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에 빠진 2030, '갓생(God+生)'에 이어 '독기'
성공·자아실현 좇아 독하게 노력…유명인 롤모델 삼아 동기부여도
"한탕주의에 대한 반발…성공·자아실현 위해 독하게 살자는 심리"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독하게 노력해서 살자'의 함축적인 표현, '독기'가 유행하고 있다. 성공한 유명인을 롤모델 삼아 그들을 닮겠다는 일종의 동기부여인 셈이다.[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 취업준비생 A씨(20대)는 블로그에 취업 준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타인이 볼 수 없도록 비공개로 설정해둔 그의 일기에는 스터디 모임, 모 기업 필기·면접 후기 등 노력의 흔적이 가득하다. A씨는 블로그에 용기를 북돋는 유명인의 명언과 함께 "앞으론 독기 가득하게 '갓생(God+生, 계획적이고 모범적인 삶)' 살자"는 다짐을 남겼다.
이처럼 "독기 넘치게 살자", '독기 넘치는 아이돌 모음 영상' 등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독기'라는 단어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게으름을 지양하고 자아실현과 성공을 위해 독하게 살자는 의미인데, 최근 2030세대들 사이에 인기를 끈 '갓생 살기' 트렌드와도 흐름이 유사하다.
독기란 사납고 모진 기운이나 기색이라는 뜻으로 본래 부정적인 의미가 크지만, 최근 2030세대들이 성공과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모습을 '독기'로 묘사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독기는 "독기를 가지고 공부하라", "성공하려면 독해져라" 등의 표현에서 현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지만 최근처럼 유행어로 자리잡지는 않았다.
2030세대들의 독기의 용례를 살펴보면, 주로 자신에게 엄격하거나 목표를 위해 독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긍정의 의미가 내포돼있다. 성공한 유명인을 롤모델 삼아 그들을 닮겠다며 동기부여할 때도 사용한다.
칼군무로 유명한 모 아이돌 그룹의 무대 영상에 '독기 미쳤다', '배워야겠다. 독기 충전하고 간다', '(가요계에서) 뜨고야 말겠다는 게 눈빛에서 느껴진다' 등의 댓글이 달리고,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손축구아카데미 감독의 명언 영상을 공유하며 '가슴이 뛸 정도로 울림이 크다', '독기에 질식할 것 같다', '열정맨이시다' 등의 글을 남기는 등이다. 손흥민은 손 감독의 엄격한 훈육이 밑거름이 됐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이들은 계획을 철저히 지킨 스스로를 두고 '산독기(토끼와 독기가 발음이 유사)', '독기 가득한 일상', '독기 넘치는 갓생 살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자기 치장, 인맥 등 불필요한 것에 과하게 치중하는 사람을 일컫거나 비꼬는 표현으로도 종종 사용된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유행한 '갓생 트렌드'와도 유사하다. 게으름을 지양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목표를 세운 뒤 이를 실천하면서 성취감을 얻는 것이다. 2030세대 사이에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운동·독서·명상 등을 하는 '미라클 모닝(Miracle mornig)'도 유행이 됐다. 미라클 모닝은 오전 4~5시에 일어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새벽 시간을 자기계발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열풍에 규칙적인 습관 형성을 돕는 앱도 인기를 얻고 있다. 미션 수행 알람 앱이나 공부 시간을 체크하는 타이머 앱, 체중관리를 돕는 다이어트 앱, 조깅 앱 등이다. 이들은 SNS를 통해 미라클 모닝을 수행하는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4일 오후 1시 기준 인스타그램에 '#미라클모닝' 게시글은 97.7만여개, '#미라클모닝챌린지'는 9.4만여개에 달한다.
전문가는 이같은 현상을 한탕주의에 대한 반발심리라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미래보다 현재에 중점을 두는, 열심히 사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의 'YOLO(You only live once)'가 유행했다. 그런 개념이 현재는 달라지고 있는데, 젊은 세대들이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고 절약하며 성공을 위해 노력하자는 신조를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가 부동산, 주식, 코인 등 투기(문제)가 심각하지 않나. 이런 한탕주의와 달리 열심히 생활하면서 티끌 모으는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데, 다만 평범하게 성실하게 살고 열심히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최근에는 더 독하게 살자는 독기 이런 용어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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