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여파로 중국의 관련 산업 경쟁력이 20년 이상 뒤처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고성능 반도체의 수급뿐 아니라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는데도 영향을 받으면서 산업 생태계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5일 업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 "미국의 수출 규제 공세로 중국의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이 수십 년 뒤처질 수 있다"면서 "해외 기술이 없다면 잃어버린 기반을 되찾는 데에만 최소 20년이 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의 최근 대중국 반도체 규제 동맹에 일본과 네덜란드가 합류하며 압박을 키우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대한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AI와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은 5대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업체를 보유한 네덜란드와 일본에 동참을 촉구해왔으며,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말 3국은 이에 대한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14나노(㎚, 10억분의 1m) 이하의 첨단 반도체 기술을 규제 대상으로 삼았으며 일본도 같은 대응을 취할 방침이다.
네덜란드의 동참 소식 역시 중국에 치명적이다. 네덜란드의 ASML은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하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합의가 실행될 경우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도 중단될 것으로 관측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미 반도체 초미세공정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의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차단한 네덜란드에 미국이 DUV 의 수출통제까지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반도체 특수가스 전문업체인 진홍티치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부총경리이자 산업 컨설턴트인 레슬레 우는 "미국, 네덜란드, 일본 간 합의로 지난 2년간 중국의 반도체 산업 전체가 의존해 온 비(非)미국 장비공급의 문이 공식적으로 닫힌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지난해 10월 규제 발표 이후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도 중국 스타트업으로 납품하던 AI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생산을 일시 중단한 바 있다.
우 부총경리는 "반도체 독립을 추구하던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업체와 비교해 현저히 불리한 상태에서 시작할 것이며, 제재에 따라 더욱 뒤처지게 될 것"이라면서 "중국은 약 3세대 정도 밀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경쟁기업들이 기존의 한계에 접근할수록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따라잡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한 AI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설립자는 SCMP에 "제재로 인해 고성능 칩 부족 현상이 임박해있다"면서 "재고의 가격이 급등해 관련 구매 비용이 5~6배 뛰었으며, 수익성이 곤두박질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장기적으로는 제재 위반에 대한 우려로 대기업들이 제품을 재설계하거나 심지어 철수시킬 수 있으며,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우려에 직면해 일부는 파산할 수 있다"면서 "남은 기업 역시도 연구·개발(R&D) 투자가 줄고 혁신 역량이 약화해 전체적인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은 미·중 간 패권 경쟁의 핵심인 반도체 분야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중국 정부는 1조위안(약 183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 부총경리는 "지원법은 업계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일 것"이라면서 "이는 모색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지만, 매우 비효율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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