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우크라 전쟁 비판 후 기소
올들어 러 재벌 12명 줄줄이 의문사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러시아 최대 육류 가공업체의 소유주로 일명 '소시지 재벌'이라 불리던 파벨 안토프(65)가 인도 여행 도중 돌연사해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지 경찰과 러시아 당국은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앞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했다가 러시아 경찰에 기소됐던 그의 이력을 고려해 러시아 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제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파벨 안토프는 휴가차 방문한 인도 동부 오디샤주의 호텔 3층 창문에 떨어져 사망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안토프와 해당 호텔에 방문한 친구 1명도 심장마비로 이틀 전에 사망했다. 인도 경찰은 의문사 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안토프와 그의 친구가 과다 음주 및 약물복용에 따른 사망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인 비베카난다 샤르마 총경은 "친구의 죽음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안토프가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콜카타 주재 러시아 영사관의 알렉세이 이담킨도 "현지 경찰들은 이번 비극적 사건들에서 범죄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러시아 안팎에서는 앞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비판한 바 있는 안토프가 러시아 당국에 의해 제거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안토프는 러시아 최대 육류가공업체인 '블라디미르 스탠다드(Vladimir Standard)'의 소유주이자 러시아 블라디미르 지역의 국회의원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 소속으로 러시아 정·재계에서 두루 발이 넓은 인물이었다. 2019년 포브스 집계로 그의 자산은 1억4000만 달러(약 1780억원)로 러시아 국회의원 중 가장 재산이 많았다.
안토프는 지난 6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왓츠앱 계정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미사일 폭격은 '테러리즘(terrorism)'"이라고 게재했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해당 글이 실수나 착오로 작성된 것이라 해명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며 메시지 작성을 부인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에 대한 충성 맹세 등 당국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의 죽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의문사를 당한 러시아 재벌은 12명으로 늘어났다. 지금까지 의문사한 재벌들은 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했거나 에너지업체 경영진들이었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러시아 부동산 재벌 드미트리 젤레노프가 프랑스 남부 리비에라 지방 도시 앙티브에서 추락사했다. 9월10일에는 러시아 극동북극개발공사(KRDV)의 이반 페초린(39) 상무이사가 블라디보스토크 남부에서 보트를 타던 중 물에 빠져 실종돼 이틀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달 1일에는 러시아 최대 민영 석유업체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67) 이사회 의장이 모스크바의 한 병원 6층에서 떨어져 숨졌다.
지난 2월에는 가스프롬의 재무 담당 임원인 알렉산드로 튤라코프가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고 4월엔 액화천연가스 기업 노바텍의 세르게이 프로토세냐 전 부회장이 스페인 별장에서 일가족을 죽인 뒤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이처럼 러시아 재벌들의 돌연사가 잇따르면서 당국의 정적 제거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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