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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X파일]"라떼는 국회가"…이순재·최불암·강부자

수정 2023.03.05 12:00입력 2023.03.05 12:00

⑦1992년 총선, 유명 연예인 국회의원 당선
이순재·이주일, 지역구…최불암·강부자, 전국구
길지 않았던 의정경험, 여의도 떠나 친정으로

편집자주‘정치X파일’은 한국 정치의 선거 결과와 사건·사고에 기록된 ‘역대급 사연’을 전하는 연재 기획물입니다.

2023년 현재, 최고의 인기 연예인인 BTS나 임영웅이 선거에 출마한다면 어떻게 될까.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오면서 단숨에 선거의 관심을 독점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특정 정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가수나 배우들에게는 위험 요인이다. 정치색이 덧씌워지는 순간, 경쟁 정당 지지자들은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출마 얘기를 농담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는 지난 대선에서도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정 연예인 영입 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이를 둘러싼 관심이 뜨거웠다. 만 40세가 되지 않은 연예인은 대선 출마 자격 자체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사실 한국 정치에서 유명 배우나 가수가 선거의 변수로 등장한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금도 중요한 선거운동을 하게 될 경우 평소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이 찬조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TV에서 보던 얼굴을 유세 현장에서 보면 대중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배우 이순재가 2018년 3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열린 영화 '덕구' 제작보고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당 입장에서는 흥행 보증 수표다. 그렇다면 유세장에서의 바람잡이 역할에 머물지 않고, 직접 출마하는 경우는 없을까. 이른바 ‘삼김 정치’ 시대가 이어지던 1992년 3월24일 제14대 총선에서는 당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배우들이 직접 출마해 화제를 일으켰다.


주인공은 이순재, 최불암(본명 최영한), 이주일(정주일), 강부자 등이다. 1934년 북한 회령 출신인 배우 이순재는 서울 중랑구갑 지역구에 민주자유당(민자당) 후보로 나섰다. MBC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최민수) 아버지로 나와 장년층의 폭넓은 인기를 끌었던 시기다.


이순재 후보는 4만6297표(득표율 48.71%)를 얻으면서 민주당 이상수 후보(44.75%)를 꺾고 당선됐다. 중랑구는 당시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는데 이순재 후보의 국민적인 인기를 토대로 민자당에 승리를 안겼다.


제14대 총선에서는 또 한 명의 유명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코미디계의 전설 이주일이다. 1940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인 정주일이라는 이름으로 통일국민당(국민당) 후보로 경기 구리시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2만5751표(45.34%)를 얻어 민자당, 민주당 후보를 모두 꺾고 당선됐다.


1992년은 전원일기의 영원한 회장님, 배우 최불암도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해다.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최영한이라는 본명으로 국민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최불암은 전국구 5번으로 당선됐는데, 당시 국민당 전국구 3번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2018년 10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전국후원회장인 배우 최불암 씨가 발언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역대 총선 가운데 제14대 총선이 특별한 이유는 탤런트와 코미디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인물이 한꺼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는 점이다. 14대 총선은 대선과 총선이 1992년, 같은 해에 열린 관계로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던 시기다.


이순재, 최불암, 정주일 의원이 한꺼번에 국회 본회의장에 올랐던 제14대 국회. 또 한 명의 유명인이 국회의원으로 합류했다. 194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배우 강부자다. 그는 대선을 거치면서 전국구 의원이 사임한 자리를 물려받아 국민당의 새로운 전국구 의원이 됐다. 총선 때는 당선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지만, 결국 제14회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정치에 합류한 유명 연예인들의 고민은 높은 관심만큼이나 부담감도 크다는 점이다. 다른 의원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작은 실수도 더 크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뜻한 바가 있어서 정치를 더 이어가려고 해도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최불암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을 지역구에 도전했지만 3만3020표(32.49%)의 득표율에 머물면서 낙선했다. 당시 최불암(후보 이름 최영한)을 꺾은 인물은 현재도 국회의원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1996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한 김민석 의원은 4만9657표(득표율 48.87%)를 얻어 당선됐다.


