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대선주자 부동의 1위 평가 받았지만…정가의 시선, 윤석열에 쏠릴 때 관심 밖으로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자유연대’ 관계자들이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앞의 화환을 자진 철거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윤석열 검찰총장은 2022년 3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의도 정가의 시선이 ‘서초동’을 향하고 있다. 특정 정당에 몸담지도 않았고 본인 입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주요 정치인들을 제치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장면이다. 대선 출마를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에 펼쳐진 꽃길을 내달려 청와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 ‘지지율 1위’를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짜릿한 상상에 빠질 수 있다.
그 짜릿한 상상을 윤석열 총장보다 먼저 경험한 검사 선배가 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부동의 대선후보 1위’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그는 야당은 물론이고 여야 대선주자를 모두 합쳐서도 지지율 1위를 달렸던 검사 선배 황교안이다.
검사 선배 황교안은 사법연수원 13기 출신으로 1982년 검사로 임용돼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윤석열 총장과 교집합이 많다. 연수원 기수나 검사 임용시기 모두 검사 선배 황교안이 한참 고참이다. 윤석열 총장은 연수원 24기 출신으로 1994년 검사로 임용됐다.
검사 선배 황교안은 정치 입문 전부터 여의도 정가의 관심 대상이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이력도 그의 몸값을 높여준 요인이었다. 정치에 뛰어들기만 하면 기존 대선 판도가 출렁일 것으로 내다본 이가 많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지난해 1월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며 정치 참여를 선언했고, 불과 한 달 뒤인 2월27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며 제1야당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검사 선배 황교안의 초반 행보는 꽃길이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해 3월25~29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2516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한 결과, 검사 선배 황교안은 21.2%로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2월 오마이뉴스 조사 당시의 17.9%보다 3.3% 포인트 상승한 결과이다.
오마이뉴스 3월 조사에서 대선주자 선호도 2위는 14.9%를 얻은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차지했다. 3위는 12.0%를 기록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4위는 7.1%를 얻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지난해 봄만 해도 검사 선배 황교안의 기세는 대단했다. 제1야당 대표가 된 직후라는 점, 야권에 별다른 경쟁자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독주 체제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다. 2019년 3월은 차기 대선을 3년 남겨둔 시점이다. 3년의 시간만 지나면 제1야당 대선 후보 자리에는 황교안의 이름이 오를 것이라 예상한 이가 많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검사 후배 윤석열의 부상은 검사 선배 황교안의 정치적 입지를 흔들어 놓았다. 2020년 11월, 윤석열 총장에 여의도 정가의 시선이 쏠려 있을 무렵, 부동의 대선주자 1위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검사 선배 황교안은 잊힌 인물 취급을 받고 있다.
검사 선배 황교안의 지지율은 수직 하락했다. 윤석열 총장은 물론이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비교해도 밀리는 수준이다. 지난 4월 제21대 총선의 종로 국회의원 선거 패배 이후 정치적 숨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정치 환경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 담당 부장검사 회의 참석자들과 오찬을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흥미로운 점은 검사 출신 인사들의 몸값 고공 행진이다. 범야권 대선주자 중 여권 후보를 제치고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기록한 경험이 있는 인물은 황교안과 윤석열 두 사람 뿐이다. 윤석열 총장의 경우 일부 여론조사의 결과라는 점에서 1위라는 기록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지만 윤석열 총장이 범야권 대선주자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공직 인생 대부분을 검사로 지낸 인물들이 범야권 정치 고수들을 제치고 연이어 차기 대선 레이스 선두권으로 치고 나오는 장면은 지난 대선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모습이다. 이는 여의도 정가의 기존 정치인들이 곱씹어볼 대목이다. 기존 정치인에 대한 염증이 빚어낸 결과물일 수도 있고, 현재의 정치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국가 지도자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 국방에 이르기까지 국정 전반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토대로 국민을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정치인 누구나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단련의 과정을 통해 '정치 근육'을 키우는 데 성공한 인물이 지도자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검사 선배 황교안은 현재 힘겨운 상황에 놓였지만 그것 역시 정치 근육을 키우는 단련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토대로 더욱 단단하고 강력한 정치 근육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다시 국민의 부름을 받을지 모른다.
검사 후배 윤석열의 미래는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정치 근육을 키울 생각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하지만 마음을 품고 있다면 단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재능을 보이며 연착륙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거꾸로 꽃길처럼 보였던 미래가 고행의 길로 바뀔 수도 있다. 검찰총장이라는 겉옷을 벗은 상태, 자연인 신분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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