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2배속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넷플릭스·웨이브·왓챠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이용하면서 영상을 말 그대로 2배속으로 재생한다는 말이다. 영상 그 자체의 아름다움, 영상 속 소품과 소음, 의도된 침묵 등이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어쩌란 말인가 싶겠지만, 그들의 대답은 간결하다.
"그런 거 몰라도 재미있던데요?"
지난해 말 출간된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콘텐츠 트렌드의 변화다.
영화를 2배속으로 보는 신(新)인류의 등장은 신문과 뉴스에는 사형선고라 할 수 있다. 작고 빽빽한 활자, 재미없는 스토리텔링, 생소한 단어들. 거기서 동반되는 읽기의 수고로움이 죄목이다. 5분, 10분, 15분 유튜브 동영상도 길어서 ‘초 단위’ 플랫폼으로 이동한 인류다.
짧은 것은 쉬워야 소화된다. 쉬운 것만 찾다 보니 문제도 있다. ‘심심한 유감’이라는 표현에 "사과를 하는데 뭐가 심심하다는 거냐"고 분개한다. ‘금일’을 금요일이라 생각하는가 하면 ‘사흘’을 ‘4일’로 여긴다. 이를 특정 세대의 무지로 여긴다면, 그때가 바로 유예된 선고의 집행 순간이다.
언어는 변화한다. 안 쓰는 단어는 사라진다. 생소한 단어라도 다수가 쓰면 사전에 오른다. 실제로 문해력이 낮은지도 의문이다. 이들은 쏟아지는 이미지·텍스트를 실시간으로 소화하며 자란 세대다. 정보처리 능력은 이전 세대에 비해 월등하다.
빨리보기 트렌드를 주도하는 건 역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인구의 44%를 차지한다. 소비시장의 트렌드세터라는 점에서 현재 권력이고, 잠재적 큰손이라는 점에서 미래 권력이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신문은커녕 뉴스의 미래조차 밝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영화를 감상하지 않는다. 소비한다. 월정액만 내면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영화·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감상은 사치다. ‘가성비’가 그들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인기 콘텐츠를 배속으로 시청하고, 빠르게 내용을 이해하고, 인증샷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된다. 불확실한 이익(재미)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이들은 되면 한다.
그들 문화의 정수, 가성비를 고민하다 보면 ‘뉴스가 더 쉬워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근 MZ세대들이 주로 구독하는 뉴스레터 서비스들은 정말 쉽게 쓰여졌다. 정보에 대한 문턱이 낮다.
신문은 ‘단독’을 경쟁하지만, 이들은 단독에도 관심이 없다. 어제 나온 뉴스라도 친절하고 쉬운 언어로,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사람을 원한다. 기꺼이 돈을 내고 구독하는 것은 단독기사가 1면에 실린 오늘 신문이 아니라, 더 재미있게 재가공된 어제의 콘텐츠다.
법원이 최근 쉬운 말로 풀어쓴 판결문을 내 화제가 됐다. 법원은 문어체를 버리고 구어체로, 동사 위주의 짧은 문장으로 판결문을 썼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문장 옆에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라는 설명이 붙었다. 시민단체들은 법원이 마침내 ‘이지리드(Easy Read)’를 수용했다며 환호했다. 전문적인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방식이다. 법원은 이지리드를 내놨다. 제3부의 옆자리를 자처하는 언론도 '이지뉴스'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