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SUV 중고차, 신차보다 10% 비싸
대러제재 대상서 빠진 중고 승용차 대거 수출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지난해 일본 내 중고차 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종은 신차보다 비싸게 거래됐는데,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신차 판매가 급감한 상황에서 시장에 나온 중고차마저 러시아에서 대부분 수입해간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대러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일본 중고 승용차를 대거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니케이)은 일본 중고차 경매 대기업 USS의 보고서를 인용, 지난해 중고차 경매 평균 청약 단가가 104만8000엔(약 1011만원)으로 전년대비 21%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2월의 경우 전년동월대비 7% 상승한 99만7000엔으로 31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도요타 도쿄 본사 앞에 전시된 자동차를 지나치는 사람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인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는 중고차 가격이 신차를 앞지르는 현상도 벌어졌다. 도요타 해리어의 하이브리드 차 일부 모델은 1월 중순 기준 평균 519만9000엔을 기록했는데, 옵션 등에 차이가 있지만 통상 신차 가격인 462만8000엔보다 10% 이상 비싼 가격이다. 니케이는 "해리어의 경우 신차를 받으려면 1년을 대기해야 하고, 가장 높은 사양의 모델 'Z 그레이드'는 수주가 정지됐기 때문에 중고차로 고객들이 빠져나갔다"고 분석했다.
도요타 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 차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사륜구동 경차로 유명한 스즈키의 짐니도 'XC 그레이드' 중고차 가격은 239만9000엔(2315만원)으로 신차가격인 190만3000엔(1836만원)을 약 30% 웃도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혼다의 소형 SUV 베젤 하이브리드 일부 모델에서도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보다 20% 비싼 349만9000엔(3377만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중고차 가격이 신차보다 비싼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신차 판매량 자체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0년부터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지난해 일본 신차 판매량은 약 420만대로 45년 전 수준까지 떨어졌다.
오타루항에 러시아로 수출되는 일본 중고차가 늘어서있다.[이미지출처=일본 오타루시 홈페이지]여기에 그나마 일본 시장에 나온 중고차도 전부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부품 조달이 어려운 점을 들어 러시아 현지 사업을 중단했고, 이에 신차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 자연스레 중고차 수요가 높아졌다.
중고 승용차가 대러제재에서 제외된 것도 수출 급증을 부추겼다. 현재 대러제재 하에서는 600만엔(약 5791만원) 이상의 자동차를 사치품으로 간주해 러시아에 수출할 수 없지만, 600만엔 아래 중고 승용차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또한 중고차는 국제결제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규제를 받지 않는 지방은행을 통해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러시아로의 수출을 확대시키고 있다. 현재 러시아 주요 은행들은 SWIFT에서 퇴출돼 무역송금길 자체가 막혀있는 상태다. 여기에 루블화 강세와 엔저현상이 겹치면서 일본 중고차 가격에 대한 수요가 더 올랐다.
공영방송 NHK는 러시아 중고차 수출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일본 도야마현의 경우 중고차 업체에 러시아로부터 하루 200건이 넘는 의뢰가 들어오고 있으며, 이는 전쟁 여파로 주문이 떨어졌던 지난해 3월의 약 6배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중고차 경매 업체 오크넷의 오하타 사토시 상무는 "일본 신차 생산이 회복돼도 중고차 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1~3년이 걸린다"며 "이같은 흐름이 해소되려면 올해 여름은 돼야 한다"고 닛케이에 전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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