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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인터뷰] AV배우 백세리 - 초등학교 교사, 성인영화 배우가 된 이유는?

수정 2025.01.22 21:45입력 2018.09.20 19:53

초등학교 교사에서 AV 배우로, 최근 현장 스태프와 불거진 성추행 재판에서 승소한 여성으로. 늘 당당한 그녀에게서 듣는 담담하지만 놀라운 ‘성인영화계’ 이야기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최종화 PD] 모두가 선망하는 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자신만의 과감한 커리어를 쌓고 있는 배우가 있다. 자신을 당당하게 ‘AV배우’라고 소개하는 백세리는 2012년 데뷔 이래 30편 이상의 성인 영화에 출연한 업계 베테랑으로, 매니아들 사이에선 다작 배우로도 명성이 높다. 지난해 돌연 은퇴 선언 후 작품 활동이 없던 그녀는 긴 휴식기 동안 힘든 싸움을 했노라고 털어놓는다. 교사에서 AV배우로, 그리고 촬영현장에서 PD에게 당한 불미스러운 일로 ‘미투’ 당사자가 된 배우 백세리를 ‘금지된 인터뷰’가 만나보았다.

- 교사라는 선망의 직업을 그만두고 AV배우가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배우 백세리 : 학창시절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학생이었어요. (웃음) 전교 1등은 가끔, 반에서 1등은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죠. 직업적 안정성을 생각해서 교대 진학을 선택했고, 졸업 후 교사 생활을 했는데 안정성보다 관료제에서 오는 압박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어요. 숨통을 조이는 느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으로 직장생활을 억지로 견뎌냈죠. 그때 목표를 세웠어요. 일정 금액을 모으면 교사를 그만두기로. 차근차근 월급을 모아 목표를 이뤘을 때 과감하게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 사기를 당했고, 그때 모은 돈은 전부 날려버렸어요.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우연히 성인배우 모집 글을 보게 됐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하기에 AV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결국 돈 때문에 직업을 택한 셈이죠.

- AV배우 라는 직업을 갖기 전, 이쪽 업계에 평소에도 특별히 관심을 가졌었나요?

배우 백세리 : 전 남자친구가 굉장한 야동 중독자였어요. 그래서 한 번 그 친구가 보는 영상을 제가 몰래 보게 됐죠. 처음 봤을 땐 그 수위나, 여러 묘사가 충격적이었어요. 이런 영상 찍는 배우들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죠. 그런데 거부감이 들진 않았고, “아, 이런 게 있구나” 하는, 어떤 새로운 발견을 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자연히 관심이 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녀는 교대 졸업 후 초등교사로 임용 됐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늘 괴로웠다고 말한다.

-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AV배우가 되셨다고 했는데, 실제 수입을 교사 때와 비교해본다면 ?

배우 백세리 : 사실 AV배우 활동만으론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제가 교사 시절 첫 호봉이 월급 200만원 정도였는데, 처음 데뷔했을 땐 그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죠. 오히려 저는 배우 활동보다 BJ 활동으로 수입이 훨씬 많았어요. AV배우, BJ, 누드모델로 활동하다 보니 궤도에 오른 후엔 교사 시절보다 10배 정도 많이 벌게 됐습니다.

- 업계에서 꾸준히 활동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또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배우 백세리 : AV배우가 되려면 일단 여자는 가슴이 무조건 커야 돼요. 그래야 캐스팅이 잘되거든요. (웃음) 저는 원래 A컵, 그것도 텅 빈 A컵이었어요. 그래서 일 시작하고 돈을 모아서 제일 먼저 한 게 가슴 수술이에요. 한쪽당 260mL씩 넣었는데, 저는 사실 제 가슴이 맘에 들었거든요. 하지만 AV배우로 활동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술을 감행했죠. 사실 지금은 좀 빼고 싶어요. 너무 무거워서. 수술 다음으론 제가 찍은 영상, 영화를 빼놓지 않고 다 챙겨 봐요. 직접 결제하고 다시 돌려보면서 이런 부분은 잘했고, 이런 부분은 아쉽고, 고쳐야 할 점을 찾아보고 댓글이나 반응도 꼼꼼히 살펴보죠. 아, 그리고 야한 영화는 일부러 찾아보고 영감을 얻거나 이런 부분은 내가 들어가는 작품 캐릭터에 도입해도 괜찮겠다 하는 부분을 연구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연기하는 배우이자 여성 입장에서, 남성향 콘텐츠인 성인영화 시나리오는 어떻게 보셨나요?

