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원 뱅크런·업계 파산 위기 여진
"FTX사태 규제 감독 부재서 기인" 비판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가상자산 시장을 강타한 FTX 파산 사태 발생 두 달여 만에 10조원 규모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이어지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가상자산에 대한 비관적인 정서가 확산하며 미국의 한 가상자산 대부업체는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다. 제도권 금융사들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이 이어지는 가운데, FTX 파산 사태를 계기로 당국이 규제 틀 마련에 본격 나서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 등 3대 금융규제 기관은 지난 3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FTX 파산 사태는) 가상자산 기업의 사기행각과 시장 변동성, 법적 불확실성을 보여줬다"며 "완화되거나 통제될 수 없는 가상자산 관련 위험이 은행 시스템으로 전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기관은 특정 자산 간의 상호 연결로 인한 리스크 전이 등을 경고하면서 시중 은행들의 가상자산 관련 사업 진출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몇몇 대형 가상자산 기업의 붕괴로 인한 중대한 위험을 고려해 우리는 은행들의 가상자산 관련 활동과 위험 노출에 대해 면밀하고 신중한 접근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나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가상자산을 '투기적 자산'으로 규정하면서 여러 차례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한 구체적인 대응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들 기관도 이날 성명에서 가상자산과 관련한 추가적인 규제 강화나 단속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번 성명은 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였던 FTX가 파산하는 사태를 맞으면서 그 여파가 다른 거래소와 은행, 가상자산 대부업체 등 업계 전반으로 퍼진 가운데 나왔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가상자산 전문은행 실버게이트 캐피털은 81억달러(약 10조3000억원)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실버게이트의 가상자산 관련 고객 예치금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19억달러에서 12월 말 기준 38억달러로 3개월 새 68%(81억달러)가 감소했고, 뱅크런을 해결하기 위해 7억1800만달러 손해를 보고 52억달러 상당의 자산을 매각했다. 또한 비용 절감 차원에서 회사 직원의 40%에 해당하는 200명을 해고했다.
앨런 레인 실버게이트 최고경영자(CEO)는 "가상자산 시장이 신뢰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많은 기관 투자자들이 예금 대량 인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실버게이트 경영진은 회사가 더 큰 금융기관의 인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매각 가능성을 언급했다. 뱅크런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 증시에 상장된 실버게이트 주가는 이날 장중 45% 넘게 폭락해 11달러대로 주저앉았다.
온라인 커뮤니티로 출발한 실버게이트는 FTX 제국의 주요 거래 은행으로 최근 수년 사이 급성장했다. 실버게이트는 FTX를 비롯해 코인베이스, 제미니 등 주요 가상자산 업체를 고객으로 두고 디지털 자산을 달러와 유로로 바꿔 보관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실버게이트와 함께 파산 위기에 몰린 미국의 가상자산 대부업체 제네시스 글로벌 트레이딩은 전체 직원의 30%를 정리해고했다. 이번 감원은 특정 부서가 아닌 전사적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이에 따라 제네시스에는 현재 145명의 직원만이 남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제네시스는 거래소나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트레이딩, 장외거래 브로커리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거래액이 380억달러에 달한다.
피델리티, 블랙록 등 제도권 대형 은행들이 가상자산 관련 신규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는 와중에 터진 FTX 파산 사태를 계기로 당국이 가상자산 규제에 더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FTX 파산 사태가 기업들의 내부 통제 실패뿐만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재무 정보와 이에 대한 규제 감독의 부재 등에서 기인했다는 판단에서다.
아서 윌마스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최근 이어진 가상자산 업계의 사기, 고객 자산 악용, 기타 위법 행위의 수위에 비해 당국의 대응은 충분치 않다고 보고 있다"며 "금융 당국이 더 높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