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우크라 전쟁에 기후 재난 겹쳐…에너지 대란 위기
불안정 공급에…천연가스 가격 1년 전보다 10배 가량 ↑
마크롱 대통령 "풍요의 종말" 언급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의 분수가 가뭄으로 작동을 멈춘 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는 전국적으로 가뭄이 지속됨에 따라 절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유럽의 천연가스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시작된 서방의 제재에 러시아가 반발 조치 성격으로 천연가스 공급을 줄인 가운데 폭염 등 기후재난이 겹치며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5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1년 전보다 10배 가량 비싸다. 가격이 급등한 건 러시아가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을 줄였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세는 불안정한 공급과 관련있다. 에너지 수급이 상황이 악화하면서 올겨울에 가스가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NYT는 "독일로 가는 주요 연료 통로인 노드스트림1은 용량의 20%만 흐르고 있다"며 "이러한 감축으로 가스 공급자는 가스프롬과의 장기 계약보다 더 가격이 높고 변동성이 큰 현물 시장에서 가스를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자 프랑스 정부는 가스 가격을 동결하고 전기료 인상 폭을 제한하는 에너지 가격 상한제를 도입해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한다는 프랑스 전력 업계의 반발과 공공 재정 부담 등으로 올겨울까지만 이를 적용할 전망이다.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에너지) 가격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에너지 가격 상한제를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에너지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의 속도를 내기 위한 관련 법률 개정안을 다음 달 중 입안하고 겨울철에 대비해 원활하게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단기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전기·가스 요금이 급등하면서 내년도 물가 상승률이 18%를 넘겨 5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석유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린 197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 급등세의 이끈 건 국제 가스 도매가격 급등에 따른 전기·가스요금 인상이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전기·가스 규제기관인 오프젬(Ofgem)은 오는 10월1일부터 적용하는 에너지 가격 상한선을 표준가구 기준 연간 3549파운드(약 557만원)로 책정했다.
이는 현행(1971파운드)보다 80% 높고 1년 전인 지난해 10월(1277파운드)보다 약 3배 올랐다. 영국의 경우 발전량의 약 40%에 가스를 사용하는 데다 에너지 업체들이 민영화 돼 있어서 에너지 가격의 상승폭을 제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 국영가스업체 '가스프롬' 로고 [이미지출처=연합뉴스]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도 에너지 비상이 걸렸다. 독일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공공 건물 난방을 제한하고 광고판 조명을 금지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오는 9월1일부터 시청 건물, 철도 승객 대기실 등 각종 공공 건물의 난방 온도가 섭씨 19도로 제한되며 공공 건물 복도와 로비, 입구 통로 등에 설치된 난방기는 사용이 중단된다.
◆ 에너지 위기에 마크롱 "희생 직면해야"…'원전 회귀' 논의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겹친 에너지 위기 상황과 관련 "풍요의 종말"을 언급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24일(현지시각) 오후 엘리제궁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기후변화의 여파로 희생이 따를 수 있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원하면 언제든지 상품과 자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풍족하고, 어떻게 보면 태평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대격변을 겪으며 분수령 위에 서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마련할 새로운 조치를 수용해달라고 촉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들이 불안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비관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도 했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원자력 발전을 늘려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25일(현지시간) 독일 디벨트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에너지 위기와의 싸움에서 수압파쇄법을 통해 가스를 추출하거나 원전을 재가동하는 등 모든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 중에는 실용주의적이어야 한다"며 "지금은 소극적인 조처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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