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양궁 사건'에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해법이 있습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진 이야기의 일부다.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96년 애틀랜타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양궁 용품 시장을 주도하던 미국 호이트 사에서 성능이 우수한 신제품 활을 우리 선수단에게는 판매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거듭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꼼수였다. 당시 우리 남자 대표팀이 호이트에서 만든 활을 사용했는데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활을 써 금메달을 놓쳤고, 신제품을 쓴 미국이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석권했다. 대한양궁협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대표팀이 해외 기업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국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경기에서 한국산 활만 사용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덕분에 우리나라 양궁 용품 제조업체가 급성장했다. 이후로도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와 투자를 확대하면서 이제는 한국산 활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온라인 커뮤니티 내용 중)
이 이야기는 '감동 실화'라는 제목을 덧붙여 유튜브에서도 인용됐다. "거대기업의 부당한 횡포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 기술력과 제도적 지원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참고한다면 일본의 '경제보복'을 이겨내는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미담처럼 떠도는 것이다. 10여년 전부터 온라인에 등장한 뒤 달아오른 반일 감정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애틀랜타 올림픽 양궁 사건'은 과연 사실일까.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는 4일 "어디서부터 그런 이야기가 시작됐는지 알 수 없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 전무는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양궁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다섯 차례 올림픽에서 양궁 대표팀의 코치와 감독으로 숱한 금메달을 일군 한국 양궁의 '대부'다. 그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남자 대표팀을 지도했지만 '한국 선수들을 방해하기 위해 호이트사에서 제품을 공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며 "당시 호이트에서 만든 활이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좋은 제품을 고르기 위해 미국에 간 사실은 있지만 우리나라에만 좋지 않은 활을 보냈다는 건 사실관계가 완전히 잘못된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남자 양궁 금메달을 휩쓴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자국 심판 배정 등 일부 논란이 있었지만 장비 문제와는 무관하다"면서 "양궁은 세트제 도입 등 꾸준히 경기 규칙을 바꿨는데 그 때마다 '한국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이 역시 보는 재미와 중계방송의 편의성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 우리나라만 유독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양궁 강국 입장에서도 자극을 받아 더 분발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양궁협회가 1997년부터 국내 초·중학교 양궁 대회에서 국산 활만 사용하도록 규정으로 명시한 것도 호이트 활 이야기와는 다르다고 장 전무는 주장했다. 그는 "당시 호이트 제품의 가격이 워낙 비싸 유소년 선수와 학부모에게는 부담이 컸다"며 "외화 문제도 있고, 보다 많은 선수들이 장비에 대한 부담을 덜고 양궁에 입문하도록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규정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덕분에 국산 장비가 많이 개발되고, 품질도 우수해 한국 용품 업체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은 사실이다. 장 전무는 "애틀랜타 올림픽 때만 해도 우리 선수들이 전부 외국 제품을 썼다"며 "이제는 국산 활로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일본이 수출규제에 이어 지난 2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며 한·일 갈등이 극에 달하자 호이트 활 이야기처럼 반일 감정에 편승한 '가짜뉴스'가 활개를 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주 무대인데 여기서는 '반한' 감정을 자극하는 게시물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어를 사용하는 한 트위터 이용자는 최근 "친구가 서울역 근처에서 한국인 남성 6명에게 뭇매를 맞았다"며 "한국을 여행하시는 분은 부디 조심하시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를 본뜬 그림에 "서울과 부산에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하라는 '레벨2 경보'가 내려졌다"며 "일본 외무성이 한국 여행 경보를 상향 조정했다"는 게시물이 떠돌았다. 그러나 경찰과 주한 일본대사관이 확인한 결과 이는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3일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에 국민과 국가의 역량을 모아 체계적으로 대처하겠다"면서도 "국민께 불필요한 혼란과 불안을 드리는 왜곡된 정보는 즉각 바로잡고 분명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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