배우 백세리 : 대부분 납득이 안 가죠. 등장인물들이 만나기만 하면, 말도 안 되는, 스물 몇 살 차이 나는 친구 아들과 갑자기 관계를 갖고 하는… 솔직히 납득 안가는 시나리오가 많지만, 업계에서 시나리오를 고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납득하려고 노력해요. 배우가 자신의 배역을 선택하는 일은 AV업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오히려 일이 들어오면 “감사합니다, 감독님” “무조건 열심히 잘 할게요” 하는 편이죠. 또 배우 개인의 시나리오 이해도와 무관하게, 남성의 판타지가 반영된 대본들이기 때문에 여자 배우 입장에선 능동적으로 연기를 해야만 하고, 스스로 납득했다 주문을 걸고 연기를 하는 거예요.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요. 받아들이고 열심히 해야죠.

백세리가 출연한 영화 '가족의 재구성' 의 스틸컷.

- 성인영화 업계가 굉장히 좁게 형성되고, 배우·감독·시나리오가 반복되는 현상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배우 백세리 : 대한민국에서 본인이 노출을 하는 성인배우라는 사실을 쉬쉬하거나, 주변에 알리지 않고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런 인식의 배경엔 출연료가 적은 것도 일조했을 거고요. 한국 사회는 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여배우에 대해 ‘걸레’ 또는 ‘창녀’ 등의 수식어를 붙이고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 곳이니까. 여배우들 스스로도 그런 사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 저는 업계 배우분들 중에 이채담씨가 굉장히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업계 원탑인데, 스스로 업계 원탑임을 어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존경스럽죠. 이채담씨 같은 자기 일에 당당한 배우가 많이 나와 줘야 한국 성인영화계도 앞으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AV배우는 출연하면 할수록 ‘작품이 커리어가 되는 게 아니라 손해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가요?

배우 백세리 : 성인영화 소비자 대부분은 영상을 보고 자위행위를 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 면에서 여배우는 성인물에 있어서는 철저히 소모품이죠. 그렇기 때문에 다작을 할수록 점점 ‘퇴물’ 취급을 받고 배우로서의 값어치가 떨어지게 되거든요. 신인 여배우일수록 몸값이 높을 수밖에 없고, 특히 투자자 입장에선 한 번도 벗지 않은 새로운 여배우를 선호하니까. 이때 배우의 연기력은 중요하지 않아요. 오직 비주얼, 몸매에 대한 평가가 절대 기준이 되죠. 이게 현실이고요. 어쨌든 노출을 할수록 배우의 이미지는 그만큼 소모되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연기를 하는 게 배우가 아닐까 생각해요. 업계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그리고 제 경우엔 이미 많이 찍었으니까. 새롭게 입문하는 신인 여배우들이 좀 더 잘될 수 있게 밀어주는 게 맞다고 보고, 또 업계가 잘 되려면 괜찮은 신인 여배우들이 많이 들어오셔야죠. 그 때 저는 자연스럽게 단역이나 조연으로 밀려나겠지만, 제게 배역이 들어오는 데까지는 연기자로서의 마인드를 갖고 임할 겁니다.

백세리는 커리어가 많아질 수록 조·단역으로 밀려나는 현실이 슬프지만은 않으며, 더 새롭고 도전적인 신인 여배우들을 통해 성인영화계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 갑작스러운 은퇴 후 2년여 만에 복귀를 결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배우 백세리 : 2015년 봄, 촬영장에서 영상 PD가 제게 다가와선 “세리야 여기 뭐가 묻었네?” 하면서 제 가슴을 두 번이나 만진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놀라서 벙쪄 있다가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계획적인 추행이었습니다.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제 몸을 자신의 몸을 완벽히 가린 상태에서 이뤄진 범행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우연히 다른 여배우들의 피해 사실을 듣게 됐어요. 같은 PD에게 훨씬 더 높은 수위의 추행을 당했다고. 그때 가해자에게 녹음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걸어 당시 사건에 대한 본인의 진술, 사과를 다 받았어요. 처음엔 가해자도 “나도 그게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전화 줘서 고맙고,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가 아니라, 자기가 회사에서 잘릴까봐 면피용으로 하는 사과로 느껴졌죠. 통화 후 증거를 추가로 확보한 다음에 고발했어요. 재판정에 가니 가해자는 끝까지 부인하더군요. 저는 그때마다 증거,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을 추가로 제출했고, 2년간의 지난한 형사 재판 끝에 승소했습니다. 결국 가해자는 본인이 있던 회사에서 쫓겨났는데, 나중에 보니 본인이 영화사를 차리고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거예요. 저는 그 사람 때문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고, 소송에만 매달리느라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웠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은퇴할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복귀를 하게 됐습니다.

