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미만 성인 10명 중 3명은 부모와 동거
독립 후 생활비 부담에 다시 캥거루족으로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 서울 양천구에서 경기 판교까지 출퇴근 하는 이지영씨(29·가명)는 직장 근처에 전셋집을 구하려다 포기했다. 그는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출근길이 너무 고돼서 집을 구하려 했다. 월세를 내고 살면 돈을 모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원래는 전셋집을 마련하려 했다"며 "그런데 금리가 올라 대출받기도 걱정됐다. 또 독립하면 식비 등 각종 생활비가 내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건데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결국 독립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성인이 돼서도 부모와 함께 살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이른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는 물론 사회활동이 왕성한 30·40대까지도 경제적 이유 등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를 대로 올라버린 집값과 치솟은 물가 등을 혼자 오롯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만 19∼49세 성인남녀 중 29.9%는 부모와 동거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취업하지 못했거나, 결혼하지 않은 경우 부모와 사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자의 64.1%, 비취업자의 43.6%가 부모와 동거하는 반면 기혼자의 동거율은 3.1%, 취업자는 23.5%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캥거루족이 늘어난 이유는 치솟은 물가와 주거비 부담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7%로 전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물가가 폭등했던 지난 2008년과 같은 수준이다. 거기다 천정부지 치솟은 서울 아파트 가격과 높아진 대출금리 또한 청년들에겐 부담이다.
직장인 조주영씨(28·가명)도 자신만의 공간을 꿈꿨으나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본가를 나와서 살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돈을 못 모은다"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사는 게 쉽지 않다. 30살 전에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은데 월급이 크게 오를 것 같지 않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부모 품을 떠났다가 주거비와 생활비 압박을 이기지 못해 다시 본가로 들어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결혼 후 독립했다가 전세난과 육아 문제 등으로 부모 집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리터루족'도 나온다. 리터루족은 '돌아가다'는 의미의 '리턴(return)'과 '캥거루족'을 합친 신조어다.
다만 자녀들의 경제적 의존에 부모 세대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라이나생명 사회공헌재단인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서울 거주 만 55세~74세 남녀 1068명을 대상으로 중장년 세대의 은퇴 후 사회참여를 주제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1.7%가 '자녀를 돌볼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최선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인 자녀가 부모 집을 떠나는 것은 특정한 연령을 중심으로 규범화되어 있지 않고, 노동시장 이행과 결혼이라는 사건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며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와의 동거가 지속되고 비동거 부모에게 계속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질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의 문제 차원에서 더욱 심화된 연구를 통해 설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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