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인력 위한 근무 시간 단축 논의 활발
'실험의 장' 마련돼…임금·생산성 등 고려한 실험 진행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일(Work)의 변화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찐비트 속 코너인 '오피스시프트(Office Shift)'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시작된 사무실의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가 함께해온 실험을 통해 업무 형태의 답을 모색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여러분 곁으로 찾아갑니다. 40회 연재 후에는 책으로도 읽어보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주말이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일요일 오후에 만나면 종종 듣는 말이다. 주 4일 근무제를 하면 끙끙 앓던 '월요병(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마다 피로감을 느끼는 증상)'도 없어질 것이라며 눈을 반짝 뜨곤 한다. 이내 부풀었던 기대감을 내려놓지만 주 4일 근무 환경을 꿈꿨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는 듯 입꼬리가 올라간다. 주 4일 근무제 도입의 전제는 현재와 월급이 같아야 한다는 것. 회사에서 근무 시간을 줄여줄 테니 월급도 줄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표정이 어두워지며 "그건 좀…" 말을 흐린다.
주 5일제는 도입된 지가 벌써 100년 가까이 된다. 1926년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 포드자동차 창업자가 하루 8시간씩 주 40시간이라는 주 5일 근무제를 발표하면서부터 세계로 퍼졌다. 주 4일 근무제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코로나19다. 그 전까지 주 4일 근무제는 세계 곳곳에서 여러 차례 실험이 진행됐지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조치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3년여 간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를 보낸 지금 주 4일 근무제는 더이상 특별한 조치가 아니라 현실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한 선택지가 됐다. 여전히 이를 도입한 기업은 소수이고 보편적인 제도라 보긴 어렵지만, 이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와 다양한 적용 방식이 논의되는 실험의 장(場)이 마련됐다.
◆ 주 4일 근무제, 워라밸 보장에 인재 확보 수단까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과 웰빙이라는 가치는 코로나19 시기 직장인의 최대 관심사였다.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재택근무가 확산하고 업무 조정이 어려워지자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졌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직원도 늘었다. 장시간 근무가 비효율적이고 오히려 생산성을 낮춘다는 지적이 퍼져나갔다. 직장인 사이에서 근무 시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였다. 주 4일 근무제는 이를 계기로 급부상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진행된 실험 결과만으로는 주 4일 근무제의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2000년 프랑스가 먼저 주당 근무 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을 마련했지만 이후 시간제 계약직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쏟아졌다. 반면 2015~2019년 아이슬란드에서 공공 부문 근로자를 중심으로 연봉을 유지하며 주 40시간이었던 근무 시간을 주 35~36시간으로 줄인 실험은 생산성을 높이면서 직원의 워라밸도 개선하는 등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이슬란드 공무원은 현재까지 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시기가 도래했지만 주 4일 근무제와 관련한 논의는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라밸과 웰빙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는 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력 확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상황에서 이 근무 방식이 인재를 끌어들이는 일종의 '복지'로 평가받고 있어서다. 최근 영국에서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주도한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줄리엣 쇼어 보스턴컬리지 교수는 "처음에는 주 4일 근무제가 고용주에게 팬데믹 번아웃에 대한 문제였다"면서 "지금은 직원을 유지하고 채용하는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현장 근로자는 또 다른 복지이자 혜택으로 평가받는 재택근무가 불가능하다. 이에 근무 시간을 단축해 인력을 끌어들이려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브라이언 크로프 HR본부 리서치 책임은 지난해 5월 미 경제 전문지 패스트컴퍼니와의 인터뷰에서 "인재 확보전이 매우 치열하다. 기업들이 매 6개월씩 임금을 20%씩 올려주는 것에 지쳤다"면서 "차라리 주 40시간 근무제를 재고해 '우리가 돈을 더 주진 않지만 근무 시간을 줄여줄게'라고 말하는 것이 인재를 확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고 설명했다.
◆ 전 세계서 실험 '속속'…국가·지자체 법안 마련 속도
코로나19를 거치며 전 세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시작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국 남부 메릴랜드 주의회는 올해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세금 인센티브 혜택을 주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핵심은 올해 주당 근무 시간을 기존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줄이는 기업에 매해 연간 75만달러(약 9억8000만원)의 세금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셸리 헤틀먼 의원은 "(2021년 유행한 근로자가 대거 퇴사하는 현상인) 대퇴사(Great Resignation)를 보니 근로자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일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검토한 주는 메릴랜드가 처음은 아니다. 실리콘밸리가 있어 세계 IT 기업의 중심지로 평가받는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지난해 4월 500명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32시간, 주 4일 근무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기존에 주 40시간, 주 5일 근무제를 적용해 왔는데 근무 시간 단축을 추진했다. 법안 통과시 캘리포니아 기업 2600여곳과 주 내 근로자 5분의 1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법안은 아직 주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유럽 국가들은 코로나19 기간 중 이미 주 4일 근무 관련 법을 만들어 도입했다.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벨기에는 지난해 2월 근로자가 주 4일 또는 5일 중 근무 일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해 같은 해 1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다만 주당 근무 일수를 5일에서 4일로 줄이면 하루 근무 시간은 8시간에서 9시간30분으로 연장된다. 근무 시간 자체의 단축은 거의 없지만 근무 일수를 줄여 휴일을 늘리는 형태다.
