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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신상 공개, 관련 법령 검토"

수정 2019.09.19 10:19입력 2019.09.19 10:17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우리나라 범죄 사상 역대 최악의 미제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된 가운데 경찰이 용의자 신상 공개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9일 오전 9시30분 사건 브리핑을 갖고 “용의자 신상 공개와 관련된 법령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사건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찰이 용의자 신상 공개를 고려한다는 것은 진실 규명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날 브리핑에 나선 반기수 경기남부청 2부장은 “DNA 기록이 일치한다는 것은 하나의 수사 단서”라면서 “과거 수사기록을 살펴보고 용의자 주변에 대한 수사 등을 통해 최대한 진실을 규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DNA 조사 기록을 토대로 용의자가 실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인지 여부를 일일이 확인할 방침이다.


한편,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당시 경기 화성군(현 화성시)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강간ㆍ살해된 미해결 사건이다.


이 사건들의 공소시효는 범행 당시의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범행 후 15년이 2001년 9월14일에서 2006년 4월2일 사이에 모두 만료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장기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수사 경찰 "화성연쇄살인사건, 구천 떠도는 원혼들이 도와준 듯"…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은?
수정 2023.03.02 19:13입력 2019.09.19 14:24

'그놈 목소리'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
11년만에 유골 발견된 '개구리 소년들'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유병돈 기자] “구천을 떠도는 피해자 원혼들이 사건을 해결하라고 한 것 같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밝혀진 가운데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배용주 청장은 19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청에서 열린 화성연쇄살인사건 비공개 배경설명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그 놈 목소리’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 ‘개구리 소년’ 사건과 더불어 대한민국 최악의 3대 미제사건으로 꼽힌다.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

1991년 1월 19일 이형호(당시 9세)군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집 근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후 44일 동안 64차례에 걸친 범인의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범인은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에 가명으로 계좌를 개설해 총 4000만원을 입금하라 지시했다가 10여곳의 공중 전화부스 등으로 몸값 인수장소를 계속해서 바꿨다. 형호군의 가족은 물론 경찰들까지 범인에게 내내 끌려 다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유괴범을 코앞에서 세 번이나 놓치면서 형호군을 구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형호군은 그 해 3월 13일 한강공원 인근 배수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질식사 한 것으로 밝혀져 더 큰 공분을 샀다.

2002년 9월 26일, 개구리소년 추정 유골 발견 현장[이미지출처=연합뉴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같은 해 3월 26일 대구 달서구에서는 초등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인근 와룡산으로 놀러 갔다가 실종됐다. 실종 초기 가족들은 가출 동기가 없다며 주장했지만, 경찰은 ‘5명이나 한꺼번에 납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사건이 알려지면서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모든 군인과 경찰이 수색작업에 총동원되고 범국민적 운동까지 번졌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5명의 아이들은 실종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 도토리를 줍기 위해 와룡산에 올랐던 한 시민에 의해 유골로 발견됐다. 이때도 경찰은 아이들의 사인을 자연사라고 우기다가 타살이란 법의학적 결론이 나오자 범인 수사에 나섰으나 아직 범인을 특정조차 못하고 있다.


▲그리고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첫 시작은 1986년 9월 15일 경기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였다. 이모(당시 71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한 달 뒤인 10월 20일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 농수로에서 박모(당시 25세)씨가 나체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어서 같은 해 12월 12일과 14일 권모(당시 24세)씨, 이모(당시 23세)씨가 잇따라 살해되며 화성연쇄살인사건이란 명칭이 처음 붙었다. 살인은 1991년 4월3일까지 경기 화성시 일대 반경 3㎞내에서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모두 알몸이나 반나체 상태로 살해됐으며, 5년간 동일한 수법의 범행이 이뤄지며 총 1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모두 205만명의 인원을 투입해 용의자와 참고인 등 2만1280명을 조사했지만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 지문대조를 한 용의자는 4만116명, 모발감정을 한 용의자는 180명이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를 받다 다른 범죄가 드러나 붙잡힌 사람만 1495명에 이른다.


