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자카르타' 대성황…한두 시간 대기 입장
밑바탕은 이수만이 강조해온 '버추얼 네이션'
인니 전역에서 K-팝 광범위하게 소비
"소득 수준 향상돼 여전히 성장 잠재력 커"
"취재하러 들어가시죠? NCT 응원 봉 좀 사게 도와주세요." 지난달 3일 자카르타 스티아부디 쿠닝안 롯데쇼핑 에비뉴 1층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부탁이다. 이날 오픈한 '광야@자카르타'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SM브랜드마케팅에서 운영하는 플래그십 스토어다. NCT,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엑소, 샤이니, 에스파, 레드벨벳 등 소속 아티스트들과 관련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내부에 진입하려면 족히 한두 시간은 걸렸다. 오전 8시부터 몰린 인파가 오후 6시에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진열된 상품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NCT 응원 봉도 두 시간 만에 동이 났다.
여성들은 씁쓸해하면서도 대열을 이탈하지 않았다. 아증(24) 씨는 "응원 봉이 없으면 다른 물건을 사면 된다"라며 "정품을 살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갑다"라고 말했다. 데디야(25) 씨도 "그동안 정품을 구하려면 소규모 모임에서 단체로 주문해야 했다"라며 "구매 절차가 간소해지고 다양한 콘텐츠까지 즐길 수 있어 흥분된다"라고 했다.
광야@자카르타는 단순한 판매소가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지적재산(IP) 콘텐츠를 선보이는 체험형 테마파크에 가깝다. 가상 세계인 '광야'를 콘셉트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제공해 아티스트들의 고유한 이야기와 세계관을 전한다. 김주한 SM엔터테인먼트 아시아·메나 경영관리 책임은 "현지 팬들이 대형 화면에서 재생되는 뮤직비디오 속 춤을 따라 추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라며 "아티스트들과 교감 폭을 넓히며 K-팝 전체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흥행의 근간에는 '버추얼 네이션(Virtual Nation)'이 있다. 인터넷에서 같은 관심사로 활동하는 대중이 오프라인에서도 공고한 유대로 결합하는 문화적 커뮤니티다. 근래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말미암아 영향력이 커졌다. 이날 운집한 팬들 대부분도 각종 모임 등 공동체 활동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일찍이 흐름을 예견했다. 2012년 6월 '에너지와 문화콘텐츠 융합을 통한 지역 발전전략 대토론회' 기조연설에서 SM엔터테인먼트가 중심이 되는 가상 국가 건설을 선언했다.
"미래에는 누구나 두 개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납니다. 하나는 아날로그적 출생 국가, 다른 하나는 버추얼 네이션이란 가상 국가의 그것입니다. 버추얼 네이션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SM 타운입니다. 지난해 파리에서 한 공연도 그곳에 사는 SM 타운 국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남미, 아랍에도 SM 타운 국민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5000만 명이 아니라 수십억 명의 인구를 가진 대국일 수 있습니다."
이 프로듀서는 두 달 뒤 '뮤직 네이션 SM 타운 선포식'을 진행해 팬들의 소속감과 충성도를 제고했다. 해외 각지 팬들이 공연을 관람하러 방한하는 팬 투어 등 다양한 사업모델로 구체화했다. 도전과 모험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음반시장 전체가 흔들린 2020년에도 빛났다. 세계 최초로 온라인 유료 콘서트 플랫폼 '비욘드 라이브'를 선보였다. 기존 오프라인 공연을 단순히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증강현실(AR)·가상현실(VR)·볼륨메트릭 같은 최신 기술과 다중 화상 연결 시스템을 활용해 아티스트와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부여하면서 실시간 소통을 유도했다.
새로운 수익 경로는 해외에서 주효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선 지난 2년간 K-팝 인기가 북미 팝까지 뛰어넘었다. 데디야 씨는 "온라인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많아져 NCT를 꾸준히 응원할 수 있었다"라며 "멤버들이 즐겨 찾는 음식 등을 경험하기 위해 조만간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녀시대 팬인 재피(26) 씨와 레드벨벳 팬인 아지스(23) 씨는 "코로나19 펜데믹 시기에 K-팝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주위에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을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어머니 로리(44) 씨와 함께 광야@자카르타를 찾은 루나(17) 씨는 "학교 댄스클럽에서 춤을 연습할 때 재생하는 곡의 절반 이상이 K-팝"이라며 "엄마가 가사를 욀 정도로 집에서도 즐겨듣는다"라고 말했다. 김영수 콘진원 인도네시아비즈니스센터장은 "아티스트들이 내수용 제품을 광고할 만큼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K-팝이 광범위하게 소비된다"라며 "전반적인 소득 수준이 꾸준히 향상돼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크다"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산업분석 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9년 인도네시아의 음악 공연 입장권 판매 규모는 3600만 달러(약 459억 원)다. 이듬해는 코로나19 확산 탓에 약 17%(632만 달러) 수준으로 축소됐다. 각종 규제가 완화되고 외부 공연이 재개한 지난해는 4396만 달러(약 561억 원)로 추산된다. 회복 단계를 지나 상승 기류를 탔다. 스태티스타는 "2027년에 전체 인구의 약 2%가 음악 공연 입장권을 구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서운 성장세는 야외 공연장에서도 감지된다. NCT 드림과 레드벨벳이 출연한 지난해 5월 '알로뱅크 페스티벌'은 접속 폭주로 입장권 구매 사이트가 마비됐다. 팬들은 행사가 열린 자카르타 이스토라 스나얀 경기장 앞에서 12시간을 대기한 끝에 입장권을 구매했다.
K-팝 아티스트들의 현지 콘서트 입장권 가격은 100만 루피아(8만2000원)~300만 루피아(24만6000원). 자카르타 최저임금이 월 460만 루피아(37만7200원)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비싼 편이지만 거의 모든 공연이 매진된다. 김 센터장은 "젊은이들에게 소구하려는 기업들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초청 공연을 자주 기획하는 추세"라며 "K-팝 아티스트들 또한 코로나19 완화에 맞춰 콘서트를 자주 마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건 아니다. 해외 아티스트의 콘서트는 준비 과정부터 까다롭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꽤나 복잡한 서류작업을 요구한다.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는 SM엔터테인먼트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 난색을 드러낼 정도다. 로열티 배분 등에 대한 표준이 없어 마찰도 자주 벌어진다. 현지 음악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인 12 와이어드의 다니 사트리오 홍보 이사는 "음악 생태계는 존재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적 기반이 매우 빈약하다"라며 "표준 장비, 행사 운영 등에 필요한 절차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공연을 기획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인도네시아 진출을 계획하는 한국의 중소 엔터테인먼트사에 다음과 같이 도움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가 아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 최우선 도시로 고려하겠지만 차별화를 위해 지역 시장부터 생각해보길 권한다. 인구도 못지않게 많고 경제 성장이 한창이라 음악 산업 또한 커질 수 있다. 그야말로 인도네시아 시장의 거대한 잠재력이다."
자카르타=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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