스페인에서도 진보 정당인 마스파이스의 제안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중소기업 중심의 근무 시간 단축 실험을 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1000만유로(약 138억원)의 보조금을 만들어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근무 시간은 대폭 줄여 실험에 참가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했다.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업은 인건비 초과분을 감내할 수 있도록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 제출해야한다.
근로 환경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도 집권 자민당을 중심으로 2021년 '선택적 주 4일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희망하는 직원들에 한해 주중 4일 근무를 허용하는 대신 월급은 10~20% 가량 삭감할 수 있는 근무제 도입을 허용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파나소닉, 히타치제작소 등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며 주 4일 근무제 실험에 적극 동참했다.
◆ 생계 달린 임금과 주 4일 근무제의 상관관계
주 4일 근무제는 언뜻 보면 '꿈의 업무 환경' 같아 보이지만 현실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세부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앞서 언급된 각국의 주 4일 근무제 적용 방식을 보면 핵심으로 언급되는 요소가 바로 근무 시간과 임금이다. 근무 시간을 단축하되 임금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 직장인으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다. 월급은 근로자의 생계와 직결되는 요소인 만큼 임금을 줄이는 근무 시간 단축은 근로자가 쉽게 환영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 민간 기업의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주도하는 비영리 단체 포데이위크글로벌이 근무 시간은 80% 줄이되 임금을 100%로 유지해야 한다는 실험의 기본 조건을 내건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미국 메릴랜드와 캘리포니아, 스페인이 도입을 추진하는 주 4일 근무제는 임금이 동일하되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형태다.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인테사 상파울로가 올해 1월부터 임금은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직원들이 주 4일 근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벨기에와 일본에서 주로 논의되는 주 4일 근무제는 전체 근무 시간을 줄여 근무 일수를 줄이면 임금도 줄어들거나, 기존 임금을 유지하면서 근무 일수를 줄이려면 하루 근무 시간을 기존보다 연장하도록 한다. 최근 국내 석유 화학 등 제조업계에서 기존 4조 3교대에서 근무 일수는 줄이되 하루 근무 시간은 늘리는 4조 2교대로의 전환 바람이 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도 정부의 실험과는 달리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되 임금은 12%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도입한 상태다.
낮은 기본급 때문에 초과근무로 임금을 보전받는 저숙련·저임금 노동자는 주 4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실질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주 4일제, 그거 생산성 괜찮습니까?
기업과 경영진 입장에서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위해 가장 고민하는 요소가 바로 생산성이다. 주당 근무 일수를 5일에서 4일로 하루 줄이고도 기업 실적을 끌어올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등 생산성과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경영진의 의지가 새로운 근무 제도 도입으로 직결되는 만큼 주 4일 근무제가 생산성을 보장한다는 확신은 추후 이 제도의 확산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취업 플랫폼 사람인이 2021년 12월 기업 279개 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주 4일 근무제에 긍정적인 기업도, 부정적인 기업도 이 제도의 생산성에 주목했다. 주 4일 근무제에 '부정적'이라고 답한 기업은 전체의 47.2%였는데, 이유 1위가 '생산성이 감소할 것 같다'였다. 긍정적인 입장이었던 기업들도 10곳 중 6곳이 주 4일 근무제로 '충분한 휴식이 보장돼 직원들의 생산성이 높아질 것 같다'고 답했다.
다만 아직 경영진이 주 4일 근무제가 생산성을 향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게 갖고 있지 않은 분위기다. 사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 2곳 중 1곳꼴로 주 4일 근무제가 실제 시행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영국 공식 인력개발원(CIPD)이 지난해 6~7월 자국 기업 내 근무 환경 결정권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55%가 '임금 변동 없이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우리 조직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일'이라고 답해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주 4일 근무제로 생산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률은 39%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률(30%)보다 높았지만, 전체 응답자의 66%는 임금 감소 없이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려면 먼저 효율성부터 끌어올리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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