“배우나 가수가 정치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라는 대중의 편견 속에 의정활동을 이어갔던 유명 연예인들. 국회의원이 될 때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들이 정계에 뿌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유명 연예인 출신 의원들은 현실 정치의 높은 벽에 더해 친정인 방송 연예계 쪽의 러브콜까지 이어지면서 여의도 정가를 떠나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들의 굵고도 짧았던 의정활동 경험은 마무리됐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뉴스in전쟁사]러 용병 '바그너그룹'은 왜 돌격전을 고집하나
수정 2023.03.10 10:38입력 2023.03.05 11:00

4만 명 이상 사상, 러시아군 전술 변화도 촉구
제정 러시아 때부터 '형벌부대' 악명 높아
中 등에서도 고대부터 죄수들 전쟁 동원

편집자주[뉴스in전쟁사]는 시시각각 전해지는 전세계의 전쟁·분쟁 소식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알려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입니다. '뉴스(News)'를 통해 현재 상황을 먼저 알아보고, '역사(History)'를 통해 뉴스에 숨겨진 의미를 분석하며, 다가올 가까운 미래의 '시사점(Implication)'을 함께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여러분 곁으로 찾아가며, 40회 이후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이후 1년을 넘어가면서 러시아군 내 유독 발언권이 강해지는 집단으로 용병기업인 '바그너그룹(Wagner group)'이 꼽히고 있습니다. 이 용병회사의 대표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의 정계 발언권도 점차 커지고 있는데요.


러시아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이끌고 있는 예브게니 프리고진 대표의 모습.[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는 특히 러시아 전역의 교도소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신병으로 모집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개전 이후 벌써 4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모두 그가 신병으로 거둔 죄수들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많은 죄수들이 응하고 있죠. 총을 들고 조국을 위해 싸우면 그동안의 모든 죄를 사면해준다는 말에 이 죄수부대가 가장 위험한 선봉에 서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바그너그룹은 함께 싸우고 있는 러시아군에도 더 공격적인 전술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러시아 군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죠. 심지어 러시아군이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전선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푸틴의 최측근이 뒷배로 있다고 해도 전시에 무리한 요구까지 서슴지 않는 이 용병기업과 죄수부대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뉴스(News) : 바그너그룹, 러시아군에 '돌격대' 작전 제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바그너그룹 본사 건물의 모습.[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바그너그룹과 관련한 최근 뉴스를 검색해보면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주요 전선의 선봉에 서있으며, 심지어 러시아군에 작전까지 제안하면서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4일(현지시간) 뉴스위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러시아군의 전술에 변화가 있음을 느끼고 있으며 이들이 바그너그룹의 전술제안을 일부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바그너그룹은 최근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활용 중인 전술인 '돌격 분견대 전술(The tactics of the assault detachment)'을 러시아군에 제안했다고 뉴스위크는 보도했는데요.

이 전술은 막대한 희생을 각오하고 전방으로 진격할 돌격대를 따라 전선을 돌파하는 전술로 알려져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선처럼 지난해 9월 이후 수개월간 방어전선이 이미 단단히 구축된 상황에서는 막대한 인명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전술이죠. 실제 바그너그룹은 지난해 2월 개전 이후 현재까지 약 4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러시아군 전체 사상자의 3분의 1 이상이 바그너그룹의 사상자로 알려질 만큼 엄청난 피해를 입은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그너그룹이 이 전술을 러시아군에 채택하라고 하는 이유는 이대로 전선을 유지한 채 소모전만 벌이면 더 많은 인명이 희생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쟁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미사일이나 드론공습만 벌이며 전선을 움직이지 않는 러시아군을 바그너그룹과 프리고진 대표는 매우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러시아 군부 내에서는 오히려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정규군은 모두 징집한 병사들로 병사 한명이 모두 소중한 시민들이지만, 바그너그룹 용병부대는 전체 병력의 20% 정도인 수뇌부와 장교 등을 제외하면 모두 중범죄자들로 구성돼있어 얼마든지 위험한 작전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죠.

