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를 위한 임시 기표소 운용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이 헌법상 선거원칙과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는 가운데,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상대로 한 형사고발이 잇따르고 있어 주목된다.
7일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는 직권남용, 직무유기,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중앙선관위 노정희 위원장과 김세환 사무총장, 선관위 관계자들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법세련은 “확진자 및 자가격리자들로 하여금 투표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하게 하고 제3자인 투표사무원에게 제출하도록 한 것은 '투표지는 기표 후 그 자리에서 기표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제157조 4항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며, 투표지를 봉인되지 않은 종이박스, 쇼핑백, 쓰레기봉투 등에 담아 투표함으로 이동한 것은 ‘투표의 비밀은 보장돼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제167조 1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권자가 투표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한 건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써,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각한 헌법유린 대참사”라며 “이미 국회에서 이번 사태가 예견됐다는 점과 본투표처럼 사전투표에서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투표 시간을 확실히 분리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일하고 무능하게 대응한 선관위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전날 서민민생대책위원회도 노 위원장을 직권남용, 강요, 직무유기, 헌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헌법 제67조는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고 선거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5일 벌어진 사태가 직접·비밀·평등선거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권자가 투표지를 투표함에 직접 넣지 않았다는 점에서 직접선거 원칙 위반 여부가 문제될 수 있고, 투표지를 담은 봉투에 자신의 이름을 기재하게 하거나 기표를 마친 투표지가 타인에게 공개된 것은 명백한 비밀선거 원칙 위반이고, 일반 유권자와 코로나19 확진자를 차별 취급했다는 점에서 평등선거 원칙 위반이라는 것.
대한변호사협회는 전날 낸 성명에서 “민주주의는 국민의 비밀·직접 투표에서 시작된다”며 “이번 보도된 사태는 직접투표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선관위를 비난했다.
선관위는 ‘하나의 선거에 관한 투표에 있어서 투표구마다 선거구별로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 선거법 제151조 2항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확진자나 격리자와 비확진자의 동선이 겹치게 할 수 없고, 선거법상 추가 투표함 설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투표소 외부에 설치된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함까지 투표지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해명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야당 측은 지난달 16일 법을 개정하며 신설한 선거법 제6조의3(감염병환자 등의 선거권 보장)에 따라 역시 신설된 공직선거관리규칙 제67조의2(투표소의 설치 및 설비) 3항에서 격리자 등의 투표를 위한 임시 기표소 설치 등 필요한 조치 의무를 규정한 만큼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이라는 입장이다.
유상범 국민의힘 법률지원단장은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법리 검토를 거쳐 고발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선관위의 해명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확진자들이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을 수 없게 하려면 봉인된 간이 투표함을 준비해서 나중에 본투표함으로 옮겨 담았으면 문제될 게 없었을 것”이라며 “2개의 투표함을 만들 수 없다고 종이박스나 쇼핑백을 이용한 것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 너무나 형식논리적으로 법을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일로 노 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관계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백성문 법무법인 아리율 변호사는 “이번 사태가 헌법상 선거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도 “부실 관리였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모든 걸 불법으로 몰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과실범 처벌 규정이 없는 만큼 선거원칙 위반과 형사처벌은 별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백 변호사는 “이번 사전투표의 경우 확진자와 격리자가 투표하는 시간에 일반 유권자들도 함께 투표가 진행돼 문제가 생겼다”며 “본투표 때는 투표 시간이 엄격하게 나뉘는 만큼 다시 이런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6시에 임박해 투표장에 도착해 미처 투표를 마치지 못한 일반 유권자들과 확진자들의 투표시간이 겹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사전투표 때 투표용지를 받았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져 투표를 하지 않고 귀가한 유권자들이 본투표 때 투표를 할 수 없게 된 점도 나중에, 특히 1, 2위 간 표차가 적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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