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전 동부대우전자 사장)씨 별세, 김경희씨 남편상, 이민식(프랑스S2T 수석엔지니어)·이수연(BNP Paribas 뉴욕지점 IT총괄)씨 부친상, 김재석(미 SOM 부장)씨 장인상, 이정원씨 시부상 = 6일 오후,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9호실(8일 오전 9시 입실 예정),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장지 경기도 이천 에덴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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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전 동부대우전자 사장)씨 별세, 김경희씨 남편상, 이민식(프랑스S2T 수석엔지니어)·이수연(BNP Paribas 뉴욕지점 IT총괄)씨 부친상, 김재석(미 SOM 부장)씨 장인상, 이정원씨 시부상 = 6일 오후,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9호실(8일 오전 9시 입실 예정),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장지 경기도 이천 에덴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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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가정용 작은 텔레비전을 만들던 회사가 휴대폰과 반도체를 만들고,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삼성이 지난 84년동안 '이병철-이건희-이재용' 3명의 회장을 거치며 일군 성과다.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877억달러(환율 1420원 기준 124조5000억원) 수준으로 세계 5위까지 뛰어 올랐다. 3대째 반복된 재벌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1~3대를 거치며 이룩한 업적은 명확하다.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삼성…‘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오늘날 삼성의 주춧돌은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이 1938년 3월 대구에 설립한 삼성상회다. 큰 것·많은 것·강한 것을 나타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삼’(三)과 밝고 높고 영원히 빛나는 것을 뜻하는 ‘성(星)’을 합쳐 호암이 직접 이 상호를 택했다.
삼성상회의 설립과 조선양조 인수(1939년)로 순조롭게 사업을 번창시킨 그는 1951년 삼성물산, 1953년 제일제당, 1954년 제일모직, 1964년 한국비료, 1969년 삼성전자, 1974년 삼성중공업을 잇달아 설립하며 국내 주요 산업을 이끌었다. 특히 호암은 삼성전자 설립 당시 전자산업이야말로 기술, 노동력, 부가가치, 내수와 수출전망 등 우리나라 경제 단계에 꼭 알맞은 산업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정부를 설득하면서까지 내달렸다.
그 결과 창립 9년만인 1978년에 흑백텔레비전 200만대 생산, 1981년 5월 1000만대를 돌파, 1984년 3월 컬러텔레비전 500만대 생산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국내 정상 자리에 오른다. 전자산업의 기초를 굳힌 호암은 74세의 나이에 반도체 개발의 결의를 굳히고 1978년 삼성반도체를 설립한다. 삼성반도체의 성공 여부에 삼성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 그의 판단 역시 적중했다.
호암의 사업 확장에는 경영철학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 기반이 된다. 기업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더 나아가서는 인류에 공헌하고 봉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호암은 1976년 11월 '나의 경영론(전경련회보)'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도 흔들림이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IT 강국 초석 마련한 이건희...100년 기업 삼성을 꿈꾸다=삼성이 본격적으로 반도체산업을 꽃피우기 시작한 것은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부터다.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갔다. 이후 고 이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과 함께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는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을 선택하고, 반도체 성공에 이어 '애니콜 신화'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 반열에 우뚝 서게 한다. 1995년 8월 애니콜은 모든 휴대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해온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그의 말이 적중한 것.
삼성은 1993년 고 이 회장이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하면서 또 한번 변화기를 맞는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고 이 회장이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지적했을 정도였다.
'삼성 신경영'에는 이제까지 지속됐던 양 위주 경영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질을 중심으로 양이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경영구조를 실현하겠다고 의지가 담겨 있다. 질 위주의 경영에 집중한 결과 고 이 회장은 1987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키는데 성공했다.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위기 한가운데 선 이재용 회장…가전·휴대폰·반도체 그 다음은?=이재용 회장에게는 고 이 회장으로부터 삼성을 이어 받아 진정한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 '승어부(勝於父)'를 이뤄내겠다는 포부가 있다. ▲신사업 발굴을 통한 사업 확장 ▲준법문화 정착 ▲산업 생태계와의 소통 확대 및 지원 ▲임직원 자부심 및 국민 신뢰도를 높여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삼성의 현실은 냉혹하다. "안타깝게도 지난 몇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회장으로 취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고 이건희 회장 2주기를 맞이해 마련한 사장단 간담회 당시 밝힌 소회와 각오는 삼성의 위기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회장은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3고(高) 환경이 짓누르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삼성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이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회장으로 취임했다. 삼성이 가전·휴대폰·반도체 등 선대 회장이 발굴해 성장시킨 사업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뉴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방향 설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우선 이 회장은 초격차 기술을 내세운 기술 중심 경영에 초점을 맞출 태세다. 삼성은 올해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히고, 글로벌 산업구조 개편을 선도하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업' 선언(향후 5년 간 국내 360조원 포함, 총 450조원 투자)을 했다.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해 시스템 반도체 투자도 171조로 확대하고 차세대 통신, AI, 로봇, 슈퍼컴 등 미래 신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를 강화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계획이다. 특히,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 신화'로 육성할 예정이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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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사로부터 치료비 등 보험금을 받는 이른바 '보험빵'으로 수천만원의 보험금을 타낸 20대 동네 친구들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강민호 부장판사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26·남)와 B씨(26·남), C씨(26·남)에게 각각 징역 1년4개월과 징역 1년, 징역 8개월을 선고하면서도 형의 집행을 2년씩 유예했다. 각각 80~240시간의 사회봉사명령도 함께 내렸다. B씨의 연인이었던 D씨(23·여)도 관련 범행에 가담했다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동네 친구인 A씨와 B씨는 "교통사고를 내서 보험금을 타기 쉽다. 같이 하자"라며 C씨와 D씨 등을 끌어들여 서울 일대에서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총 10회가량 보험사기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차량에 함께 탑승해 전방에서 차선을 변경하려던 차량을 골라 뒤에서 들이받고, 이때마다 마치 우연히 발생한 교통사고인 것처럼 보험사들에 220만~1180만여원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한 보험사는 2020년 1월 사고와 관련해 보험사기를 의심하고 돈을 주지 않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범행은 계속됐다. 이들 범행엔 총 5대 이상의 차량이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강 부장판사는 "보험사기 범행은 다수의 보험가입자에게 잠재적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적발과 처벌이 쉽지 않은 범행"이라며 "피고인들 범행 방식은 자동차로 '고의 교통사고'를 일으켜 자신들 외 피해차량과 그 탑승자에게 물적·인적 손해가 크게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 사실상 위험한 물건으로 타인에게 상해를 가하는 행위로 볼 수 있어 범행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질책했다.
A씨에 대해선 "범행횟수가 6회에 이르고, 다른 피고인들과 비교할 때 가담 정도도 가볍지 않다"며 "각 범행으로 피해자 회사가 입은 손해도 5900여만원에 이른다"고 지적했고, B씨와 C씨에 대해선 "범행 횟수가 4회이고, 직접 차량을 운전해 직접적인 가해행위를 했다. 피해 금액도 약 2500~2900여만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일부 손해를 복구한 점 등을 함께 고려했다.
A씨 등과 검사 양측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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