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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자리 깔지 마세요"…탑골공원에 늘어선 종이박스줄

수정 2023.03.07 07:38입력 2023.03.07 07:26

6일 탑골공원, 춘천에서도 아침에 찾아와
무료급식 위해 노인들 '종이박스로 자리 표시'

"6시20분부터 와있지. 물가도 많이 올라서 밥 얻어먹으러 나온 거야. 지금은 어디 가서 취직도 못 하고 돈이 없으니 사장도 못 하고, 웬만한 거 시작하려면 돈이나 까먹을 것 같아. 그냥 이렇게 돌아다니는 게 제일 행복한 거야. 일단은 건강하다는 거니까"(박철민 할아버지·78·가명·경기 의정부 거주)


이곳에 모인 노인들은 자리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칭 '자율질서팀'도 생겨났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6일 오전 7시30분께 찾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좌측 인도. 언제부턴가 이곳에는 사람은 없고 종이박스만 길게 놓인 줄이 생기고 있다.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노인들이 자신의 순서를 매겨놓은 박스를 놓고 가는 것이다. '신월동 41', '외대 42', '쌍문동 43' 등 지역명과 번호를 적어놓은 박스가 있는가 하면 자신을 표시할 수 있는 '박 기사', '차씨' 등을 적어놓은 경우도 있다. 출근길로 바삐 발걸음을 옮기던 시민들도 궁금한지 박스를 놓는 노인에게 "이게 무슨 줄이에요"라며 물어보기도 했다. 바로 옆 도로에 세워진 관광버스에 탑승하던 외국인들은 버스에 오르는 것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김광석 할아버지(80·서울 강서구)는 "오전 6시에 화곡동에서 나와서 19번 박스를 놓았다"며 "여기서 도시락을 주면 저녁에 집에 가서 먹는다"고 말했다.


박스로 자리를 선점한 노인들은 탑골공원 뒤편으로 모인다. 오전 8시40분께 원각사에서 주는 아침 주먹밥을 받기 위해서다. 노인들은 하루에 두 끼 정도를 이곳에서 해결한다. 주먹밥과 미역국을 받은 박 할아버지는 다시 '28번 의정부' 박스로 돌아와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박 할아버지는 '예전엔 어떤 일을 하셨냐'는 질문에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며 그간의 역사를 줄줄 읊기 시작했다. 박 할아버지는 1984년부터 버스 기사로 일을 하다 3년 전 직장을 관둔 후 적적함에 1년 전부터 이곳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름을 묻자 그는 "아이들은 내가 여기 나오는 것을 몰라서 알면 난리난다"면서 "아이들이 못 나오게 할까 봐 서울에 나갔다 오겠다고 얘기하고 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이름 밝히는 것을 거절했다.


6일 오전 7시30분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좌측 인도. 이곳에는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노인들이 가져다 놓은 약 100개의 박스가 놓여있었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이곳에 나온 노인 중에는 박 할아버지처럼 끼니를 때우기 위해 경기, 인천, 멀게는 강원도 춘천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이곳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너무 멀리서 오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노인은 지하철이 무료이기 때문에 밥 한 끼를 먹으러 멀리서 오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심명우 할머니(70·경기 남양주)의 하루는 오전 4시부터 시작됐다. 오전 5시께 있는 첫차를 타고 덕소에서 이곳까지 6시에는 도착하기 위해서다. 집에서부터 지하철역이 멀어 중간중간 쉬면서 오다 보면 금세 시간이 간다고 설명했다. 오늘은 12번째로 박스를 깔았다는 심 할머니는 "애들 아빠와 같이 살고 있는데, 몸이 많이 좋지 않아 지난해 9월부터 나 혼자 나와서 도시락을 받아 간다"고 전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경쟁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달 24일에 방문한 이곳에서는 앞쪽에 자리를 잡은 할아버지가 한 할머니를 향해 "새치기를 한다"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로 다행히 몸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심 할머니는 "자리 때문에, 밥 얻어먹으려는 것 때문에 맨날 싸운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는 자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자칭 '자율질서팀'도 생겨난 모양이다. 박스 줄 중간에는 '이곳은 오시는 순서대로 자리입니다. 한 사람에 1개(박스)만 허용되며 새치기 등 약속을 어길 경우 퇴출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박스도 있었다.


