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도기간 3분의1 지났지만, 규정 무시 차량 만연
"계도기간 연장과 계도 효율성 제고 방법 고려해야"
[아시아경제 최태원 기자] 21일 오전 7시40분께 서울 동작구 신상도초교사거리. 서울시 내에서 유일하게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이지만, 우회전 신호를 지키는 차량은 몇 되지 않았다. 차량 대부분 보행자가 보이지 않으면 신호에 상관없이 우회전을 강행했다. 심지어 지난해 7월 개정된 도로교통법조차 지키지 않고 우회전을 시도하는 차량도 여러차례 눈에 띄었다. 신상도초교 근처에 거주한다는 박모씨(36)는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차량들이 많다”며 “계도기간이 두 달 뒤까지인 것도 몰랐는데 갑자기 딱지를 떼이면 당황스러울 것 같다”고 했다.
오전 8시50분께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사거리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 22일부터 차량 신호가 적신호라면 우회전 시에도 일시정지를 해야 하지만, 운전자들은 속도만 줄인 채 우회전을 이어갔다. 성산동 방향 우회전 차선에 있던 차량 10여대는 차량 신호가 빨간 불임에도 망설임 없이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우회전했다.
우회전 규정 강화를 골자로 한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운전자들은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초 석달간 주어졌던 계도 기간이 3분의 1이나 지났지만, 운전자들의 인식은 시행 첫 주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22일부터 시행된 변경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전방 차량 신호가 빨간불일 때 운전자는 일단 정지선 앞에 멈춰야 한다. 이후 전방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으면 우회전할 수 있고, 보행자가 있다면 횡단이 완료된 후 진행이 가능하다. 전방 차량 신호가 초록색일 경우에는 차량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서행하면서 우회전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승용차는 6만원, 승합차는 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경찰은 오는 4월21일까지 계도 기간을 거친 뒤, 본격적인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우회전 신호등은 전국 15개 장소에 설치돼 시범 운영된다. 우회전 신호등 추가 설치 계획은 시범 운영 종료 후 각 지자체와 경찰이 논의를 통해 정한다. 현재 시범 운영이 되는 곳은 동작구 신상도초교사거리 등 서울 1곳과 영도구 영선소방서사거리, 연제구 부산은행연서지점 등 부산 2곳, 미추홀구 주안사거리, 부평구 신촌초교, 부평구 백운고가교, 부평구 동수지하차도 위 등 인천 4곳, 유성구 원신흥동 작은내수변공원, 서구 용소네거리 등 대전 2곳, 남구 새터삼거리 등 울산 1곳, 부천 송내역, 수원 성대역사거리, 남양주 가운지구 입구사거리 등 경기 3곳, 춘천 춘일감리교회사거리, 원주시 늘품사거리 등 강원 2곳이다.
계도기간에 들어선 지 한달이 됐음에도 운전자들은 변경된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차량 신호가 적신호임에도 횡단보도 앞에서 우회전할 때 멈춰 서지 않고 진행하는 운전자가 상당수였다. 행인들이 횡단보도를 채 떠나기 전 우회전하는 차량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민들은 규정의 잦은 변경과 홍보 부족에 아쉬움을 표했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김모씨(56)는 “작년에 바뀐 규정은 알지만, 지난달에 바뀐 건 처음 듣는다”며 “우회전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아 딱지를 떼인 적도 있고, 최근에서야 바뀐 규정을 제대로 알게됐는데 또 바뀌었다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공무원 김모씨(31)는 “공무원이다 보니 규정을 잘 지키려 노력하지만, 도로에서 보면 지키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무언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 경찰 관계자는 “상당수 운전자가 계도기간을 아직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며 “계도기간 동안 꼭 지키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단 ‘바뀐 법이 곧 적용되겠구나’라는 것을 알리는 목적이 더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해 7월 바뀐 규정도 계도기간엔 잘 안 지키다가, 막상 단속이 시작되자 잘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계도기간 연장과 함께 계도 효율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우회전 관련)수십년간 쌓인 운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을 뿐더러 운전자들도 체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계도기간 동안 개선이 더디다면 계도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계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고가 자주 났거나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곳 등 지역을 위주로 보다 현장 계도를 적극적으로 하고, 언론 등에 홍보를 좀 더 힘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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