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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광 예비의대생…창업 11년만에 53조원 '잭팟'[뉴스人사이드]

수정 2021.10.24 09:40입력 2021.10.24 08:30

벤 실버만 핀터레스트 공동창업주 겸 최고경영자(CEO)

▲벤 실버만 핀터레스트 공동창업주 겸 최고경영자(CEO)


[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 수집광 예비의대생. 창업 11년만에 53조원의 잭팟을 터트린 괴짜.


이미지기반 소셜미디어(SNS) 핀터레스트의 공동 창업주 겸 최고경영자(CEO) 벤 실버만의 이야기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의 CEO와는 달리 벤 실버만은 의대 진학을 준비하던 전형적인 '공부벌레'였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안과의사로 집안 내력에 따라 본인도 의사가 되기위해 예일대에 진학해 의예과 준비과정(Pre-med)를 밟았다. 하지만 2003년 대학졸업 후 워싱턴DC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던 중 IT 전문 웹사이트 '테크크런치'의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 것을 계기로 실리콘밸리행을 택하게 된다. '실리콘밸리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직감이 그를 실리콘밸리로 이끌었다.


그는 그렇게 2006년 실리콘밸리의 대표 IT기업 구글에 입사해 온라인 광고팀에서 일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꿈의 직장 구글을 돌연 2년만에 그만두고 대학 동창이자 훗날 핀터레스트의 공동 창업자 중 한명인 폴 시아라와 함께 이런저런 아이템을 구현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토트'라는 아이폰용 쇼핑 카탈로그 앱을 출시했으나 실패를 맛봤다.

많은 실리콘밸리의 IT기업 창업주들이 그렇듯 실버만 역시 실패에 낙담하지 않고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갔다. 실버만은 유년시절 자신의 경험에서 두 번째 창업아이템의 영감을 얻었다. 어릴적 그는 우표, 곤충 등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수집광이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바로 핀터레스트.




핀터레스트(Pinterest)는 물건을 고정할 때 쓰는 핀(Pin)과 관심사를 뜻하는 인터레스트(interest)의 합성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관심사를 사진으로 공유하는 SNS가 바로 핀터레스트인 것이다.


실버만은 "모든 사람이 트위터에서 재치있게 이야기할 만큼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페이스북처럼 공유할 만한 재미있는 뉴스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며 "하지만 누구나 무언가 수집하고 싶어하는 것들은 있다"고 말했다.


건축학도 겸 디자인 전문가인 친구 에번 샤프가 팀에 합류하면서, 2010년 3월 실버만은 폴 시아라, 에번 샤프와 함께 핀터레스트를 창업했다.


실버만은 창업 초기 디자인에만 몰두했다. 이미지배열이 아름다워야 사용자들이 이미지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싶어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에번 샤프를 팀에 합류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못생긴 스크랩북에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겠냐"는 것이 바로 실버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좋지 않았다. 서비스를 시작 후 9개월동안 이용자수는 5000명에 그치는 등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를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불과 2개월만에 100만계정을 달성하면서 고공행진 하던 중이었다.


▲벤 실버만 핀터레스트 최고경영자(CEO)

그는 서두르지 않고 2년동안 지인을 통한 가입원칙을 고수했다. 핀터레스트는 회원들에게 각각 몇장의 초대권을 제공했는데, 이를 받은 사람만 핀터레스트에 가입할 수 있었다. 초대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부디 신중하게 사진을 '핀'해주세요. 당신의 핀이 커뮤니티의 성격을 결정짓습니다"


빨리 성과를 내고 성공하고 싶어하는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핀터레스트는 우직하고 정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이 때문에 창업 후 4년간 매출이 제로 수준이었다.


실버만은 느리지만 제대로 가겠다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창업 초기 실버만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감사 이메일을 고객들에게 보내면서 피드백을 요청했다. 이용자 오프라인 모임도 만들어 이용자들의 의견 하나하나 귀담아 듣고 반영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실버만의 이같은 정직한 노력에 이용자들은 서서히 이미지 중심의 SNS 핀터레스트에 빠져들었다. 창업 2년여가 지난 2012년 1월에는 순 방문자수가 1170만명에 달하는 등 주요 SNS 중 최단기간에 방문자수 1000만명을 돌파한 SNS로 떠올랐다.




