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 한국 진출 발표, 美선 10년차
아이폰 사용자 4명 중 3명 활성
할부시스템도 출시 앞둬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조만간 한국 상륙이 예고된 애플의 비접촉식 간편결제 서비스 ‘애플페이’는 안방인 미국에선 이미 출시 10년차를 맞았다. 아이폰 사용자 4명 중 3명은 애플페이를 사용 중이며, 대기업들의 ‘페이 전쟁’이라 할 수 있는 모바일 지갑 결제 시장에선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미국 내에서 간편결제가 차지하는 금액이 많지 않다고는 하나, 경쟁자 중에선 압도적인 시장 우위를 다졌다. "아이폰으로 지갑을 대체하겠다"고 선언해 온 애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 조만간 수수료·이자 없이 결제액을 나눠 낼 수 있는 할부 시스템 ‘애플페이 레이터’ 등도 출시한다.
13일(현지시간) 루프 벤처스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미국 내 아이폰 사용자 4명 중 3명꼴인 74%는 자신의 폰에 애플페이를 활성화 했다. 출시 3년차인 2016년 10%에 불과했던 애플페이 활성화 비중은 2017년 20%, 2020년 50%에 이어, 이제는 ‘보편화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 75%에 가까워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페이를 활성화했다고 해서 모든 계정이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아이폰이 지갑이 되기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서서히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애플페이의 사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5억명 이상, 미국에서만 45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최근 몇 년간 구글, 삼성, 월마트 등 대기업 간 페이 전쟁이 불붙으며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매장들도 단기간 대폭 늘었다. 현재 미 전역에 위치한 소매매장의 90%는 애플페이를 결제 수단으로 적용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2014년10월 애플페이 출시 당시 이 비중은 3%에 불과했다. 뉴욕시에서는 2019년부터 버스, 지하철에서도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WSJ는 "애플페이로 결제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질수록 서비스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고 전했다.
지난 8일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 지하에 위치한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마친 30대 브룩 림씨는 계산서를 받은 후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이폰을 내밀었다. 그는 "요즘엔 애플페이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내민다"면서 "5년 전만 해도 꼭 미리 물어봐야만 했다"고 말했다. 애플워치를 착용한 친구들은 99% 애플페이만 쓴다고 전한 브룩씨는 "정말 편한데, 왜 번거롭게 지갑을 가져 다녀야 하나 싶기도 하다"고 어깨를 으쓱였다.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운 애플페이는 다른 기업들과의 페이전쟁에서도 앞서고 있다. 데이터 플랫폼 페이먼트 닷컴(PYMNTS)이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페이는 지난해 2분기 미국 매장 내 모바일 지갑 거래의 48%를 차지했다. 2위인 구글페이(17%)를 두 배 이상 웃돈다. 2020년 30%대 비중을 차지하며 선두에 섰던 페이팔은 3분의 1토막 나며 3위로 내려앉았다. 페이먼트 닷컴은 "아직 신용카드, 현금에 비해 미미하지만, 모바일 지갑 시장에서는 애플페이가 대어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간편결제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 외에도 미국 10대들이 애플페이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투자회사 파이퍼샌들러는 "애플페이는 10대를 위한 최고의 결제 앱"이라며 "10대가 움직이면 국가도 움직인다"고 강조했다.
애플은 이제 다음 스텝을 준비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 애플페이 상륙 소식이 확산했을 당시, 미국에서는 '애플페이 레이터' 테스트 소식이 알려져 주목받았다.
애플페이 레이터는 수수료나 이자 없이 결제액을 6주 동안 4번에 걸쳐 나눠 내는 일종의 할부서비스다. 앞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내부 테스트 방침을 밝힌 데 이어, 그 규모가 확대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르면 4월 께 서비스가 공식 출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애플은 '브레이크 아웃'으로 명명된 독자적인 핀테크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미국에서 애플페이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을 전하면서 "애플이 금융사가 되고자 한다"고 보도했다.
애플페이 자체적으로도 숙제가 산적하다. 맨해튼 할렘에 거주 중인 30대 직장인 알렉스 리우씨는 "신용카드에 각종 혜택이 많다 보니 아직 애플페이보다 카드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된다"며 "운동하러 나갔다가 돈을 써야 하는 상황에선 비상용으로 애플페이를 쓰게 된다"고 말했다. 즉, 미국 내에서 애플페이의 경쟁자는 구글페이, 삼성페이, 벤모(페이팔)가 아니라 기존의 편리한 지불시스템인 신용·직불카드, 현금 등이라는 설명이다.
페이먼트 닷컴의 보고서에서도 아이폰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 10명 중 9명은 평소 애플페이보다 다른 지급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번스타인의 하르시타 라와트 애널리스트는 "소비자들의 습관은 매우 바꾸기 어렵다"며 "업주들이 수용하는 데에도 수년이 걸렸다"고 전했다. 번스타인의 과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휴대폰 없이 외출하는 것보다 지갑 없이 외출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변했지만, 이는 사람들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신용카드만큼 신뢰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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