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횡단보도 차량신호등이 고장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감속운전을 하던 중 차량 틈에서 뛰어나온 어린이를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운전자가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심의 무죄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2022년 11월30일 [서초동 법썰]26㎞/h '민식이법'무죄에 檢 "멈췄어야" 항소 기사참조
2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서승렬 박재영 김상철)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어린이보호구역치상), 이른바 '민식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최근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모든 운전자는 횡단보행자용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에 진입할 때도,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선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하는 등으로 보행자가 있는지 확인해 보행자 통행이 방해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며 "그럼에도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 등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시정지 등을 했어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고 볼 사정도 찾아볼 수 없다"며 "1심은 도로교통법상 일시정지의무에 대해 보행자 또는 어린이의 존재를 인식했을 경우에만 성립한다고 판단했지만, 이 같은 의무는 운전자가 현실적으로 인식한 경우 뿐 아니라 사회통념상 보행자 또는 어린이의 존재가 충분히 예상되는 경우, 예컨데 이 사건 사고처럼 횡단보도 진입부분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보행자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도 당연히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년 6월12일 낮 A씨는 서울 서초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편도 2차선 도로에서 SUV 차량을 몰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B군(당시 10세)을 들이받았다. B군은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었다. 사고가 난 곳은 신호기 고장으로 신호가 없었다. B군은 반대 차선에 줄지어 정체된 차량 틈새에서 뛰어나왔다. 사고 당시 A씨 차량의 주행속도는 시속 약 26.1㎞였다.
B군은 쇄골 골절상 등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었다. A씨는 반대차로가 정체돼 시야가 제한됐다면 충분히 서행하고 좌우를 주시했어야 한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주시의무를 다했다고 해도 정차한 차들로 인해 피해자가 횡단보도에 진입한 사실을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사고를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항소심에선 "당시 도로 양쪽으로 서행하면서 통행하는 차량으로 횡단보도 진입부에 보행자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자동차를 일시정지해 횡단보도를 통행하는 보행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거나 발견 즉시 정차할 수 있게 속도를 더욱 줄여 진행했어야 한다"고 공소사실을 바꿨다.
변호인은 항소심 최후변론에서 "이 경우를 처벌하려면 피고인에게 '회피가능성'이 있어야 하지만, 회피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도로교통법에 일시정지 의무가 명시된 것도 이 사건 사고 이후인 데다, "'언제' 멈췄어야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문제"라고 말했다.
A씨가 2심 판단에 불복하고 상고하면서 이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한편 B군은 치료 후 후유증 없이 일상생활 중이며, 합의 후 A씨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를 법원에 전달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