현재 핀터레스트는 기업가치 450억달러(약 52조9000억원)에 육박한다. 미국의 결제서비스업체 페이팔이 핀터레스트 인수 의향을 타전하며 인수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주당 70달러선에 인수하는 것으로 19일(현지시간) 기준 핀터레스트 주식 종가 55.58달러에서 약 26%의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이다. 주당 70달러로 환산시 핀터레스트의 기업가치는 총 450억달러로, 이는 페이팔의 역대 거래규모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


페이팔이 '역대급' 금액을 지불하고도 핀터레스트를 인수하고자 하는 데에는 다른 SNS보다 실질적인 광고효과나 수익성장세 면에서 월등히 우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패션전문 웹사이트(Bottica.com)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핀터레스트를 통해 해당 사이트로 유입되는 고객은 평균 180달러를 소비한 반면 페이스북은 85달러에 불과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훨씬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광고 효과는 핀터레스트가 더 높다는 것이다. 경제전문잡지 포브스는 역시 "핀터레스트의 월간 활성사용자는 트위터(3억3000만명)보다 적지만, 핀터레스트의 사용자들은 훨씬 더 적극적"이라며 "이는 향후 핀터레스트의 기업가치와 수익 성장세를 이끌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평가는 창업 초기 돈을 벌 수 있었으나 일부러 벌지 않는 정직한 경영을 해온 실버만의 경영철학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핀터레스트의 공동창업주 중 한명인 에번 샤프(왼쪽)와 벤 실버만(오른쪽)

실버만은 "이미 성공한 기업들은 사용자들이 하고 있는 것과 광고주들이 하고싶은 것의 접점을 찾았고 그 과정도 투명했다"며 "우리의 수익모델은 장기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핀터레스트는 이용자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정직한 기업이다. 해마다 여성, 소수인종 등 다양성 목표를 정해 이행여부를 보고서 형태로 발간한다. 엔지니어를 채용할 때도 실력보다는 도덕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다.


뉴욕타임스(NYT)는 핀터레스트를 '결백함의 마지막 보루'라고 평가했다.


속도보다는 방향에, 목적지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둔 실버만이 만들어낸 파라다이스가 '핀터레스트'가 아닐까.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美·러 베낀 中, 독자개발 韓에 할 소리 아니다"[과학을읽다]
수정 2021.10.25 06:47입력 2021.10.24 09:37

세계 우주발사체 개발 흑역사로 본 '누리호의 성과'
누리호 발사 '혹평' 중국은 남의 나라 기술 이전받아 조기 성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 21일 대한민국의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첫 발사됐습니다. 목표 고도인 700km까지 무사히 도달했지만 마지막 3단부 엔진이 계획보다 일찍 꺼져 위성모사체를 궤도에 올려 놓지는 못했습니다. 성공이냐 실패냐 말이 많지만, 기술적으로 볼 때 성공작으로 평가됩니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1단부의 75t급 엔진 4개 클러스터링이 정상 작동했고, 각 단 분리ㆍ페어링 분리도 제대로 이뤄졌습니다. 발사체의 자세 제어나 방향 콘트롤까지 정확히 설계된 대로였죠. 발사를 마친 후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개발본부장은 "모든 것들이 다 정확하게 들어맞았는데. (3단부 엔진의) 연소시간이 짧아서 궤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서도 "어렵지 않게 원인을 찾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완벽한 결과를 (2차 발사에서) 보여드리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다른 과학자들의 평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권세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인공위성센터 소장은 "나는 성공했다고 본다. (1차 발사에서) 너무 높은 목표(위성모사체 궤도 진입)를 잡았던 것 아니냐. 이 정도면 기술적으로 성공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누리호의 발사 성과에 대해 중국 등 일부를 제외하곤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이 독자적 위성 발사체 기술 확보에 첫 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는 내용입니다. 세계 우주발사체 역사로 본 누리호의 성과를 살펴보죠.


