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행복한 신혼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죠. 더 큰 신혼집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지금 사는 집마저 없어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어요. 앞날을 생각하니 참담해서 한숨만 나옵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에 거주하는 이모씨(35세)는 올해 말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혼부부다. 여자친구와 2년여간의 연애 끝에 평생을 약속했고,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을 위해 착실히 일하고 저축하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난해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의 전세사기 만행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이씨는 갑작스럽게 신혼집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씨가 돌려받지 못하고 날릴 위기에 처한 전세보증금은 총 7350만원이다. 월세방을 전전하던 그는 직장생활이 안정되자 2019년 12월 마침내 더 넓은 아파트 건물의 전셋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해당 주택에는 1억2700만원의 근저당이 잡혀있었지만, 임대인이 여러 건물을 보유해 금전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었다. 특히 공인중개사가 일이 잘못되면 1억원까지 보상해준다는 공제 증서를 써주자 안심한 그는 계약을 맺었다. 입주 이후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2021년 12월에는 전세금을 5% 인상해 재계약까지 맺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한 입주민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우리 아파트는 깡통전세다’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붙인 걸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는 집주인에게 어떻게 되는 영문인지 묻기 위해 수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전혀 닿지 않았다.
결국 이씨의 집은 순식간에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 지난해 12월 경매가 개시되면서 올해 5~6월 중 1차 경매가 열릴 예정이다. 결혼식이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소중한 보금자리를 잃게 되는 셈이다. 이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더 넓고 좋은 새집으로 이사갈 수 있도록 신혼부부 청약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당장 살만한 공간마저 빼앗기며 거리에 내앉게 생겼다”라며 “대출만기가 올해까지인데다 소송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다보니 너무 막막하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집이 경매에서 낙찰되더라도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추홀구 일대에서 같은 건축업자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아파트 단지 중 일부는 이미 법원경매가 진행됐지만, 1·2차 경매에서 유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택시장 전체가 주춤하면서 수요가 줄어든데다 권리관계마저 복잡하다 보니 선뜻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아예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세입자가 직접 3차 경매에 응찰해 집을 사버리는 사례마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이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시설 관리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리업체가 임대인이었던 ‘건축왕’과 연관이 있는 회사로 추정되는데, 이번 전세 사기 사건이 수사에 들어가면서 더 이상 이득을 볼 게 없어지자 아파트 관리마저 손을 놔버린 것이다. 이씨는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일주일 동안 고쳐주지 않아 계단으로 오르내린적도 있다”라며 “화재경보기가 고장나자 관리업체에서 이를 회수해버리고 재설치하러 오지 않은 세대도 있어 안전문제에도 취약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불안한 마음으로 막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집주인이 임대사업자라면 의무적으로 들어야하는 임차보증금 보증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라며 “스트레스로 두통이 너무 심해 몇 달간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이어 “전세사기 피해자 중에는 아예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고 실외기 위에 올라갔던 분도 있다고 들었다”라며 “나라에서 이처럼 참담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시길 간절히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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