◆역사(History)1 : 2차대전에서 악명 높았던 소련의 '형벌부대'
1942년 구성된 소련의 형벌부대(Penal Battalions)가 전투에 투입된 모습.[이미지출처=russiabeyond.com]

사실 전시에 죄수로 구성된 부대를 보내는 일이 현대에는 흔치 않기 때문에 바그너그룹 용병부대의 모집과 이들의 전투는 전세계 미디어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만큼은 특별한 일로 비춰지진 않는 모습인데요. 그 이유는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 이후 지금까지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형벌부대(Penal Battalions)'라 불리던 죄수들로 구성된 군대를 많이 동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처음 이 형벌부대가 등장한 것은 1877년부터 1878년까지 이어졌던 튀르키예와의 전쟁 때라고 하는데요. 이때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군은 시베리아 유형 등을 받던 죄수들을 대상으로 군에 복무하는 대신 형 집행 기간을 단축한다는 조건으로 형벌부대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형벌부대가 대규모로 징집된 것은 1942년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던 시기로 알려져있습니다.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 정권은 무차별적으로 진격해 오는 나치 독일군을 막기 위해 징집할 수 있는 모든 남성들을 징집했는데요. 무려 3400만명에 달하는 징집 인원들 중에는 죄수들까지 포함돼있었습니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여있어서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죠.


이 형벌부대는 글자그대로 사형수부터 정치범, 살인범, 그리고 단순 절도 등 각종 잡범들까지 러시아 내 모든 죄수들을 끌어모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약 50만명에 달한 이들은 최전선의 가장 위험한 작전에 투입됐고 이들 중 3분의1에 달하는 17만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알려져있죠. 일각에서는 이들의 규모가 지뢰제거, 공수부대 등이 포함된 작전까지 합치면 100만명이 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들의 작전은 오늘날 바그너용병부대의 작전과 유사했습니다. 별다른 무장이 없이 형벌부대가 육탄돌격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정예부대들이 이 틈을 이용해 적을 기습하는 방식이었죠. 그러다보니 실제 살아남은 병사들도 많지 않았던데다 전후 소련에서도 일부 뛰어난 전공을 세운 이들을 제외하면 약속대로 사면받은 병사들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역사(History)2 : 中 고대 진나라 때 이미 등장…고조선 침공에도 동원
중국 고대 진나라 때 병사들의 형상을 본따 만든 조각상들이 남아있는 시안의 병마용갱(兵馬俑坑) 모습.[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

이 형벌부대는 사실 중국에서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수차례 전쟁에 동원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기원전 209년, 당시 중국 진나라에서 진시황이 사망한 이후 그의 후계자인 호해가 황제가 되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병력이 부족해진 진나라에서 형벌부대를 만들게 됐다고 합니다.


한나라 때 역사서인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나라 조정은 당시 장한(章邯)이란 장군에게 수도인 함양 일대에서 부역을 하고 있던 죄수 20만명으로 군대를 만들어 반란군을 토벌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당시 이 죄수들은 주로 전쟁 노예들로 구성돼 각종 토목공사에 동원된 민간인들이었는데, 장한은 이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전국의 반란군을 토벌하는데 성공합니다.


장한과 진나라 조정은 반란군을 모두 토벌하면 이들의 죄를 사면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내준다고 약조합니다. 이 약조를 믿고 죄수부대는 전투를 거치면서 점차 강한 군대로 성장해갔죠. 하지만 이후 진나라 조정에서 반역죄를 무고하게 뒤집어 쓴 장한이 초나라의 항우에게 항복하면서 이들 죄수들은 모두 생매장 당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진나라가 멸망한 이후 들어선 한나라 때도 죄수부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원전 109년, 한나라의 무제가 위만조선을 공격할 때 5만명의 죄수를 동원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요. 이러한 기록들은 고대 중국에서 전쟁이 발생할 때마다 필요에 따라서 죄수들을 선봉부대로 활용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사점(Implication) : 인해전술에 승자는 없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러시아 안팎에서는 이러한 형벌부대 동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한 전통적인 돌격작전은 일종의 '인해전술(human wave attack)'로 막대한 병력을 소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결국 선봉에 세울 죄수들이 부족하면 병사들을 앞세워야하고, 병사가 부족해지면 다시 징집에 나서야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별다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군은 점차 바그너그룹의 전술에 의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방어체계를 갖춘 우크라이나군의 역습에 휘말려 개별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지난달 약 130대에 이르는 탱크를 잃을 정도로 참패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 징집 가능인구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소모전이 결국에는 러시아에 유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역시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심각해 계속 이런 소모전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미국, 중국보다 거의 2배 가까운 영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국의 절반도 안되는 1억4000만명 정도의 인구를 보유한 러시아 입장에서 인적자원을 대거 잃는 인해전술을 되풀이해 승리하는 것은 결코 승리라 부르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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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섭의 속터뷰]전영수 교수 "인구 문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수정 2023.03.06 07:53입력 2023.03.05 10:00