- AV배우 백세리와 일반인 백세리가 남자를 보는 관점은 어떻게 다른가요?

배우 백세리 : 제가 고3 때 자궁에 물혹이 생겨 큰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난소 한 쪽을 제거해야 했어요. 그 뒤로 저는 성욕이 없어진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영화 속 제 캐릭터는 밝히는 색녀 이미지가 대부분이지만, 현실에서의 저는 무성애자에 가까워요. 남자와 관계를 하면서 느껴본 적이 없고, 오히려 혼자 할 때 많이 느끼죠. 하지만 배우로선 프로의식을 갖고 느끼는 순간을 최대한 연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AV배우로서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배우 백세리 : 사실 제가 다작을 했기 때문에 죄인 취급하는 분들이 많아요. 불만 있는 분들은 제 작품을 안 보셨으면 해요. 대신 제 작품을 찾아서 보시는 분들께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조연, 단역으로 활동하지만, 앞으로 좋은 신인 여배우분들이 업계에 도전장을 내고 활동해주셔야 이 업계, 시장이 좀 더 커지고, 저를 비롯한 조·단역 배우도 가늘고 길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런 현실이 슬프거나 속상하기보다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앞으로도 백세리,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최종화 PD fina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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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의 Defence Club]北, 군사합의서 체결전 신형방사포 전진배치
수정 2018.09.20 10:56입력 2018.09.20 10:56
북한의 해안포부대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 이전부터 300mm 장사정포를 개성공단 북측에 추가로 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체결한데 이어 추가적인 군축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남측만 스스로 눈을 가리고 손을 묶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군 관계자는 "북한이 지난 6월 장성급 군사회담을 전후해 개성공단 북측지역 부대에 300mm 방사포를 추가배치하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고 현재 50여문을 배치했다"고 전했다.이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의 이행이 남측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군축은 군비 축소의 줄인 말로 병력과 장비, 무기, 시설 등 현재 갖고 있는 각종 군수물자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군사적 신뢰 구축 → 운용적 군비통제 → 구조적 군비통제' 등 3단계로 이뤄진다. 지난 5월 군사분계선(MDL) 일대 확성기 철거, 7월 서해지구 군통신선 복구, 8월 동해지구 군통신선 개통 등을 언급하며 군축 1단계 과정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북한은 군사분야 합의서를 군사적 신뢰구축의 일환으로 여기고 우리 군의 포병부대를 MDL 이남지역의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 운용적 군비통제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운용적 군비통제를 남북간에 적용할 경우 우리 군이 불리해진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해 개발한 300mm 방사포는 운용적 군비통제에 적용하더라도 우리 측을 공격할 수 있다. 군 당국은 300mm 방사포의 사거리가 170km~200km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일대에서 300mm 방사포를 발사한다면 수도권은 물론 육ㆍ해ㆍ공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까지 공격이 가능하다. 반면 한ㆍ미는 장사정포를 막기 위해 배치한 포의 사거리는 턱없이 짧아진다. K-9자주포의 사거리는 40km, 다련장 로켓포(MLRS) '천무'의 사거리는 80km다.

이런 군사적 불리함은 북방한계선(NLL)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국방부는 서해 해상적대행위 중단구역의 남북 길이가 북측 40㎞, 남측 40㎞로 동등하게 설정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백령도 이북 NLL 기준으로 보면 북쪽 약 50㎞, 남쪽 약 85㎞다. 북측이 NLL인근 300mm 방사포를 추가로 배치할 경우 해상적대행위 중단구역이 넓어진 우리 군만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서해 해상적대행위 중단구역의 남북 길이를 40㎞로 동등하다고 설명했던 국방부는 "단순 실수"라고 다시 해명했다. 특히 어떤 기준을 놓고 해상적대행위 중단구역을 정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어 NLL을 사실상 양보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남북은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으로 10~40㎞ 이내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공중정찰 활동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 조항 또한 북한은 한ㆍ미군에 비해 정찰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 군은 정찰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 군은 전방지역을 감시하기 위해 새매(RF-16)정찰기 등을 이용해 영상을 촬영한다. 하지만 비행금지구역을 40km으로 설정해 고도를 높여 비행을 하게 되면 촬영은 쉽지 않다. 새매정찰기에 장착된 전자광학(EO)ㆍ적외선(IR)장비는 구름에 가리면 촬영이 불가능하다. 육군이 보유한 송골매, 서처 등 저고도 무인기도 고도를 높여 비행을 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다.