◆ 미·러 베꼈던 중국

중국 측에선 자신들이 1970년대 제작했던 것보다 누리호의 기술력이 못하다고 혹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마디로 러시아와 미국의 기술을 이전받거나 베껴 '벼락치기'에 성공한 중국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독자 기술 확보에 성공한 한국에 대고 할 소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중국은 1970년 창정 1호 로켓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데 성공하긴 했습니다. 최근에는 500t급 추력을 가진 초대형 엔진을 개발해 심우주 탐사를 위한 괴물급 우주발사체 '창정 5호'를 제작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기술을 베끼고 러시아의 기술을 이전 받아 시기가 빨랐을 뿐입니다. 중국의 로켓 기술 개발은 1955년 미국에서 쫓겨나다시피 귀국한 로켓 공학자 첸쉐썬 박사가 주도했습니다. 그는 국민당 고위 간부의 자제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 유학해 독일의 V2 로켓 기술을 연구했지만, 매카시즘 광풍에 휩쓸려 지위가 위태롭자 자의반 타의반 귀국을 선택했습니다. 미국의 앞선 로켓 기술과 노하우를 고스란히 중국에 안긴 꼴이 됐습니다. 경영학계에선 '인재 관리 실패'의 최대 사례로 본답니다. 미 정보 당국이 "첸쉐썬은 5개 군단보다 무서운 인물"이라며 강력 반대했지만 당시 저우언라이 중국 부총리의 비밀 협상이 통했다는 군요.

첸쉐썬 박사는 귀국 후 러시아의 기술을 제공받아 중국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 둥팡 1호, 둥팡 2호를 개발했고, 창정 1호와 인공위성 발사도 주도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기술 제공이 없었다면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극복하지도 못한 데다 문화혁명으로 피폐된 후진 농업 국가가 1970년대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 일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입니다. 중국은 당시 미국과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핵무기 및 장거리 투사 수단(ICBM) 개발에 국가적 사활을 걸었습니다. 게다가 단번에 사실상 성공한 누리호와 달리 창정 1호는 4번 발사해 2번만 성공하는 등 부실했습니다. 1969년 11월 첫 발사 때는 고작 69초 비행 후 2단 분리가 안 돼 추락하고 말았죠.





◆ '고난의 행군' 걸어야 성공한다

다른 나라들도 우주발사체 과정에서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일본은 1970년 고체 연료를 쓰는 람다로켓을 개발해 위성 발사에 성공했지만 4번의 실패 끝에 5번째 성공하는 등 난관을 겪었습니다. 특히 실용급 중대형 위성을 쏘기 위해 액체연료 로켓을 개발하려 했지만 어려움을 겪자 미국의 델타 로켓 기술을 전수받아 1975년 N-1 로켓을 개발했죠. 그러나 7회 발사 중 1회는 실패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독자 기술로 H-2로켓 개발에 나섰지만 납땜을 잘못해 엔진에 불이 붙어 추락하고, 터보펌프 이상으로 엔진이 멈춰 바다 한가운데 떨어지는 등 수모를 겪었습니다. 일본은 이후 1999년부터 새로운 발사체 개발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우주개발의 원조이자 최고 기술국인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 해군 주도로 1955년부터 개발된 '뱅가드 로켓'은 11번 발사 중 3번만 임무에 성공하는 치욕을 겪고 폐기됐습니다. 첫 번째 발사 때는 점화 2초 만에 엔진이 꺼졌고, 두 번째도 57초 만에 상공에서 폭발했습니다. 미국이 발사에 성공한 첫 우주 발사체 '주노1호' 도 총 10번 발사 중 4번만 성공하고 6번은 실패했죠. 이 뿐만 아니죠. 현재 재활용 로켓 등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민간 업체 스페이스X도 팰컨9 개발 당시 3차례의 실패 끝에 4번째 겨우 성공했는데요. 당시 일론 머스크는 딱 마지막 발사만 할 수 있는 자금 밖에 남아 있지 않은 파산 직전의 상태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중국의 우주개발 인력은 약 30만명, 스페이스X의 직원은 약 5000명,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직원은 약 1만명이 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연간 200억달러 안팎을 쓰며 직원도 2만명에 달합니다. 우리나라 항우연의 직원은 항공 부문을 다 합쳐도 1000명도 채 안 됩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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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거짓말 논란' 속에 소환된 유승민의 레전드급 연설
수정 2021.10.24 09:43입력 2021.10.24 07:49

