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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체험' BJ 생중계 중 변사체 발견…시청자들 '충격'

수정 2019.12.13 14:41입력 2019.12.13 14:24
'양산의영웅-리얼리티 공포체험 NO.1'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중 특정표현과 무관.사진=유튜브 '양산의영웅-리얼리티 공포체험 NO.1' 화면 캡처

[아시아경제 김성열 인턴기자] 인터넷 생방송 진행자가 방송 중 변사체를 발견했다며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3일 새벽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서 ‘양산의영웅-리얼리티 공포체험 NO.1'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BJ 오모(39) 씨가 충청남도 논산시 반월동의 한 폐 모텔에서 생방송을 하던 중 변사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날 새벽 3시께 아프리카TV에서 생중계를 하던 오 씨는 모텔 계단을 올라가다 사체를 발견했다. 오 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방송을 급하게 종료했다. 오 씨는 시신 최초 발견자로 참고인 조사까지 마쳤다.


해당 방송은 시신을 직접적으로 찍어, 혐오스러운 장면 때문에 다시보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로 인해 캡처 화면이 순식간에 디시인사이드 '인터넷방송' 갤러리 등을 포함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됐다. 현재 인터넷에는 캡처 화면들 또한 삭제된 상태다.




김성열 인턴기자 kary033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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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차기 지도자 호감도 50% '1위'…황교안은 18%
수정 2019.12.13 19:27입력 2019.12.13 11:26
이낙연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중 고위급 기업인 면담'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강나훔 기자] 차기 정치 지도자 호감도 조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50%의 호감도로 1위를 차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반면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줄곧 2위를 기록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호감도가 18%에 불과해 큰 대조를 보였다.


한국갤럽은 지난 10~12일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5% 이상 응답된 7명 각각에 대해 호감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총리가 50%의 호감도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13일 밝혔다.


이어 심상정 정의당 대표 39%, 박원순 서울시장 32%, 이재명 경기지사 29%,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23%,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18%,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17%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총리는 이번 조사에서 유일하게 호감도(50%)가 비호감도(33%)보다 높은 인물로 조사됐다. 민주당·정의당 지지층 등 성향 진보층에서 호감도가 약 70%에 달했다. 연령별 호감도는 30~50대에서 60% 내외였고, 60대 이상에서도 48%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다만 20대에서는 28%로 다소 낮았다.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줄곧 2위를 기록한 황 대표는 비호감도가 67%로 호감도(18%)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 한국당 지지층에서의 그의 호감도는 60%로 높았지만, 전체 보수층에서는 37%로 낮았다. 60대 이상(29%), 대구·경북(25%) 등에서도 30%를 밑돌았다.


이 지사도 비호감도(55%)가 호감도(29%)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지지층, 40대, 성향 진보층, 광주·전라 지역 등에서는 호감·비호감이 엇비슷했고, 그 외 응답자 특성에서는 대체로 비호감도가 높았다.


심 대표의 경우 호감도(39%)와 비호감도(45%)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소속 정당인 정의당 지지층에서의 호감도는 87%,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6%, 성향 진보층에서는 62%로 나타났다. 연령별 호감도는 30·40대에서 40%대 후반, 20·50대에서도 40% 내외로 나타났지만 60대 이상에서는 26%로 낮았다.


박 시장은 '호감 간다'는 32%, '호감 가지 않는다'는 53%로 집계됐다. 소속 정당인 민주당 지지층이나 성향 진보층에서는 호감도가 50%를 웃돌았다. 연령별 호감도는 30·40대에서 40% 내외, 20대와 50대 이상에서는 30%를 밑돌았다.


유 의원은 대부분의 응답자 특성에서 비호감도가 높았지만 아직 당적을 두고 있는 바른미래당 지지층에서만큼은 호감도가 59%로 높게 나타났다. 저연령일수록 호감도가 낮았던 다른 인물들과 달리 반대양상을 보였다.


안 전 대표는 이번 조사에서 비호감도(69%)가 가장 높은 인물로 꼽혔다. 소속 정당인 바른미래당 지지층을 포함해 대부분의 응답자 특성에서 비호감도가 더 높다.


이번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6527명에게 접촉해 최종 1001명이 응답을 완료, 15%의 응답률을 기록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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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난징대학살
수정 2022.03.25 13:58입력 2019.12.13 10:40

중국인 30만 명이 1937년 12월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되었다. 제국주의 일본이 난징을 점령한 다음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것이다. 일본군은 항복한 중국군 포로뿐 아니라 젊은 남자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내 성 외곽이나 양쯔강 하구에 모아 놓고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당시의 일을 전하는 기록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어 차마 말이나 글로 옮기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른바 난징대학살.


일본군은 포로나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죽였다. 수없이 많은 중국인이 일본군의 총검술 훈련용 표적이나 목 베기 내기의 희생물이 되었다. 산 채로 파묻히거나 칼부림에 난도질당하기도 했다. 난징의 한 광장에서는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해 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세워 놓고 몸에 석유를 부은 다음 기관총을 난사하였다. 총탄이 사람들의 몸을 꿰뚫을 때 석유에 불이 붙어 시체더미가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인간 사냥'은 여성들에게 더욱 혹심했다. '집단윤간', '선간후살(先姦後殺ㆍ강간한 뒤에 죽임)'은 채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부터 60, 70대 노파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수녀와 비구니를 포함한 난징의 여성들을 보이는 대로 능욕했다. 난징대학살에 참가한 한 일본군의 일기가 전한다. 그는 "심심하던 중 중국인을 죽이는 일로 무료함을 달랜다. 산 채로 묻어버리거나 장작불로 태워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죽이기도 했다"고 적었다.



난징의 자금산 기슭에서는 일본군 소위 무카이 도시아키와 노다 쓰요시가 일본도로 중국인 목 베기 내기를 했다. 1937년 12월13일자 '도쿄 니치니치 신문'이 보도한 '100인 참수 경쟁'이다.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를 송고한 기자 아사미와 스즈키가 두 사람의 살인내기를 촬영할 때 무카이는 106명, 노다는 105명을 죽인 뒤였다. 그러나 누가 먼저 100명을 죽였는지 몰라 먼저 150명을 죽인 자를 승자로 인정하기로 했다.

1938년 1월, 히로다 고키 일본 외무대신이 주미 일본대사관에 비밀 전문을 보낸다. "일본군이 저지른 모든 행위와 폭력 수단은 아틸라 왕과 흉노족을 연상시킨다. 최소 30만 명의 민간인이 살육됐고, 많은 수는 극히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방식으로 살해됐다. 전투가 끝난 지 수주가 지난 지역에서도 약탈과 아동 강간 등 잔혹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학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난징의 서방 외교관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매수를 시도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 장쑤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는 2000년부터 10년 동안 세계를 누비며 난징대학살에 관한 1차 사료를 모아 집대성한 총 78권 규모의 '난징대학살 사료집'을 2011년 7월6일 완간했다. 본 사료집 72권, 부록 6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글자 수는 4000만 자나 된다. 역사서 '사기'(50만 자)의 80배, '자치통감'(300만 자)의 13배에 이른다. 사료집은 난징대학살이 일본 군부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증명한다.


난징대학살은 역사적 사실로 대부분 확인됐다. 이 사건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난징대학살의 실체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 둘째 전쟁수행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며 희생자 수도 몇 만 명에 불과했다는 시각. 셋째 난징대학살은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가 날조한 거짓으로 전혀 근거가 없고 증거 사진들도 모두 조작되었다는 주장. 일본의 태도가 이러하니 참회와 사죄, 용서에 이르는 길은 멀다.


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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