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상 사랑받는 한류 간판스타
SM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다양화 선도
'더불어'로 진정한 문화 교류 가치 실현
지난달 5일 자카르타 시내 한 호텔. 현지 식품기업 사사의 코코넛 크림 광고 행사가 한창이었다. 주인공은 배우 겸 가수 최시원. 특유 밝은 미소로 팬 수백 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쏟아지는 질문에 미간 하나 찡그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답했다. 간혹 진지한 고민이 나오면 친구처럼 함께하며 격려했다. "'넘버 원(Number One)'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온니 원(Only One)'이 되세요. 그러면 언젠가 반짝반짝 빛날 거에요."
최시원은 인도네시아에서 10년 이상 사랑받는 한류 간판스타다. 10대부터 50대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슈퍼주니어로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시발점은 2012년 4월 월드 투어 '슈퍼쇼 4 인 자카르타'다. 슈퍼쇼는 슈퍼주니어가 그간 발표한 노래들을 세계 여러 나라들을 순회하며 라이브로 공연하는 콘서트. 다양한 볼거리와 색다른 연출로 국내 콘서트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슈퍼주니어는 춤과 노래만 연습하지 않았다. 해당 국가 언어도 몇 마디씩 숙지했다. 팬들과의 교분이 두터워지려면 언어 장벽부터 낮춰야 한다는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주문이 있었다. 무대에서 적절히 활용해 감칠맛을 더했다.
'슈퍼쇼 4 인 자카르타'는 슈퍼쇼가 시작되고 4년 뒤에 성사됐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인도네시아 팬들의 빗발치는 요구를 뒤늦게 수용했다.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수카르노 하타 공항은 슈퍼주니어의 입국 장면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 수천 명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공연장인 마따 엘랑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일대도 교통이 마비될 만큼 북적거렸다. 슈퍼주니어는 뜨거운 성원에 보답하고자 공연을 1회 추가했다. 세 차례 무대에 올라 2만5000명을 매료시켰다. 해외 가수가 동원한 최다 관객이었다. 하나같이 슈퍼주니어를 상징하는 펄 사파이어 빛의 은은한 야광봉을 들고 어둠이 내려앉은 공연장을 은하수처럼 감쌌다.
유니 한국콘텐츠진흥원 인도네시아비즈니스 주임은 "인도네시아 한류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시원도 "놀라운 순간과 순간의 연속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류 인기가 높지 않을 때였어요. K-팝이 막 관심을 받고 있었죠.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만큼 바빴으나 관객석 열기만큼은 생생히 기억해요. 슈퍼쇼를 했던 지역 가운데 손꼽힐 정도로 호응이 상당했어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응원 문화가 보기 좋았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던 터라 많은 힘을 얻었어요."
복수 K-팝 그룹은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런데 롱런한 사례는 슈퍼주니어가 사실상 유일하다. 대부분 멤버 간 불화나 적잖은 나이 등에 발목을 잡혀 활동을 중단했다. 전속 계약 만료로 해체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슈퍼주니어도 곤경에 처하기는 매한가지. 수월한 극복에는 남다른 태생적 환경이 한몫했다. 바로 멤버들의 개인별 특성과 장단점을 고려한 구성이다. 댄스 그룹을 표방하면서도 탤런트, 배우, 개그맨, MC, 작곡가 등의 임무를 부여해 병행하도록 했다.
예컨대 최시원은 2005년 KBS '열여덟 스물아홉'에서 류수영의 아역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해 김수현 작가가 극본을 집필한 KBS '부모님 전상서'도 출연했다. 몇 차례 단역 연기로 실력을 쌓고 KBS '드라마시티'에서 처음 주인공(정명)을 꿰찼다. 2007년에는 단막극 형태로 제작된 MBC '향단전'에 이몽룡으로 출연해 서지혜와 호흡을 맞췄다. 모두 원대한 목표를 위해 계획된 절차였다.
이 총괄 프로듀서는 2000년대 초반 일본을 빈번히 왕래하며 일본 아이돌 그룹 운영형태를 주시했다. 가장 주목한 그룹은 모닝구 무스메. 멤버들의 폭넓은 활동이 앨범 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총괄 프로듀서는 이보다 더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일찍이 면담 등을 통해 연습생들의 겸직 가능성을 타진하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제공했다. 최시원의 경우 압구정고교 2학년 때 중국으로 건너가 어학연수를 받았다. 이를 토대로 유덕화·안성기가 공동 주연한 한·중·일 합작영화 '묵공'에 출연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배우로서 착실하게 성장해 SM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다양화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중국 시장에 어필하기 위해 조직된 슈퍼주니어 M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소화했다.
멤버들의 개별 활동은 회전주기가 빠른 아이돌 시장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동력이 됐다. 앨범을 내지 않아도 인지도를 확장하며 다양한 매력을 뽐낼 수 있었다. 이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해외에서의 꾸준한 인기와 직결됐다. 최시원의 오랜 팬이라는 라일라(37) 씨는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유쾌하고 명랑한 모습이 좋다"라며 "음악 무대만 고집했다면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니(39) 씨도 "최시원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챙겨본다. 특히 예능 '미운 오리 새끼'와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을 재미있게 시청했다. 조만간 나올 '술꾼 도시 여자들 2'도 기대하고 있다"라며 웃었다. 이어 "외모와 퍼포먼스에 열광한 시기는 지난 듯하다. 이제는 그의 올바른 가치관과 선행에 더 마음이 움직인다"라고 덧붙였다.
친근하고 솔직한 매력을 현지 기업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최시원은 소비자층이 광범위한 제품까지 홍보한다. 윙스푸드의 '미스다압(mie sedaap)'이 그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라면 소비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다. 연간 125억2000만 개가 팔린다. 미스다압의 시장 점유율은 2위다. 유니 주임은 "라면 광고는 전 연령대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만 할 수 있다"라며 "최시원 발탁은 주요 언론에서 보도될 정도의 일대 사건이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최시원을 시작으로 K-팝 그룹을 제품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방탄소년단(BTS)은 토코피디아, 블랙핑크는 쇼피, NCT 127은 블리블리, 버스터즈는 자바프리마 아바디, 트레저는 루앙구루를 각각 홍보한다. 하나같이 내수용 제품으로,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소비된다.
선두주자인 최시원은 제품 홍보를 넘어 한국 문화와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까지 고민한다. "단순히 인기를 얻으려고 활동하는 단계는 지난 듯해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라고 밝혔다. "BTS 정국 씨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축하 공연을 책임졌잖아요. 그걸 보며 대중문화의 힘을 실감했어요. 언어나 종교를 초월해 국가 간 화합까지 이뤄낼 수 있다고 봐요.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외교 동력인 셈이죠. 관심이 커진 만큼 매사 최선을 다하려고요.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려고 해요. 예컨대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기 전에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직원분들에게 먼저 깍듯이 인사해요.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이미지와 직결될 수 있으니까요."
최시원이 생각하는 진정한 문화 교류 가치는 '더불어'이다. 활발한 논의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화합한다고 믿는다. 최근 가장 관심을 두는 가치는 사회 공헌. 어린이들에게 충분한 의료·환경·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유니세프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친선대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이제는 남다른 참여와 관심으로 얻은 나눔의 기쁨을 팬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이 그동안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인도네시아 팬들을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설사 만난다고 해도 경호 등 문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고요. 그게 못내 아쉬웠어요. 일만 하고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사회 공헌 사업을 구상하고 있어요. 가장 해보고 싶은 건 3~10㎞ 마라톤·도보 행사에요.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그런 게 진정한 교류 아닐까요."
자카르타=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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