리에겐 그냥 평상시 일인데 저 배우는 저게 생활고 있는 사람들 일이라고 생각하나 보네”, “20대들 다 저러고 사는데”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김새론은 지난해 5월 18일 오전 8시쯤 서울 강남구 학동사거리 인근에서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가드레일, 가로수, 변압기 등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변압기가 고장 나 인근 건물 상가와 도로 신호등이 정전되기까지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김새론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려고 했으나, 김새론의 요구에 채혈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약 0.2% 이상으로, 면허 취소 수치(0.08%)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은하 기자 galaxy65657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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