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편견 꼬집는 드라마 의도 해쳐"
과거 '기봉이' 신현준에도 '장애 희화화 논란'
인권위 "장애 편견 조장하는 표현과 행동 주의해야"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패러디한 일부 영상이 장애 희화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유튜브 채널 '우와소'가 올린 패러디 영상.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연일 화제가 되면서 이를 패러디한 영상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의 행동과 말투를 따라하는 것이 자폐인의 특성에 대한 희화화와 조롱이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튜브 채널 '우와소'는 지난 18일 '이상한 와이프 우와소'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해 뭇매를 맞았다. 영상에서 여성 유튜버는 우영우(박은빈 분)의 말투로 "밥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음에 따라 메뉴가 바뀝니다"라며 남편에게 식사를 권한다. "법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음에 따라 죄명이 달라진다"고 했던 우영우의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그보다 앞서 다른 유튜브 채널 '미선짱'은 '우영우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입방아에 올랐다. 아이유, 지디 등 동경하는 유명 연예인의 행동을 모방하는 사람을 두고 '아이유병', '지디병'에 걸렸다고 놀리던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을 따라한 것이다. 영상에서 미선짱은 우영우를 따라하는 친구의 특징으로 ▲눈을 과하게 동그랗게 뜬다 ▲안 쓰던 헤드셋을 쓰고 다닌다 ▲갑자기 고래가 좋아졌다 ▲김밥을 세로로 먹는다 등을 꼽았다.
이같은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은 희화화라고 비판했다. 특정 행동이 장애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단순히 연예인을 동경해 그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과 장애의 특성을 따라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흐린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여러 사건을 해결하면서 변호사로 성장해나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불합리한 차별을 꼬집으면서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을 제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여 시청자들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애청자들은 "일부 몰지각한 패러디 영상으로 배우 및 제작진의 노력이 무색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출연 배우와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폐증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담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촬영 전 자문 교수를 만나 자폐 이론을 공부했다는 배우 박은빈은 기존 미디어에 구현된 캐릭터나 실존 인물을 무의식적으로라도 따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칫 자폐인의 특성을 정형화하거나 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고래 모형과 푹신한 베개가 가득한 영우의 방 또한 자폐증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제작진이 만들어낸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유튜버들은 '희화화 의도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와소는 19일 입장문을 내고 "''우영우' 캐릭터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제 와이프(여성 출연자)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함께 담아내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도하고자 했다"며 "결코 장애에 대한 비웃음이나 비하의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불편할 수 있다"면서도 "본인과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구독을 취소하거나 차단해달라"고 말했다.
미선짱 또한 입장문을 통해 "저로 인해 상처받으셨을 분들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앞으로는 콘텐츠 제작에 앞서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다"고 사과했다. 논란이 된 그의 영상은 삭제돼 20일 현재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없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사진=ENA이같은 장애 희화화 논란은 과거 영화 '맨발의 기봉이'를 두고도 발생했다. 지난 2006년 개봉한 이 영화는 지적 장애를 가진 마라톤 선수 엄기봉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당시 주인공 기봉이로 분했던 배우 신현준이 지난 2018년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자 MC들은 "기봉이 인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신현준은 다소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어눌한 말투로 인사했고, 출연진들은 박수를 치며 폭소했다.
시청자들은 장애인의 말투나 행동을 따라한 것을 넘어 이를 웃음거리로 삼은 방송인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과거 연기했던 캐릭터에 대한 재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를 예능 요소로 소비한 것은 분명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해당 프로그램의 폐지를 청원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 게시자는 "신현준과 고정 패널들이 벌인 발달장애인 희화화와 비상식적인 비웃음, 비하를 고발하며, 관련 기관에 방송책임자에 대한 고발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해당 프로그램 폐지와 방송 책임자의 사과를 받고자 이를 청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 해당 방송을 내보낸 방송사를 상대로 '주의' 의견을 냈다. 우스개 소재로 발달장애인의 언행을 재연해 불특정 다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방송에서 장애인에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표현과 행동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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