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스포츠' 골프, 셔츠·긴 바지는 에티켓으로 여겨져와
LIV골프 보스턴 시리즈 중 반바지 착용 허용에 젊은 층 '환호'
개성 추구하는 2030, 코로나 이후 골프 패션 파격 불러와
[아시아경제 변선진 기자] ‘신사의 스포츠’로 불리는 골프의 역사에서 정형화된 셔츠와 긴 바지 착용은 엄격한 에티켓으로 여겨져왔다. 이 때문에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는 물론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 투어에서도 경기 중 선수들이 반바지를 입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셔츠도 바지 안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이 드레스 코드는 프로 선수는 물론 국내 일부 회원제 골프장에서도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 경기도의 A골프장에서 남성 골퍼는 클럽하우스 입장 때 반드시 재킷을 착용해야 한다.
셔츠와 긴 바지를 착용한 선수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가 최근 이같은 금기를 깨버렸다. LIV 골프측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볼턴의 더 인터내셔널에서 열린 4차 시리즈 대회 중반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다"는 '파격 선언'을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 커뮤니티 ‘레딧’에서는 “드디어 선수들의 종아리를 볼 수 있는 기회!”라거나 “내년엔 더 파격적인 의상을 기대해봐도 좋을 듯”이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엄격' 경계 허무는 골프 패션...남다른 개성 중시하는 2030세대
격식을 추구하는 골프 패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소 경기에서 만큼이라도 엄격하게 적용되던 골프 패션의 룰조차 바뀌고 있는 것이다. 대개 이를 원하는 건 새로움·신선함을 추구하는 젊은 층이다.
한국에선 코로나 이후 2030세대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골프 패션에서 급물살을 탔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레저백서 2022’에 따르면, 2030세대의 골프 인구 비중은 2019년 14%(65만 명)에서 작년 22%(11만 명)까지 급증했다. 골프장에서 5명 중 1명꼴로 2030인 까닭에, 골프 패션도 파격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섬 'SJYP'이 젊은 골퍼들을 겨냥해 출시한 캐주얼 골프라인 제품 [사진제공=한섬]젊은 세대 사이에선 코로나 이후 푸른 잔디 위에서 골프만 치는 것이 아니라 골프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게 새로운 재미 요소가 됐다. 이런 까닭에 아노락 점퍼(바람막이), 점프 수트(상하의가 하나로 된 옷), 조거·카고 팬츠가 새로운 필드 패션으로 떠올랐다. 짧은 치마나 긴 바지·셔츠의 '격식 있는' 골프 패션만으로는 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는 이유다.
이들은 일상과 골프의 패션 경계도 허물고 있다. 직장인 박모씨(29)는 지난해 라운딩에 나가기 위해 20만~30만원 주고 산 골프 치마를 블라우스와 조합해 일상복으로 입었다고 했다. 박씨는 “프로가 입는 골프복이 아니고서야 평상복과 확 구분되지도 않는 것 같다”며 “친구 모임에서 칭찬도 받아 압으로도 자주 입을 예정”이라고 했다. 신종엽씨(27)는 “아울렛에서 마음에 들어 8만원 주고 산 조거팬츠가 뒤늦게 알고 보니 골프복이었다”며 "일상복으로 입는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골프의류의 일상복화는 남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2030세대 특성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2030세대 사이에선 일명 ‘힙(Hip)’이라는 요소가 패션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며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골프가 단순 스포츠만이 아닌 자신의 개성과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기능을 하게 되면서 덩달아 골프 패션에 대한 욕망도 커지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젠 무대 의상으로도 활용되는 골프 패션
골프 패션은 아이돌 무대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신인 걸그룹 ‘뉴진스(New Jeans)’가 지난달 ‘엠카운트’ 무대에서 골프 패션으로 등장했다. 영국 명품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골프 의류로 니트와 스커트에 반스타킹을 착용했다. 현아 역시 최근 ‘컴백 무대’에서 골프 치마에 크롭 티셔츠를 입은 채 춤을 췄다.
신인 걸그룹 뉴진스가 무대에서 골프 패션으로 등장했다. [이미지출처=어도어]골프 패션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면서 국내 골프복 시장은 2019년 4조6000억원에서 작년 5조6000억원으로 뛰었다. 올해는 6조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민정 계명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후 젊은 세대들이 골프로 유입되면서 편리성뿐만 아니라 과시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골프 패션에 대한 반향이 커졌다"며 "일상에서 골프복을 입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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