범인은 주로 버스정류장과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있다가 범행했고, 흉기를 살해도구로 쓰지 않았다. 1990년 11월 15일 9번째 희생자 김양의 사건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도 제작됐다. 2007년 이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고,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권씨 사건의 공소시효도 2006년 4월2일로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분류됐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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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누구…'청주 처제 살인사건' 무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②]
수정 2019.09.19 11:08입력 2019.09.19 07:08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처제 살해범'…3건 DNA 일치
경찰 작성 몽타주와 비슷한 외모…범행 당시 27세

화성 연쇄살인사건 관련 한 피의자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됐다. 사건이 최초 발생한 1986년 9월 이후 33년 만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장기 미제로 남아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에서 검출된 유전자(DNA)가 현재 강간 살인죄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춘재(56)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범행 당시 이춘재는 27세였다. 경찰에 따르면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 사건 10건 가운데 3건에서 나온 DNA와 이 용의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건의 살인사건 중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사건이 용의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미제사건수사팀이 증거물 감정 등을 진행하다 DNA 분석과 대조를 의뢰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이춘재는 지난 1994년 처제를 상대로 저지른 성폭행·살인으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3년 12월 18일 아내가 가출한 후 앙심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6~1991년 경기 화성 등 지역에서 발생한 이른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당시 유력한 용의자 수배 전단.

94년 1월 충북 청주 흥덕구 자신의 집을 찾아온 처제(당시 20)가 마시는 음료수에 수면제를 타 먹인 이춘재는 처제가 잠들자 성폭행했다. 이후 범행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처제를 살해했다. 피해자 시신은 집에서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유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데다 뉘우침이 없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며 이춘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성폭행 이후 살해까지 계획적으로 이뤄졌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1995년 1월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이후 이춘재는 4개월 뒤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같은 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 무기징역수로 복역 중이다.


1987년 1월 경찰이 연쇄살인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춘재의 처제 살해 수법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유사하다. 이춘재가 살해한 처제 시신은 스타킹으로 묶여 싸여 있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스타킹이나 양말 속옷 등 피해자의 옷가지가 살해도구로 이용됐다. 끈 등을 이용해 목을 졸라 살해하는 교살이 7건, 손 등 신체부위로 목을 눌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액살이 2건, 신체 주요부위를 훼손한 케이스도 4건이다.


특히 이춘재가 저지른 범행으로 알려진 9차 사건인 90년 11월15일 태안읍 병점리(현 병점동) 야산에서 발생한 김 모 양(당시 14)의 경우 손과 발이 결박, 브래지어로 재갈이 물린채 발견됐다. 또 볼펜, 포크, 수저, 면도칼로 신체주요부위가 훼손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처제 살해 직후 시신을 유기한 방식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비슷했다. 이춘재는 처제를 살해한 후 시신을 집에서 약 800m 떨어진 창고에 유기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때도 발견된 시신들은 농수로나 야산 등 인근에 유기돼 있었다.


이춘재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1988년 작성해 배포한 몽타주와 비슷한 생김새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성폭행 현장을 가까스로 탈출한 목숨을 건진 피해 여성과 용의자를 태운 버스운전사 등의 진술을 종합해 범인을 24세부터 27세까지, 키 165∼170cm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성으로 특정했다.


몽타주에 기술된 인상착의에 따르면 '(얼굴이) 갸름하고 보통 체격,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로움, 평소 구부정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춘재 인상착의 역시 이와 비슷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춘재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살인사건은 2015년 법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991년에 마지막 사건이 벌어져 2006년에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이다.


경찰은 오늘(19일) 오전 9시30분 브리핑을 통해 지금까지 파악한 용의자와 화성 사건의 관련성, 이후 수사 방향 등을 밝힐 예정이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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