'소득주도성장론 동의' 논란 속에 2015년 교섭단체 연설이 거론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안산 단원고 2학년 허다윤 학생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여 오늘까지 엄마 품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윤이의 어머니는 신경섬유종이라는 난치병으로 청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내 딸의 뼈라도 껴안고 싶어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다윤 양과 함께 조은화,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권재근씨와 권혁규군 부자, 이영숙씨... 이렇게 9명의 실종자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세월호 문제를 금기시하고 있을 때, 당시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전 의원은 교섭단체 연설로 이 문제를 빼 들었다. 유 전 의원은 "실종자 가족들은 ‘시신이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며 "세상에 이런 슬픈 소원이 어디에 있냐"고 말했다. 이어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국가는 왜 존재하냐"며 "우리 정치가 이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하지 않겠냐"며 통합을 이야기했다.


한쪽은 성장만 다른 한쪽은 복지만 이야기하던 한국 정치의 갈등 구조를 깨고 성장을 말하는 진보당, 복지를 말하는 보수당의 필요성을 평가하며 합의의 정치를 이야기했다.


성장을 가장 많이 언급한 이 연설에서 그는 공무원 연금개혁이나 보육개혁 등 주요 의제는 물론 중부담 중복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국가비전을 제시했다. 당시 유 전 의원은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다"며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가 하나의 해결책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마무리했다.

유승민 전 의원./윤동주 기자 doso7@

연설 직후 국회의장은 본회의 폐회를 알리기 전에 "아주 훌륭한 내용의 훌륭한 연설"이라며 이례적인 극찬을 내놨다. 더 이례적인 것은 당시 야당이 여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을 두고 ‘명연설’이라고 평가했다는 점이었다. 교섭단체 연설을 하면 한 쪽은 칭찬만, 다른 쪽은 비난만 하는 게 너무 당연시된 정치풍토를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역대급 연설이라는 2015년 4월8일 유 전 의원의 교섭단체 연설은 이후 그의 삶을 바꿨다. 국가의 미래 비전과 연금개혁 등 국가가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는 심판해야 한다"는 선고까지 받은 뒤 그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유 전 의원의 연설이 최근 다시 소환됐다. 당내 대선 경선에서 경쟁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2일 유 전 의원과의 맞수토론에서 "유 전 대표가 (당시 연설을 통해) 소득주도성장에 동감한다고 했다"고 공격했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윤 전 총장은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반박까지 했다. 다음날 유 전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거짓말을 주장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제게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하는 황당한 태도"라고 반박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 걸까.


당시 국회 속기록 등에 남아 있는 연설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경제성장은 오랫동안 보수의 의제였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소득주도형 성장, 포용적 성장’을 말했을 때 저는 이 새로운 변화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야당이 성장의 가치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반가웠습니다. 보수가 복지를 말하기 시작하고 진보가 성장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우리 정치의 진일보라고 높이 평가합니다."


"저는 야당이 제시한 소득주도 성장론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정한 속도의 최저임금 인상,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지출의 확대는 빈곤과 양극화 해소라는 차원에서 동의합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지출 확대가 저소득층의 소비를 늘려 내수 진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2100년까지 저성장의 대재앙이 예고된 우리 경제에 대하여 이 정도의 내용을 성장의 해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왕 야당이 성장이라는 시대의 가치를 얘기한다면, 여야가 그 해법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합의의 정치로 성장을 위한 지난한 개혁의 길로 함께 가자는 점입니다."


그의 연설에는 진보정당이 복지만 강조하기보다, 성장을 말하는 것은 의미 있는 지점이라는가 평가가 나온다. 다만 그 평가는 여야 양측이 성장의 필요성에 공감을 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정치권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공통점을 언급하는 수준이다. 더욱이 그는 야당의 변화에 대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 성장론의 재검토 필요성을 지적했다. 성장을 말하는 진보정당의 목소리에 주목하지만, 이런 해법으로는 성장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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