지방 위기 이미 시작, 수도권 번지는 건 시간 문제
여성-고령 인력 활용 고민해야, 이민은 그 이후
지방에 권한과 예산 주는 자치분권 강화도 필요

인구 절벽, 인구 지진, 인구 재앙….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다. 먼 미래의 시나리오도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 지금 이야기다.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78,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 이하인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빠른 경제성장에 놀랐던 세계는 한국의 엄청난 저출산에 다시 놀라고 있다. 정부는 이달 중 저출산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며 의견 수렴에 분주하다. 우리는 왜 지난 16년간 280조원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산율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궁금증을 풀고자 3월 2일 인구문제 전문가인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인구문제가 왜 중요한가.

나는 인구가 전부라고 표현한다. 인구구조의 변화라는 게 한순간에 생긴 게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누적, 축적돼오다가 지금 문제로 비화한 것이다. 사회 변화를 추동하거나 결과물을 심화시키는 차원에서 보면 인구가 전부다.


전에는 인구를 생산의 주체라는 측면에 주목해서 봤다. 노동력으로서의 자원, 생산 가능 인력 공급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그런 측면에서 출산율이 낮아지니 데드라인에 들어왔다고 했다. 이민을 얘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자원이 줄어들면 사회에 안 좋으니 외국인을 들여오자는 공급 측면의 고정관념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일반 가계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그다지 큰 이슈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당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기업일 것이다. 사회를 유지해왔던 경제활동의 모수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근에 주목되는 것은 수요 측면이다. 이 측면까지 가면 파장이 확 넓어진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이미 인구 위기는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아직 수요 측면까지는 안 간 건가.

이제 가고 있다. 1970년대에는 연간 출생아 수가 100만 명이 넘었다. 이게 지난해에는 24만 8천명이다. 1/4이 됐다. 수요 핵심이 지방대학이다. 사립대뿐 아니라 지방거점 국립대도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모집 못 하는 과가 생겼다. 절대 인구가 줄어들고 지역대학에 가지 않고 수도권으로 향하다 보니 사회 유출까지 생겼다. 지방에서는 수요 측면의 위기가 체감이 확 되는 상황이 됐다. 이미 위기가 시작됐다. 경제구조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도권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한쪽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서울의 이슈로 사안을 보니 풀 수 없는 것이다.


기업들이 특히 민감하게 느낄 것 같다.

대기업들은 로봇을 도입하는 등 끊임없이 혁신하며 선제적으로 움직여왔다. 그렇지만 중소기업들은 미스매치가 심각하다. 일자리는 흘러넘치는데 사람을 뽑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으로 대체하고 있다. 노동력이 부족해 한국 사회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으나 이것도 얼마 안 남았다. 충격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비유로 표현한다면?

인구 문제 원인은 다양하다. 즉각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정책이 아니다 보니 방치하거나 연기하는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세대 정책이자 가치관으로 연결되는 이슈다. 한 세대 이상 걸린다. 출산율만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이미 그 단계는 지났다. 그런 식의 해법을 찾는 것은 과거 문법이다. 노동력 수입만 생각해서 ‘잔류하고 정주하지 않는 식의’ 이민을 선순위에 놓는 것은 행정편의주의 발상이다.


나는 ‘완전연소’라고 표현하는데 우리 내부에 진짜 일할 사람, 경제활동 인구가 없는가 하는 문제다. 여성 인력 등과 관련해 우리끼리도 완전연소가 안 된 상황에서 왜 나라 밖에서만 데리고 오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고령인구도 충분히 쓸 수 있다. 65세~70세 됐다고 내보낸다? 그건 숙련된 경험과 노하우를 사장시키는 것이다.


2030이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던데.

