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전쟁에 국제 곡물 물가 폭등
밀가루식용유 쓰는 시장 상인도 부담
국내 식량 자급률 19%대 불과
국제 물가에 영향 크게 받아
8일 수도권 한 재래시장에서 상인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밀가루, 식용유값이 너무 올랐어요. 등골이 휘청일 지경이네요", "가격을 올릴 수도 없고 손해 보고 장사할 수도 없고…답답하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서 서민 경제에도 먹구름이 낄 전망이다. 밀, 옥수수, 콩 등 작물의 생산량이 감소하면 밀가루 음식뿐만 아니라 식용유 등 다양한 식자재도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시장 상인들 또한 이미 '밥상 물가 폭등'의 압박을 느끼고 있다며 호소했다.
8일 경기도 한 재래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60대 A씨는 식자재 걱정에 잠도 못 이룰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채소, 마늘, 고춧가루 같은 양념은 시기에 따라 가격이 들쭉날쭉한 게 당연한 재료들이라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는다"라며 "그런데 올해는 유독 (가격이) 폭등을 거듭하고 있어 등골이 휠 지경이다"라고 토로했다.
제과점, 분식점 등 곡물가공품을 식자재로 쓰는 업체들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 인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40대 B씨는 "밀가루값이 금값이다. 빵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가 밀가루인데, 한 번에 10%, 20%씩 뛰기 시작하니까 대책이 없다"라며 "대형 체인점은 본사에서 한 번에 필요한 식자재를 대량 구매할 테니 그나마 상황이 낫겠지만, 우리같은 소상공인은 조금만 가격 변동이 커져도 버티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10년 넘게 꽈배기·고로케 등 기름에 튀긴 분식을 팔고 있다는 C씨(57)는 "밀가루뿐만이 아니고 기름, 설탕, 하여간 음식 만드는 데 쓰는 건 죄다 오르는 것 같다"라며 "시장에서 일을 꽤 오래 했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어 본 적은 처음"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빵집, 분식집 등에 쓰이는 밀가루·식용유 등 주요 식자재 가격이 10~20%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지난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기준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국내 외식 물가 지수는 전년 대비 6.6% 상승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4월(7.0%) 이후 최대 수준의 상승폭이다. 요식업에 쓰이는 식재료들은 대부분 두자릿수 이상의 상승폭을 기록했다. 식용유는 21.6%, 간장은 18.6% 상승했으며, 밀가루 가격 또한 14.3% 올랐다.
'유엔식량농업기구' 곡물자급률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19.3%다. 즉, 한국은 국제 시장 가격에 맞춰 해외에서 곡물을 수입해야 식품을 원활하게 수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글로벌 곡물 가격은 크게 급등한 상태다. '유럽의 빵바구니'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곡물 생산국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구가 차단되면서 식량 공급망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산하 농업관측센터가 7일 발표한 '국제곡물 4월호'에 따르면, 곡물 수입단가지수는 식용 158.5, 사료용 163.1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주요 곡물 가격을 지수화한 것으로, 2015년 물가를 100으로 설정한다. 즉 7년 전과 비교해 현재 곡물 가격은 최소 50% 이상 치솟은 셈이다.
만일 국제 곡물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고점을 유지한다면, 수개월 뒤에는 밀가루·식용유 등 식자재 가격도 급등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 또한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며 호소했다. 평소 재래시장에서 반찬거리를 마련한다는 50대 주부 정모씨는 "고기부터 야채까지 물가가 오르는 게 확 체감이 된다. 몇 가지 재료만 넣어도 금방 4~5만원을 쓰게 되더라"라며 "예전에는 조금 더 지출하더라도 질 좋은 식재료를 골랐는데, 지금은 무조건 양 많고 싼 것만 찾게 된다"라고 토로했다.
경기 화성시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재배 중인 곡물. /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자취를 하고 있다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자주 이용하던 반찬가게에서 찬거리 가격을 500~1000원씩 올렸더라"라며 "요즘 물가가 워낙 비싸다고 하니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싼 맛에 이용하던 재래시장까지 점점 가격이 올라가니 삶이 팍팍해진다"라고 털어놨다.
현 정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앞으로 더욱 악화될 전망인 물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체감 물가를 낮추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유류세 인하폭 30% 확대 등 고유가 부담완화 방안도 포함됐다.
인수위는 현 정부에 더욱 강도 높은 물가 안정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7일 브리핑에서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제 곳곳에서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1개월 동안 열심히 마무리하기 위해 여러 현안을 챙기고 있고, 챙겨야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 인식을 정부에 촉구했다"라며 "인수위에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어 전문가 견해를 들어가며 별도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인수위는 지난 6일 곡물 수입·유통 기업 및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 등과 간담회를 열고 국내 곡물 재고를 파악하는 등, 국내 식량 작물 비축량 현황 파악 등에 나선 상태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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