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서 또 변신한 배두나
기성 틀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스포트라이트에 비켜나 있어도 OK
현대어 섞인 사극 말투로 논란 있지만 진정성 간파하고 감독 설득
워쇼스키 등 거장이 주목한 '아웃사이더 느낌, 스며드는 연기' 주효
배우 배두나(40)의 행보는 독특하다. 기성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도전도 거리낌없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도 할리우드 문을 두들긴다. 그녀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년)', '주피터 어센딩(2015년)'에 출연하며 통역도 두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고행의 길 위에서 위태로움을 즐겼다. 두 작품을 연출한 라나(54)ㆍ릴리(52) 워쇼스키 자매 감독은 배두나의 오묘한 매력에 푹 빠진 듯하다. "아웃사이더의 느낌을 누구보다 잘 표현한다.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면서도 일관되게 자신만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척박한 환경에서 꿈틀대는 삶의 에너지다. 중성적 매력으로 덧칠해 인상을 남기는 재주가 남다르다. 배두나는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과 거리가 있다. 커다란 눈과 동그란 코로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광대뼈가 발달해 강인해 보인다. 그가 맡은 배역들은 하나같이 능동적이다. '플란다스의 개(2000년)'에서 현남은 후드티를 질끈 동여매고 강아지 유괴범을 추격한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년)'에서 몽상가 태희는 어느 한군데 오래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복수는 나의 것(2002년)'에서 영미는 연인에게 유괴를 제안해 실행에 옮기고, '괴물(2006년)'에서 남주는 어린 동생을 구하고자 괴물에게 활을 겨눈다.
억새풀처럼 강한 생명력을 드러내면서 기존에 자리했던 스타성은 많이 지워졌다. 패션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빈자리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리얼리티로 채워졌다. 배우로서 큰 장점이지만, 국내 상업영화 시장에서는 독이 됐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마다 흥행에 실패했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2003년)'는 4만8402명, '공기인형(2009년)'은 1만2371명, '도희야(2014년)'는 10만6511명을 모으는데 머물렀다. 하지원(41)과 함께 주연한 '코리아(2012년ㆍ187만2681명)' 또한 200만 명 이상 동원하지 못했다. 배우의 스타성을 우선시하는 한국 영화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처지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근래 주연한 '터널(2016년)'이나 '마약왕(2018년)'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중이 미미하거나 배역을 묘사할 여지가 부족했다. 특히 마약왕에서는 요정 출신 여성의 면모도, 로비스트로서의 활동도 나타나지 않는다. 모두 다른 배역들의 설명으로 대체된다. 주인공 이두삼(송강호)과 사랑에 빠지는 계기도 생략된다. 여성 배역을 남성 배역의 대상으로 간주하거나 엄마, 애인 등으로 한정하는 경향에 치인 희생자나 다름없다. 그녀가 예상한 결과는 아닐 거다. 배두나는 시나리오를 까다롭게 선별하기로 유명하다. "납득이 되지 않는 작품은 참여하지 않는다. 한 신이라도 그렇다면 포기한다. 시나리오를 수정하겠다고 제안해오지만, 배우 한 명 때문에 글이 바뀌는 걸 원치 않는다."
이쯤 되면 미국 진출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찾은 돌파구로 보인다. 일부 여자 배우들은 외부 활동이나 이미지 변신을 통해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배두나는 다르다.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도 못하겠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20대에 '두나's 런던놀이', '두나's 도쿄놀이', '두나's 서울놀이'에서 솔직한 글을 줄이고 사진을 더 많이 쓴 것도, 이후 더는 책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도, 배우로서 저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신비주의와는 다른 이야기다. 매체가 보지 않는 일상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걸 좋아한다."
배우로서 고수하는 가치관은 작품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맨얼굴을 과감하게 드러내는가 하면, 울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연기도 꺼리지 않는다. 그녀와 호흡을 맞춘 한 남자 배우는 "카메라에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로지 맡은 배역을 그리는데 충실하다"고 했다. "나이에 맞는 배역을 연기해서 호흡을 주고받기가 수월하다"고 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연출한 톰 티크베어(54) 감독은 "주어진 배역에 누구보다 쉽게 접근한다. 일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문화적 배경과 관계없이 배두나가 가진 최대 강점"이라고 했다.
전 세계로 송출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 섭외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두나는 좀비들이 창궐한 조선에서 역병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녀 서비를 연기한다. 강한 심성으로 사람들을 구하지만 당시 여성이 겪어야 했을 시대적 한계에 봉착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응어리는 굶주림 끝에서 좀비가 되어버린 민초들의 슬픔과 동일선상에 놓인다. 그녀는 민초들의 마음에 녹아들어 동정심을 유발하면서도 능동적인 활약으로 주인공인 왕세자 이창(주지훈)의 변화에 힘을 보탠다. 이는 현대어와 사극 말투가 뒤섞였다는 이유로 연기력 논란이 인 배경이기도 하다. 기존 틀을 답습할 경우 여느 사극처럼 복종적 상하 관계로 재생산돼 서비의 개성은 퇴보하고 그녀를 통해 부각하고자 한 극의 부수적인 주제 또한 흐려졌을 수 있다.
배두나는 구조적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김성훈(48) 감독은 "익숙함을 탈피하면서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연기를 원했는데, 첫 촬영에서 모든 점을 감안하고 새로운 표현을 보여줘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퓨전 사극으로의 해석이 아니었다. 서비에 효과적으로 맞물리는 올바른 시도였다"며 "배역의 진정성을 간파하고 감독을 설득하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배우"라고 했다. 그 표현에 힘을 주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민초들의 고난과 불안을 은유적으로 그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배두나가 초창기부터 그려온 순수하고 빈틈이 많은 사람이다. 작은 것, 일상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이야기를 전하는데 여전히 관심이 많다. 스포트라이트에서 한참 비켜나 있더라도 연연하지 않는다. 극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작품에 일부가 되기를 희망한다. 워쇼스키 자매 감독이 주목한 아웃사이더의 느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대중보다 영화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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