오전 11시40분. 무료급식을 나눠줄 시간이 되자 박스 주인들은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사진=황서율 기자chestnut@

대기 시간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교활동 시간이다. 이원흠 할아버지(70·가명·서울 동대문구)는 폐지를 가득 담아 리어카를 움직이는 박모씨(62)를 만나자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 박씨는 "내일부터 집을 나가게 생겨 사우나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고, 이 할아버지는 "아휴, 어쩌냐"며 "(박스 받는) 단골은 생겼냐"고 박씨의 안위를 걱정했다. 15년 동안 이곳을 오갔다던 할아버지는 그 세월만큼이나 아는 사람이 많았다. 20분 남짓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지나가던 다른 할아버지와 장난기 가득한 손짓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원각사에서 제공하는 주먹밥을 받은 이 할아버지는 "잠시 집에 가서 주먹밥을 먹고 돌아오겠다"며 "나중에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늦잠이라도 자는 날엔 공치기 일쑤다. 평소 나와 있던 친구가 오지 않자 김광석 할아버지는 전화를 걸어 "이제 일어났어? 그래 끊어"라고 하더니 "집에서 오는데 1시간30분 걸리는데 얘는 못 오겠다"고 주변 할아버지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오전 11시30분께 박스 주인들은 자리를 찾아 앉았지만, 늦게 온 김말수 할아버지(76)는 배식이 이뤄질 때까지 서서 대기하다가 도시락은 받지 못하고 건빵과 물만 받았다. 이 시각쯤 받은 번호표는 210번대였다. 김말수 할아버지는 "오늘은 날이 좋아 사람이 많이 나왔나 보다"며 "인상이 좋으니 잘 될 거야"라는 덕담을 슬쩍 건네고는 서둘러 다른 무료급식소를 찾아 나섰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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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 결국 대만에 밀렸다…원화약세 영향(종합)
수정 2023.03.07 14:07입력 2023.03.07 10:31

2002년 이후 20년만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원·달러 환율 상승 영향으로 8% 가까이 줄면서 약 20년 만에 대만에 역전당했다. 원화 기준 1인당 GNI는 4220만3000원으로 1년 전보다 4.3% 증가했지만 지난해 환율이 크게 뛴 탓에 달러 기준으로는 7.7% 감소했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2022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2661달러로 2021년 3만5373달러보다 7.7% 감소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 해 동안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것으로 국민 생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 지표다.


우리나라 1인당 GNI는 2017년 3만1734달러로 첫 3만달러대에 진입했다. 이후 2018년 3만3564달러까지 늘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2019년 3만2204달러, 2020년 3만2004달러를 기록해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2021년에는 코로나19로부터 경기가 회복하고 환율이 하락하면서 3만5373달러로 3년 만에 반등에 성공했지만, 지난해는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1인당 GNI도 다시 뒷걸음쳤다.


최정태 한은 국민계정부장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12.9%나 오르면서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8.1% 감소해 달러 기준 1인당 명목 GNI도 감소했다"며 "하지만 원화 기준 명목 GDP(2150조6000억원)는 3.8% 성장했다"고 말했다.


환율이 1인당 GNI를 끌어내리면서 우리나라 1인당 GNI는 대만에 20여년 만에 역전당했다. 최 부장은 "2002년까지는 대만의 미 달러화 기준 1인당 GNI가 우리나라보다 높았으나 2003년부터 2021년까지는 우리나라의 1인당 GNI가 대만보다 높았다"면서 "대만 달러 환율이 6.8% 오르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1144원에서 1292원으로 12.9%나 급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GNI는 3만5373달러로 전 세계 36위,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에서 7위를 기록했다.

실질 GNI는 1.0% 감소해 GDP 성장률(2.6%)보다 낮게 성장했다. 실질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이 늘어났지만 교역조건 악화로 실질 무역손실 규모가 확대된 영향이다. 경제 전반의 물가를 보여주는 GDP 디플레이터는 1.2% 상승했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눠 계산한다.


