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발달 상황 고려 못한 조치라며 학부모들 난색
학교 적응부터 입시·취업 불이익, 사회적 혼란 불가피
연년생 자녀 둔 학부모들 "친구도 선배도 아닌 아이들과 수업"
학령인구 감소해 교원·교실 문제 없다지만…현장선 과밀학급 우려
5일 오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2022년 신입생 예비소집에서 부모와 함께 온 신입생들이 입학 절차를 밟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굳이 왜 15개월씩 묶어서 한 교실에 넣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18년생과 19년생은 친구도 선배도 아니어서 교실이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18·19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
"7세와 8세의 1년 차이는 다른 연령대보다 크다. 지금 1학년 아이들도 손이 많이 가는데 너무 현장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초등학생 학부모)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가야 할 판이다.(18년생 자녀 둔 학부모)
교육부가 2025년부터 취학 연령을 1년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발표하자마자 학부모와 교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아이들의 발달 상황이나 학교 여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교육부는 29일 새 정부 업무보고에서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학제 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5년부터 2019년생인 7세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것이다.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더라도 일괄 시행은 어려워 교육부는 25%씩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입학 연령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2025년에는 2018년 1월~2019년 4월생, 2026년에는 2019년 4월~2020년 6월생, 2027년에는 2020년 7월~2021년 9월생, 2028년에는 2021년 10월~2022년 12월생까지 입학하게 된다.
교육부는 연말까지 학제개편 시안을 마련해 2024년부터 희망하는 지역부터 시범 사업을 실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앞서 대국민 토론회와 공청회,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치 교원·시설 등 교육 인프라를 분석하고, 출범을 앞둔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최종안을 도출하기로 했다.
취학 연령 하향 추진 계획이 발표된 이후 교육부를 지지하거나 공감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전 정부에서도 여러차례 학제 개편을 추진하려다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 추진도 난항이 예상된다.
2025년 초등학교 입학 대상인 2018·2019년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발달 상황을 고려하면 7살(만 5세) 어린이가 교실 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점, 과도기에 조기 입학한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년 넘게 차이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여러가지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어서다.
18·19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연년생 자녀가 같은 학년으로 입학하면 집에서는 누나라고 하고, 학교에서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며 "수능도 형제자매끼리 경쟁해야한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11~12월생과 1~2월생도 엄청난 격차가 있는데 1년이나 빨리 입학시킨다는 것은 너무 황당하다"고 말했다.
정해진 연령보다 1년 일찍 입학하는 초등학교 조기입학 제도가 2009년부터 시행됐지만 최근 들어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교 적응이나 따돌림 등을 우려해 조기입학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다. 2009년 9707명이었던 조기입학자 수는 지난해 537명으로 감소하기도 했다.
일찍 입학한 아이들은 17세부터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는데 해당 연령대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자녀가 대입이나 취업에서 경쟁이 심화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2019년생 자녀를 둔 또 다른 학부모는 "2018년생부터 22년생은 형·누나·언니·오빠가 동생과 같은 학년이 되고, 고교와 대학 입시부터 취업에서도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며 "학부모나 아이들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런 정책을 쉽게 내놓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2개 연령의 학생들이 학교를 함께 다니면 한 살 어린 학생은 학교생활과 내신 등에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대입경쟁률이 증가하게 되고 피해는 취업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평생 이어진다"며 "조금씩 나눠서 전환하는 방식은 피해규모를 더 키운다. 30만명을 4년에 걸쳐 25%씩 전환하면, 피해학생은 150만명"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초등학교들이 여름 방학을 맞은 15일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방학식을 마친 학생들이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교실과 교원 등 교육환경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5년부터 4년간 입학 연령이 조정되면서 과밀학급 문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서울의 경우 현재 학급당 인원이 25명 이하인 학교가 20%에 불과한 실정이다. 교육부는 학령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어 25%씩 조기 입학시킬 경우 교실이나 교원을 늘리지 않고도 수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초등학교에 재직중인 한 교사는 "매년 1학년으로 입학하는 아이들이 학습능력이나 정서 면에서 예전보다 발달이 느려지고 있어서 파생되는 문제들이 많다"며 "1학년 학급 당 학생 수가 30명에 육박하는 곳이 많은데 만5세까지 입학하게 되면 교육환경은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총은 "학제개편은 특정 시점의 학생이 두 배까지 늘 수 있다는 점에서 대폭적인 교사 수급, 교실 확충과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며 "역대 정부도 학제개편을 제안했다가 혼란만 초래하고 매번 무산된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공교육 진입을 앞당겨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경제논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교육계와 학부모들의 시각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입학 연령을 낮추면 일찍 졸업하고 취업가능한 연령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입직연령이 1세 낮아지는 경우 초혼연령이 평균적으로 0.28세(약 3개월) 낮아진다.
한 학부모는 "돈 벌 사람이 없으니 빨리 졸업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교육격차 해소라는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며 "1년 빨리 학교에 들어갈수록 사교육만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발표 하루 만에 학부모들의 불만이 쏟아지는데다 교사노조와 교원단체들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는 "유아 성장이 빨라진 것처럼 보여도 만5세 유아들은 초등교육 체제에서 교육을 받기에 발달상으로 어려움이 크다"며 "유아교육 학계·현장과의 어떠한 논의 절차도 없이 기습적으로 확정 발표했고, 중요한 논의를 하면서 관련 현장을 완전히 무시했다. 교육부의 이번 정책 발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논평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유아기 아동의 발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며 "현재도 개인 선택에 따라 초등학교 조기 입학이 허용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선택하지 않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학제 개편은 다른 방향이어야 한다. 유보통합과 연계한 유아교육 학제화도 있고, 학생들 상황을 고려한 초·중 9년제 통합운영도 있다. 출발선상의 교육격차를 해소할 요량이라면 유아 1년 또는 3년 무상의무교육이 더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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