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수도권 거주 직장인인 이모(37)씨는 약 3개월 전 들었던 연 4.1%의 정기예금 상품(12개월 만기)을 해약하고 연 5.8%를 제공하는 상호금융기관의 특판 예금 상품으로 갈아탔다. 해약 시엔 쌓인 이자를 받지 못하지만, 그간 금리 수준이 올라 오히려 해지하는 것이 득이 되는 까닭이다. 이씨는 "이젠 시중은행에서도 4%대 금리를 제공하는 걸 보니 손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주부 박모(39·여)씨는 지난해 말 가입했던 연 3.2%의 적금(12개월 만기) 상품 만기를 앞두고 해약을 고민했다가 유지하기로 했다. 5%대를 넘어서는 예금상품이 많지만, 손익 여부를 따져보니 예금을 유지하는 게 낫겠단 판단이 들어서다. 박씨는 "만기가 되면 금액 중 일부는 수시입출금식통장(파킹통장)에 넣어두려고 한다"고 전했다.
지속적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은행 및 상호금융권의 정기 예·적금 금리 수준이 4~5% 선에 육박한 가운데, 금리 노마드(유목민)족들이 손익계산에 분주하다. 더 높은 이율을 주는 상품으로 '갈아타기'를 위해 기존 예·적금을 해지하는 사례도 있는가 하면, 내년 초까지 최소 1~2회로 예정된 금리 인상을 염두에 두고 '관망'세를 유지하는 이들도 많다.
14일 한국은행의 '2022년 9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수신 잔액은 전월 대비 36조4000억원 늘어난 2245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전월 증가폭(8조7000억원)의 4배 수준이다. 수신 잔액 증가를 리드한 것은 정기예금이었다. 한 달 새 늘어난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규모는 32조5000억원으로 전월(21조2000억원)의 약 1.5배다. 이런 정기예금 증가폭은 2002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정기예금으로 시중자금이 쏠리는 것은 급등한 수신금리의 영향이다. 기준금리가 3%로 높아지면서 시중은행의 수신금리는 4%, 상호금융권은 5%대로 치솟았다. 각 은행이나 상호금융기관들이 판촉을 위해 내놓는 특판금리의 수준은 더 높다. 정기예금은 5~6%대, 적금은 7~8%대 상품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 화양신용협동조합이 내놓은 특판상품이 대표적이다. 화양신협은 지난 12일 기본금리 7.9%에 비대면으로 가입 시 우대금리 0.1%포인트(p)를 부여해 총 연 8%의 금리를 적용하는 '금리 연 8% 정기적금(12개월 만기)'을 출시했는데 이 상품은 당일 완판되기도 했다.
시중금리에 민감한 금리노마드족이 예·적금 갈아타기를 고민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A씨의 사례를 보면 1000만원의 목돈으로 이전에 가입했던 연 4.1%의 예금을 만기까지 유지하면 얻을 수 있는 이자는 34만6000원 수준이지만, 5.8%의 예금으로 갈아탈 경우 남은 9개월 동안 받을 수 있는 이자는 36만8000원 수준으로 오히려 더 많다.
다시 관망세로 돌아선 이들도 있다. 오는 11월 한 차례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남아 있어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고, 내년 초 기준금리가 3.50~3.75% 수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직장인 배모(34)씨는 "이 정도 속도라면 연말이나 내년 초엔 별다른 우대조건 없이도 10%대 금리의 적금 상품들이 나올 것 같다"면서 "당분간 적금 대신 파킹통장에 돈을 모아두다가 추세를 지켜보고 가입할 것"이라고 했다.
시중은행 및 상호금융권도 관망세로 돌아선 고객 유치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다. 2.0% 금리의 파킹통장으로 돌풍을 일으킨 토스는 최근 경쟁사들이 잇따라 금리 인상에 나서자 파킹통장 금리를 연 2.3%로 인상했고, 저축은행권에선 3~3.3%대의 파킹통장 금리를 제공하는 곳들도 많다. 금리상승기인 만큼 회전식 정기예금 상품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상상인저축은행은 최근 3개월, 6개월, 9개월 별로 회전주기를 선택할 수 있는 '369 회전정기예금'을 출시했다. 최초 가입 시 3개월엔 4.00%, 6개월엔 연 4.10%, 9개월엔 연 4.20%의 금리가 적용되며 회전주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금리가 갱신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상승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각 은행도 수신금리 수준을 신속하게 높이면서 예금 계좌 개설 및 해지를 문의하는 고객들이 많다"면서 "하루 이틀 사이 달라진 금리에 항의하는 고객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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