지난해 연간 실질 GDP 성장률 잠정치는 지난 1월 공개된 속보치와 같은 2.6%로 나타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도 -0.4%로 속보치와 동일했다. 부문별 성장률은 수정됐는데, 4분기 민간소비(-0.6%)와 정부소비(2.9%)는 속보치보다 0.2%포인트씩 하향 조정됐다. 반면 설비투자(2.7%), 수출(-4.6%), 수입(-3.7%)은 각 0.4%포인트, 1.2%포인트, 0.9%포인트 높아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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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먼저 알아보는 부산 웹툰(B-웹툰)
수정 2023.03.07 11:07입력 2023.03.07 11:07

일 기타큐슈 배경 웹툰 제작, 부산작가 현지 파견

이탈리아 피렌체, 부산 웹툰 작가 작품 특별 전시

부산 웹툰 작가의 작품을 향한 해외의 관심이 뜨겁다.


부산시와 부산정보산업진흥원(원장 정문섭)은 일본 기타큐슈의 만화박물관과 오는 3월 30일부터 개최하는 이탈리아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부산 웹툰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시와 정보산업진흥원은 부산 지역 작가의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8년부터 일본 기타큐슈 만화박물관과 작품 교류를 추진해왔다.


지난 2019년에는 일본 작가 3명이 부산에 파견돼 부산 브랜드 웹툰 6개 작품을 제작했는데, 당시 함께 제작에 참여한 부산 지역 작가의 실력을 본 기타큐슈 만화박물관 관계자가 올해 기타큐슈를 배경으로 한 브랜드 웹툰 제작을 제안했다.

기타큐슈에 파견될 부산 지역 작가는 공모를 통해 총 3인이 선발됐으며, 3월 16일부터 22일까지 기타큐슈 현지 취재를 통해 작품을 제작할 계획이다.


선발된 작가는 모두 공모전 등 대회 수상 경력이 있고, 주력 장르도 로맨스, 스릴러 등으로 다양하다. 완성작은 기타큐슈 만화박물관에서 출판을 진행하며 일본국제만화가대회에 기획 전시된다.

일본 기타큐슈 작가가 그린 부산 브랜드 웹툰.

올해 하반기에 개최될 ‘부산 글로벌 웹툰 페스티벌’에서도 직접 만나볼 수 있으며, 온라인의 경우 ‘K-TOON 플랫폼’에 연재될 예정이다.


오는 3월 30일부터 4월 7일까지 개최되는 이탈리아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는 ‘만화와 웹툰-만화의 미래’라는 주제로 부산 지역 정규하(Q-HA) 작가의 작품과 함께 영상화가 진행됐던 부산 지역 작가 웹툰이 전시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부산을 찾은 피렌체 한국영화제의 리카르도 젤리 집행위원장이 영화의전당 인근에 있는 부산 글로벌웹툰센터에 상설 전시된 정규하 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리카르도 집행위원장은 함께 전시돼 있던 부산 지역 웹툰에 반해 ‘영상화된 부산 지역 웹툰’ 작품도 함께 전시할 것을 제안했다.


그 결과 올해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정규하 작가의 작품과 함께 김우섭 ‘샤크’, 오영석 ‘독고’·‘통’, 김태건 ‘강철비’·‘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반드시 잡는다)’, 오수민 ‘심야카페’, 남정훈·김태헌 ‘제7원’, 이성규 ‘바리’ 등 다수의 부산 지역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는 개막작 ‘한산’과 관련해 정규하 작가의 ‘노량해전’이 전시되며, 피렌체 인근 만화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 작가의 마스터클래스도 기획돼 있다.

정규하 작가의 ‘노량해전’ 중 한 장면.

봉준호 감독, 배우 박해일 등 주목받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영화제에 부산 지역 웹툰 작가 작품의 전시를 진행함으로써 부산 웹툰(B-웹툰)의 세계적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김기환 시 문화체육국장은 “이제 부산 웹툰(B-웹툰)은 해외에서도 초청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라며 “세계가 먼저 알아보는 부산 지역 웹툰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영남취재본부 이동국 기자 marisd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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