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소비자물가상승률 5%대 진입…외식물가는 7.4%↑
정부 "물가 상승은 외부 요인…향후 6%대 물가 상승률 볼 것"
고물가에 '무료 급식소' 찾는 노인들…"물가 치솟은 후 찾는 이들 늘어"
한국 노인 10명 중 4~5명 '빈곤' 상태…OECD 1위
사람들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윤슬기 기자 seul97@[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나가서 커피 한 잔 못 사먹는데 코로나 풀리면 뭐하나."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에서 만난 홍정표씨(81)는 치솟는 물가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홍씨는 "은퇴 후 월 88만원가량 연금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다"며 "요즘 물가엔 턱 없이 부족한 돈이다. 이 돈으로 생계 유지가 힘들어 전기·가스비를 100만원정도 밀리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홍씨는 "물가는 오르고, 돈 벌 곳 없는 노인들은 더 힘들다"며 "외식은 생각도 못하고 장을 조금씩 봐서 집에서 끼니를 챙겨먹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노인의 고민도 비슷했다. 서울 왕십리에서 자식들과 함께 거주 중인 김모씨(90)는 "차라리 코로나 때 집에 있었던 게 낫다"며 "코로나 풀려도 물가가 비싸니 밖에 나가서 마음껏 커피 한 잔 못 사먹는다"고 전했다. 김씨는 "노인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밖에서는 늙었다고 일을 주지도 않고, 자식 돈만 받고 살자니 어렵다"며 "나라에서는 자식과 함께 산다고 지원도 해주지 않는다. 수중에 현금이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5.4%, 지난달 대비 0.7% 상승했다. 5%대 상승은 지난 2008년 9월이 이후 처음이다. 특히 외식 물가는 7.4% 올라 지난 1998년 3월(7.6%) 이후 가장 큰 오름폭을 보였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서 배식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사진=윤슬기 기자 seul97@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당분간 물가 잡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충격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6월 또는 7~8월에 6%대의 물가 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물가 상승 요인의) 대부분이 해외발이어서 국제 유가가 단기간에 좀 떨어지면 숨통이 트일 텐데 당분간은 그런 상황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반적으로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례없는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다 보니 저렴한 가격을 고수했던 국밥집들도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이천원 송해 국밥집'으로 이름 난 한 식당은 지난 1일부터 10여년간 유지하던 국밥 가격을 500원 인상했다. 식당 직원은 "물가가 너무 올랐다"며 가격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노인들은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기도 한다. 탑골공원 옆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고영배 사무국장은 "물가가 높아진 이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며 "주로 노인들이 많이 찾고 최근에는 40대~50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배식이 시작되는 시간인 11시30분께 굵은 소나기가 잠시 내렸지만, 노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료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대기실에도 200명가량이 이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천원 국밥'으로 유명했던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한 국밥집이 물가 상승으로 인해 국밥가격을 500원 인상했다. /사진=윤슬기 기자 seul97@고 국장은 "이 곳을 찾는 분 중에 90세 노인이 계신데, 항상 새벽에 오셔서 번호표를 받으신다"며 "그분은 여기 오셔서 다른 분들 한 그릇 먹을 때 네 그릇, 많으면 여섯 그릇까지 드신다. '나는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으니까 여기서 많이 먹어야 한다'고 그러더라"라고 말했다.
노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보고서와 이 보고서를 다룬 국민연금연구원의 이슈브리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인의 상대적 소득 빈곤율은 43.4%로 OECE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이는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로 한국 노인 10명 중 4~5명이 취약층이라는 뜻이다.
특히 중기 고령층 이상과 여성 노인이 높은 빈곤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66~75세가 34.6%, 75세 초과 연령대가 55.1%였고 여성이 48.3%, 남성이 37.1%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임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을 보면 젊었을 때 노후 자금을 저축해두지 않고, 저축을 해뒀다 하더라도 자식들에게 내어주면서 돈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노인들은 자식이 자신의 노후를 돌봐줄 것을 기대하고 돈을 내줬지만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지 못하면서 노인들이 가난에 빠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회장은 "결국 노인들은 사회적 안전망에 기댈 수 밖에 없다"며 "공공근로 사업 등 노인 일자리 사업을 강화해 노인들이 돈을 버는 한편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며 건강한 노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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