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초성 딴 호칭…직장에도 침투
연예계 경직된 호칭 문화가 탄생 영향
2020년 "비발디 선배님의 사계" 사건 등
"SBN~"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인턴 사원 A씨에게서 온 카톡을 본 B씨는 순간 멈칫했다. 인턴 사원이 보낸 'SBN'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도 A씨에게서 별다른 카톡이 오질 않자 B씨는 고민에 빠졌다.
'이 카톡은 무슨 뜻이지?', '설마… 욕?', '내가 잘못한게 있나?'
"라떼는 말이야~", "존경합니다 sbn!"
정답은 윤석열 대통령도 사석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에게 사용한다는 '선배님'이다.
SBN이란 '선배님'의 초성 ㅅ(S), ㅂ(B), ㄴ(N)을 영어 이니셜로 바꾼 표현이다.
약 3~4년 전부터 아이돌 팬 사이에서 사용하던 말인데, MZ세대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됐다.
연예계에서는 방송에 출연할 때면 특히 아이돌 가수들이 선배 가수를 두고 항상 깍듯이 '선배님'이라고 호칭하는 문화가 있었다.
후배 가수가 선배 가수를 두고 '선배님'이라고 지칭하지 않으면, 해당 선배 가수의 팬덤에서 후배 가수에게 악플 테러를 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어떤 걸그룹은 이 때문에 사과문까지 게시한 일도 있었다.
신입 아이돌 가수들은 '건방지다'는 평가를 받으며 매장될 수 있는 리스크를 철저히 차단하고자 했다. 누군가를 호칭할 때면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하는 길을 택했다.
무조건 '선배님'을 앞세우다보니, 죽은 지 300년 가까이 된 사람에게도 '선배님'이라 호칭하는 일도 있었다.
2020년 한 아이돌 가수가 퀴즈를 맞추면서 "비발디 선배님의 사계!"라고 외친 일이다.
대부분이 웃어넘겼지만, 한편으로 이는 후배 아이돌들이 '선배님' 호칭에 대해 갖는 노이로제의 발현 차원으로 해석됐다.
K-POP 여러 팬덤은 아이돌 가수들이 칭하는 '선배님'을 귀엽고도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다.
SBN이라는 표현을 탄생시킨 토양은, 경직된 호칭 문화에 압박받는 아이돌을 걱정하는 팬들의 마음이었던 셈이다.
SBN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22년 4월 Mnet의 K-POP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2'에서다.
퀸덤2 출연자 중 연차가 높은 축에 속했던 가수 '효린'이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팬들은 '역시 효린 SBN, K-POP 기강 잡으러 오셨다'는 등의 칭찬 댓글을 달았다.
이에 퀸덤2측이 효린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면서 '효린 sbn의 등장…'이라는 제목을 달면서 SBN이 유명세를 얻었다.
더하여 유튜브 '문명특급'에서 그룹 '블랙펑크'를 결성하는 프로젝트 영상이 나오면서 유행어로서 입지를 다졌다.
해당 영상에서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성종이 인피니트 활동기에 있었던 일화를 말했다. '그 시절'에 선배 가수에게 앨범을 돌리며 인사를 할 때 악담을 퍼부은 선배 가수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일화에서 문명특급 측은 '그 시절 SBN한테 앨범 드리면'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최근에는 그 용례가 확대됐다. 팬들이 아이돌 가수의 말을 인용하거나 아이돌 가수의 입장에서 선배 가수를 지칭할때 SBN을 붙이는 것을 넘어 '18학번 SBN'과 같이 실제 자신의 선배를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한다.
혹은 '손흥민 SBN의 멋진 골'과 같이 자신의 직속 선배가 아니더라도 존경의 의미를 담아 호칭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외국계 회사에서 선배님을 'SBN', 부장님을 'BJN' 등으로 표기한다며 이미 익숙한 호칭이라는 의견도 있다.
구나리 인턴기자 forsythia2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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