인구 문제와 관련해 원인에 대한 정확한 문제 진단이 잘못됐다. 20·30세대 당사자들이 주 대상인데 그들의 얘기는 안 듣고 50~60대 기득권자들이 앉아서 이것 주면 좋을 거야 하는 식으로, 20·30세대가 봤을 때 전혀 안 맞는 상황으로 오도되고 있다.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선배 세대를 추격할 수 있고 역전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출산 연기나 포기한 걸 가지고 너희들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현재 0.78인데 합계출산율은 어디까지 떨어질까.

원래 1.3명 이하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잘 안 벌어진다는 것이 인구학의 가정이었다. 인구위기선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지금 0.78까지 떨어졌다. 이게 뭘 의미하나. 1.3명 이하는 상상력의 영역이었다. 이미 상상력을 벗어났기에 어디까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정부가 280조원 넘게 돈을 썼는데도 출산율이 계속 낮아진 이유는?

우선 팩트체크부터 해보라. 정부가 정말 그렇게 돈을 썼을까. 그럴 리가 없다. 출산과 관련해서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으니 유관 예산을 갖다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돈들이 정말 출산장려와 관련된 대책에 들어간 돈인가 하는 점이다.


성장 전략이 우선이다. 인구 변화가 빨랐던 국가들은 하나같이 이런 돌파구를 찾았다. 대표적인 게 독일 메르켈 정부가 했던 인더스트리 4.0이다. 일본의 아베 서사이티 2.0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엄마가 안 기른다. 남편, 사회가 아이를 기른다. 우리는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크다. 이제 깊이와 넓이를 다 다루는 총체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부의 사람들이 모여 정책을 다룬다는 것은 과거식이다. 작은 걸로 전체를 보려고 했다. 필요하긴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돈을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얻는 데까지 가야 한다. 복지부가 무슨 잘못이 있나.


그럼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대통령이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움직여야 한다.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정책 결정까지 나와 줘야 한다. 예산 집행권이 있는 기구를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변화할 수 있다.


전영수 교수는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적인 과제로 자치분권 강화를 주장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외국 가운데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나라가 있나?

없다. 나라마다 각자 긴 시간 동안 풀어낸 방식이 있다. 우리가 그들 사례를 가져온다고 먹혀들지 않는다. 설계방식이 다르고 움직인 사람들이 다르다. 우리는 우리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요구되는 변화가 있다면.

자치분권이 필요하다. 지방에는 먹이가 없어서 알을 못 낳고 서울은 둥지가 없어서 알을 못 낳는다는 말이 있다. 균형이 돼야 하는데 더 불균형이다. 수도권 12% 공간에 52% 사람들이 산다. 주민등록상 인구가 그렇지 실제로 수도권에 사는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229개 지방자치단체 중 114곳이 소멸지구다. 지방에 권한과 예산을 확 내려줘야 한다. 그래서 지자체의 생존능력, 순환경제를 재구축해서 지속가능한 직장과 주거를 만들어줘야 한다. 최근 도농균형발전법을 개정하고 인구감소지역 특별발전법을 만든 것이나 고향사랑 기부제도 도입한 것은 잘한 것이다. 지방모델이 서울 모델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자치분권이 제일 중요하다.


일단 합계출산율을 올리려면 목표치를 어느 정도로 봐야 하는가.

올리는 것은 늦었다. 반전이 아니고 완화다. 완화 속에서의 적응이 중요하다. 만약 목표치를 내건다면 단순 슬로건이 아니라 그것까지 가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아야 한다.


출산 문제와 관련해 기업들이 나서는 것은 어떨까.

인구문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정부의 실패다. 이제는 기업이 맡아야 한다. 기업은 지금까지는 방관만 해왔다. 애써 외면해왔다. 이제는 아니다. 정부가 근원적으로 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 기업이 유력한 해결 주체로 등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해외에서 배울 수준 넘어섰다. 기존 있는 것들을 이렇게 넣어보고 저렇게 넣어보고 하는 결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이나 기업을 넣어서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내용이나 주체, 방식을 한국식으로 해보자.


[전영수 교수는 누구인가]

인구통계와 세대 분석으로 사회변화를 연구하는 사회경제학자다. 한양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방문 교수 등을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있다. 여러 매체에 인구와 경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 《대한민국 인구·소비의 미래》 《한국이 소멸한다》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등이 있다.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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