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부메랑 직원(Boomerang employee)'. 한번 퇴사했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온 직원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퇴사(Great Resignation)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친 이후 미국 고용시장에는 부메랑 직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해요. 고용시장이 불타오르던 시점에 새로운 도전을 꿈꾸거나 임금 등 보상을 키우기 위해 회사를 뛰쳐나갔던 직원들이 원래 다녔던 회사로 돌아오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링크드인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공고난 미국 기업의 신규 채용 가운데 4.2%가 부메랑 직원으로 채워졌다고 합니다. 신규 채용된 직원 100명 중 4명은 기존 회사로 돌아온 직원이란 의미에요. 코로나19 이전이었던 2019년 3.3%에서 비중이 확대된 건데요. 블룸버그는 "(기존 회사에 대한) 친숙함과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 대퇴사 이후 후회 등이 직원들을 다시 돌아가게끔 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 경력직 중에서도 돈 더 받는 '부메랑 경력직'
주목할 부분은 바로 코로나19 이후 부메랑 직원들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CNBC방송에 따르면 캐나다 인적자원 관련 데이터 회사 비지어가 글로벌 기업 129개 소속 300만 명의 직원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해 1월부터 4월 사이 부메랑 직원의 평균 급여를 살펴본 결과 퇴직 당시 급여보다 28%나 인상됐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지난해 다른 회사로 이직한 근로자들의 급여 인상률인 10%(퓨리서치센터 조사결과)를 크게 웃돌았어요. 쉽게 말해 경력직 중에서도 기존 회사로 복귀하는 부메랑 경력직이 더 큰 보상을 받는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부메랑 직원들이 일종의 프리미엄을 받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만큼 부메랑 직원을 채용하는 것에 장점이 있다는 건데요. 비지어의 안드레아 덜러 연구 책임자는 CNBC에 부메랑 직원들이 회사의 조직문화와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이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이들이 프리미엄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부메랑 직원을 고용하면 채용 관련 비용을 33~66% 가량을 아낄 수 있다는 분석 결과도 있어요.
벤 레이커 헨리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지난 2월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 기고에 부메랑 직원들이 새 직원에 비해 더 빨리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다면서 "지금과 같은 경쟁적인 고용 시장에서 이들은 매우 귀중한 인재가 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어요.
또 회사 입장에서는 신입 사원이나 타사에서 오는 경력직 직원을 뽑으면 입사 후 업무 능력을 확인하는 일종의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는데, 부메랑 직원은 이미 회사가 그동안의 성과를 알고 있는 만큼 위험 부담이 줄어들죠. 특히 코로나19로 시작된 대퇴사 움직임 속에서 기존 회사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고 퇴사했다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꿈꿨거나 포모증후군(소외불안)을 겪고 퇴사한 인재가 있고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하는 직원의 재입사는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업무 성과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는 모든 부메랑 직원을 환영할까요? 그건 아니겠죠. 회사에 있을 당시 문제가 없었는가 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특히 재직 중 업무 성과는 회사가 재입사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들여다보는 요소인데요. 블룸버그가 인용한 존 아놀드 미주리대 교수 등 연구진의 2020년 1월 발표 논문에 따르면 8년 간 부메랑 직원과 기존 직원 3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처음 입사했을 당시 일을 잘한 사람이 재입사 해서도 일을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요. 회사는 신입 사원이나 다른 경력직에 비해 업무 성과에 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재입사에 따른 인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를 먼저 신중하게 살피겠죠.
국내에서도 직원의 재입사를 판단할 때 성과가 중요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어요. 2020년 국내에서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389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당시 재입사 직원이 있다는 응답은 10곳 중 6곳이었는데요. 당시 응답자들은 부메랑 직원이 재입사할 수 있었던 이유(복수응답)로 절반 가까이가 '기존 업무 성과가 뛰어나서'라고 답했어요. 그만큼 성과가 좋은 직원, 즉 회사가 원하는 인재라고 판단될 경우 퇴사자라는 '꼬리표'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 배신자에서 귀환자로…"고향으로 돌아온 것"
사실 부메랑 직원은 수십년 전만 해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퇴사를 곧 회사와 동료에 대한 배신이라고 보고 재입사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죠. 업무 성과 여부를 떠나 퇴사자라는 것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코넬대 ILR스쿨(노사관계대학원)의 JR 켈러 교수는 지난달 BBC방송에 "과거엔 재취업을 정책적으로 금지하는 기업들도 있었다. 퇴사한 직원을 다시 채용하면 충성도가 낮은 직원들을 회사가 대우한다는 메시지를 줘 다른 이들의 퇴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라고 말했어요.
이러한 상황은 1980년대 초 경기침체로 인해 바뀌었다고 켈러 교수는 분석했습니다. 당시 대량 해고가 발생했고 고용시장이 크게 변하면서 직원들이 이직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행위가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는 것이죠. 켈러 교수는 "단순히 이전에 더 좋은 기회가 있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려는 직원을 (한번 퇴사했다는 이유 만으로) 채용 후보자에서 배제시키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으로 보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깨지고 이직하는 과정에서 기존 회사에 더 좋은 기회가 있으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회사와 근로자가 모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10년 간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링크드인이 지난 3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조사한 미국 기업의 신규 채용 중 부메랑 직원으로 채워진 비중은 2010년 평균 2%도 채 되지 않았는데 지난해 4.3%로 2배 이상 증가했어요. 퇴사 후 기존 회사로 다시 돌아오는 기간은 2010년 21.8개월에서 지난해 17.3개월로 줄었고요. 글로벌 기업인 도이체방크나 EY, 딜로이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먼저 블로그, SNS에 재입사한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들을 환영하는 분위기 입니다.
기업 소프트웨어 제공업체 세일즈포스는 지난해 7월 공식 블로그에 인사업무 담당자로 한차례 퇴사한 뒤 다시 돌아온 린지 시겔 인력 파트너의 사연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어요. 2015~2018년 세일즈포스에서 일했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 2020년 4월 다시 세일즈포스에 복귀한 시겔 파트너는 "고향에 돌아온 것과 같다.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저 부메랑이에요'라고 한다"면서 다른 회사에서 쌓은 경험을 세일즈포스에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부메랑 직원의 복귀를 홍보하는 세일즈포스의 블로그 글(사진출처=세일즈포스 블로그 캡쳐)부메랑 직원의 '귀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고용 시장에서 회사가 인재를 얻기 위해 기존에 장애물이라 여겨졌던 문턱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죠. 성과를 잘 내는 직원이라면 과거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국내에서도 날이 갈수록 인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요. 상대적으로 고용시장이 보수적인 국내에서도 부메랑 직원의 복귀가 속속 등장할 지 주목됩니다.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조직문화, 인사제도와 같은 기업 경영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외신과 해외 주요 기관들의 분석 등을 토대로 신선하고 차별화된 정보와 시각을 전달드리겠습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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