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올해 최저점까지 내려앉은 미국 뉴욕증시의 주요지수가 28일(현지시간) 오랜만에 반등했다. 그간 낙폭이 과도하다는 심리가 확산하는 가운데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대규모 국채 매입 카드를 꺼내 들며 금융시장 불안이 다소 진정된 여파다. 치솟던 국채 금리는 하락했고, 달러도 소폭 떨어졌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548.75포인트(1.88%) 상승한 2만9683.74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71.75포인트(1.97%) 오른 3719.04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22.13포인트(2.05%) 높은 1만1051.64에 장을 마감했다. 이에 따라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6거래일 하락세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는 2020년 2월 코로나 팬데믹 초기 이후 가장 오랫동안 하락한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종목별로는 허리케인 이언의 북상으로 국제유가가 오랜만에 급등하며 에너지주가 강세를 보였다. 엑손모빌은 전장 대비 3.64% 상승 마감했다. 셰브론은 3.38%,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은 4.92% 올랐다.
대표 기술주로 구성된 이른바 'MATANA'는 애플을 제외하고 랠리를 나타냈다. 마이크로소프트(+1.97%), 테슬라(+1.72%), 아마존(+3.15%), 엔비디아(+2.60%), 알파벳(+2.62%)은 상승 마감했다. 반면 애플은 아이폰14 증산 계획을 취소했다는 소식에 1.27% 밀렸다. 블루칩으로 구성된 다우지수에서 이날 하락세를 나타낸 종목은 애플이 유일하다고 경제매체 CNBC는 전했다.
이밖에 금융시장 불안이 다소 진정되며 경기에 민감한 홈디포(+5.02%)는 다우지수에서 가장 높은 상승세를 기록했다. 허리케인 복구에 따른 수혜가 기대되면서 캐터필러(+3.28%) 등 건설주도 랠리를 나타냈다. 제약사 바이오젠은 알츠하이머 신약이 3상 임상 연구에서 효과를 냈다는 소식에 40%가까이 치솟았다.
투자자들은 이날도 영국발 금융시장 불안과 국채 금리, 환율 움직임 등을 주시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와 미셸 보우만 이사,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은 총재 등 Fed 당국자들의 발언 일정도 줄줄이 예고돼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BOE는 지난 23일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 계획을 공개한 이후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역대 최저로 급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이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10월4일까지 장기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채권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연기금이 지급불능에 빠질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또한 다음 주부터 개시 예정이었던 양적긴축(QT)을 10월 31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직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국채 금리는 하락세를 나타냈다. 영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BOE의 국채 매입 공개 전 4.5%에서 발표 이후 4.08%선까지 떨어졌다. 같은 날 5%를 돌파해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30년물 금리도 직후 1%포인트 내려앉았다. 독일 10년물 금리는 2.35%선에서 2.11%선으로, 프랑스 10년물 금리는 2.95%선에서 2.72%선으로 내려갔다.
뉴욕 채권시장에서도 미국 국채 금리의 동반 하락세가 확인됐다. 미 10년물 금리는 BOE의 국채 매입 발표 직후 4%를 잠시 돌파했다가 3.7%선까지 안정됐다. 이러한 일간 하락폭은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 역시 장중 고점인 4.316%에서 현재 4.09%까지 내려갔다. 국채 금리 하락은 채권 가격 상승을 가리킨다.
외환시장에서 강달러도 다소 완화됐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달러화지수)는 전날 114선에서 112선까지 내렸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전장 대비 7%이상 떨어져 30선에서 움직였다.
다만 이는 단기적 대책일 뿐 영국 정부의 신뢰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닌 만큼 당분간 영국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쏟아진다.
파이퍼샌들러는 BOE의 이날 개입이 Fed의 통화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고강도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골드만삭스의 도미니크 윌슨은 보고서를 통해 "경제가 분명한 침체에 들어가거나 인플레이션에서 지속적인 진전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미국 금융 환경의 긴축 압박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매체 CNBC는 몇몇 지표가 뉴욕증시의 과매도 상태를 시사하지만, 아직 실적 둔화, 금리 인상 여파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S&P500지수의 14일 평균 상대강도지수(RSI)는 30을 밑돌며 과매도 영역에 진입한 상태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이날 뉴욕에서 CNBC가 주최한 한 행사에 참석해 Fed의 행보가 미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며 "2023년 말쯤 경착륙이 가능하다"며 "만약 우리가 2023년에 경기침체를 겪지 않는다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여간의 이례적인 양적완화, 저금리 환경이 자산 거품을 만들었다면서 "강세장의 모든 요소가 멈췄고 역전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깊은 곤경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유가는 급등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4.7%(3.65달러) 오른 82.1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허리케인 이언이 이날 오후 미국 플로리다주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멕시코만 일대의 원유 생산 차질 등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한 행사에서 "일시적인 태풍이 기름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유가를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라고 석유회사들을 겨냥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국제 금값은 달러화와 국채 금리 급등세가 진정되며 반등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2.1%(33.80달러) 상승한 16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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