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대행 체제 서울시, 광화문광장 재정비 공사 논란
전문가 "시급한 사업 아니라면 주민 합의 우선"
[아시아경제 한승곤·강주희 기자] 권한대행 체제의 서울시가 16일 광화문광장을 보행 친화적 공원으로 재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해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차기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5개월 앞둔 시점인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시민과 관계기관의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고 밝혔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여론 수렴 등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는 시민사회와 주민들의 의견 합의를 이루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이날 광화문광장을 '사람이 쉬고 걷기 편한 광장'으로 조성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이번 공사는 광화문광장의 서쪽(세종문화회관 방향) 차로를 쉼터와 나무가 있는 공원으로 조성하고,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었던 양방향 통행은 동쪽(주한 미국대사관 방향)으로 몰아 차로를 7~9차선으로 확장하는 게 골자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지난 2009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조성된 것으로, 11년 만에 대대적인 재정비 공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시가 공개한 광화문광장 일대 변경 공사에는 2023년까지 791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이번 달 부터 내년 2월까지 동쪽 도로 확장·정비를 완료한 후 현재 서쪽 차로로 다니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서쪽 차로를 광장처럼 조성하는 공사는 내년 5~10월 추진해 총 2단계로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이날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서울 도심 심장부인 광화문광장이 회색을 벗고 녹색의 생태 문명거점 공간으로 변모하고, 그 변화를 시작으로 전면 보행광장을 시민 품으로 돌려드리는 날이 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시장 궐위 상황이지만, 지난 4년여간 논의했던 결과를 바탕으로 흔들림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사업 추진 이유를 밝혔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16일 시청 브리핑룸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관련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정비 사업 착공에 반발하고 있다. 시민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도 않았고, 시장 궐위 상태에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정비 사업 공사는 시민사회와의 논의 없이 진행되는 기습 강행"이라며 "차기 시장 선거를 5개월가량 앞둔 시점에서 무리하게 졸속 공사를 추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이번 공사와 관련해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 지역주민, 온라인 등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체는 "종합적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관련 계획이 발표된 것은 하나도 없다"며 반발했다.
앞서 기존에 해당 사업 추진하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정부서울청사를 관리하는 행정안전부와 광화문 일대 주민 등의 반대로 지난해 9월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단체는 "이번 사업은 구체적인 마스터플랜 없이 도로는 도로대로, 공원은 공원대로 개별 절차에 따라 개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광화문광장 홈페이지에 어떤 자료도 게시되지 않는 등 최소한의 정보공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재구조화 사업 실시계획과 개별사업 상세내역도 서울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도 코로나19 확산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 강행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직장인 서 모(29)씨는 "누가 공원 만들어 달라 했나. 멀쩡한 광장을 왜 쓸데없이 바꾸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대부분 반대하는 사업을 5개월 남은 상태에서 왜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30대 직장인 강 모 씨도 "요즘 코로나로 생계가 어려운 시민들이 얼마나 많나"라며 "민생에 예산을 써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가벼운 공사도 아니고, 800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을 시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추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시민사회와 주민들의 의견 합의를 이루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석환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시장이 궐위된 상황에서 시급하지 않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시민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이번 사업이 지금 반드시 시행해야 할 시급성·위급성 있는 사업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궐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사업을 미루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민들은 자신의 권리 행사를 대표(시장)에게 선거를 통해서 위임한 것"이라며 "시장이 궐위되어서 법률적으로 권한대행이 그 권리를 행사하고 있지만, 권한대행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권리를 위임받은 사람은 아니다. 서울시 내부 사정도 있기는 하겠지만, 아주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면 시민사회, 주민들의 의견 합의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