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와 모의하거나 속여 '거짓 홀인원' 증명서 발급↑
CCTV 없는 곳 많아 적발도 어려워
[아시아경제 이서희 기자] 인천의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는 최씨(35)는 지난달 라운드 도중 고객으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가짜 ‘홀인원 증명서’를 발급해주면 보험금 500만원 가운데 100만원을 나눠 주겠다는 것이다. 당시 해당 고객은 홀인원 보험 만기를 불과 한 달 앞둔 상태였다. 최씨는 "제안을 거절했지만 고객은 '우리끼리 입만 맞추면 걸리지 않을 수 있다'면서 끈질기게 요구했다”면서 “보험금 지급 절차가 생각보다 허술해 마음만 먹으면 사기를 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홀인원(Hole In One)’ 보험금을 거짓으로 수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홀인원 보험금은 골퍼가 홀인원 성공 시 부담해야 하는 각종 축하 기념 비용을 보험사가 보상해주는 특약 보험이다. 그러나 골퍼의 홀인원 여부를 입증하는 자료가 캐디와 골프장측이 발급하는 ‘홀인원 증명서’ 뿐이어서 사기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홀인원 했어요”…잇따르는 사기에 보험사도 난감
파3 홀에서 한번의 샷으로 홀에 집어넣는 ‘홀인원’은 모든 골퍼의 꿈이다. 그만큼 확률은 낮다.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 약 1만2000분의 1이라고 한다. 수십년 골프를 치면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골퍼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싱글 핸디의 고수조차 확률은 5000분의 1에 불과하고, 프로 선수도 이 확률은 3500분의 1에 그친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국내 골퍼들에게 홀인원은 대가도 뒤따른다. 동반자들과의 거나한 뒤풀이는 물론 기념 라운딩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관례다. 적게 작아도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홀인원 보험은 이같은 '낮은 확률'과 골퍼들의 '비용 부담 걱정'이라는 니즈가 낳은 상품이다. 홀인원을 기록한 골퍼가 만찬과 기념품 제작 등 각종 축하 기념으로 들어간 비용을 입증할 수 있는 영수증을 제출하면 보험사가 이에 맞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최근 홀인원 보험금을 노린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골프 인구가 크게 늘면서 적발 사기 건수도 급증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변기천 삼성화재 홍보담당관은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골프 인기가 치솟으면서 홀인원 보험 사기 역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제보가 없으면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에 눈에 드러나는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홀인원 보험 사기는 골프장에 CCTV가 없는 경우가 많아 신고해도 수사가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보험사 입장에선 참 난감한 상품"이라고 덧붙였다.
공 찾으러 가는 척 '거짓' 홀인원 연기…초보 캐디 대상 사기 많아
홀인원 보험 사기는 보험 약관의 허점과 폐쇄적인 골프장 구조의 빈틈을 타고 퍼지고 있다. 플레이어의 홀인원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캐디의 홀인원 증명서가 유일하다는 허점을 이용해 고객과 캐디가 모의하거나, 플레이어가 캐디의 눈을 속여 허위 보험금을 신청하는 것이다.
특히 업무 숙련도가 낮고 고객의 평가에 예민한 '초보 캐디'의 경우 눈속임 상대가 되기 쉽다.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길만씨(29)는 "초보 캐디의 경우 업무 숙련도가 낮다 보니 고객이 공을 찾으러 가는 척 홀에 재빨리 공을 넣고 홀인원이라고 속이기 쉽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실제 홀인원에 성공했더라도 관련 비용으로 들어간 영수증을 보험사에 제출한 후 곧바로 카드 결제를 취소하는 수법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골프장의 구조적 특성도 홀인원 보험 사기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워낙 경기장이 넓다 보니 CCTV가 설치돼있지 않은 곳이 많아 사기가 의심되더라도 보험사가 이를 적발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CCTV 제출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골프장 측이 여기에 응할 의무가 없기도 하다. 골퍼들 사이에선 ‘캐디만 섭외하면 완전 범죄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골프앤파트너 김대중 대표는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홀인원 보험은 보험료가 연간 3만원~7만원에 불과해 골퍼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면서 “통계적으로 일반 골퍼가 홀인원을 기록할 확률은 1만2000분의 1에 불과해 보험사가 손해 보는 상품구조가 아니지만 다양한 보험 사기 때문에 적자가 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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