군 관계자는 NLL 기준 해상 면적으로 보면 서해 해상적대행위 중단구역에서 남측 해상이 북측 해상보다 훨씬 넓다는 지적에 대해 "북한 황해도 해안에는 해안포 등이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어 단순히 해상 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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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최고봉으로 알려진 장군봉, 원래 이름이 '병사봉'이라고요?
수정 2018.09.20 09:51입력 2018.09.20 09:47
김정일이 '병사봉'을 '장군봉'으로 바꿔..."백두혈통 격에 안 맞는다"
실제 병사봉의 병사는 '병마절도사'의 줄임말
조중변계조약 따라 북중 분할... 통일 이후 국경분쟁 예상

지난해 12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방문모습(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을 맞은 20일, 남북 정상이 함께 최초로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을 등정하기로 하면서 백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두산은 단군신화에서 단군왕검이 신시를 세운 곳으로 알려져있으며, 우리나라 한민족과 중국의 만주족이 공통으로 중시하는 영산(靈山)으로 유명하다.

20일 오전 6시40분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을 떠나 백두산으로 출발했다. 두 정상은 비행편으로 평양순안공항에서 삼지연공항으로 이동한 뒤, 이곳에서 버스로 백두산까지 이동한다. 두 정상은 먼저 백두산 최고봉으로 알려진 장군봉에 오른 뒤, 기상상태에 따라 천지도 함께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백두산 최고봉의 이름을 북한에서는 모두 '장군봉'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병사봉(兵使峰)'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부터 병사봉으로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장군봉이란 이름은 김정일 위원장이 1963년, 백두산에 방문했을 때 붙은 이름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백두산 최고봉 이름이 병사봉이란 이야기를 듣고, 김일성 주석 탄생지에 걸맞지 않다고 장군봉으로 바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병사봉의 이름에 따른 오해로, 원래 병사봉은 일반 사병을 뜻하는 '병사(兵士)'가 아니라 조선시대 지역사령관이자 고위 장수를 뜻하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줄임말인 '병사(兵使)'에서 온 이름이다. 조선시대 동북방면 일대를 수호하는 장수로 '북병사(北兵使)'란 직함이 있었는데, 여기서 온 말로 추정된다. 당시 함경도 지역은 방어지역이 넓은 편이라 함흥에 관찰사가 주둔하며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겸직하고, 북청(北靑) 지역과 경성(鏡城) 지역에 별도의 병마절도사가 주둔했다. 북청에 근무하던 병마절도사를 흔히 북병사라 칭했다고 한다.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 일대 모습(사진=두산백과)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이름까지 바꿨을 정도로 북한에서는 백두산이 단순히 민족의 영산 뿐만 아니라 지배가문인 김씨 일가를 상징하는 산이라 매우 중시되는 산이다. 김씨 일가를 '백두혈통'이라고 호칭하는 것도 지배자에 대한 신격화 작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에는 출생지를 백두산 밀영이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실제 태어난 곳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로 알려져있다.

백두산은 최고봉 뿐만 아니라 산 이름 자체도 여러 별칭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흔히 '장백산(長白山)'이라고 칭한다. 앞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이르기까지 '태백산'이란 호칭도 많이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장백산이란 표현이 제법 등장한다. 장백산이란 호칭은 우리민족과 함께 이곳을 성스러운 영산으로 신봉하던 만주족의 말에서 나왔다고 알려져있다. 만주어로 백두산은 '골민 샹기얀 알린(Golmin Sanggiyan Alin)'이라고 부르는데, '크고 흰 산'이란 뜻이라고 하며, 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 장백산이라고 알려져있다.

현재 백두산은 6.25 전쟁 이후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백두산 천지를 기준으로 54.5%는 북한령으로, 나머지 45.5%는 중국령으로 분할돼있다. 백두산 분할은 조선과 청이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1712년 처음 시작됐으며, 1909년 일본과 청나라 사이 맺어진 간도협약 때도 백두산 분할 문제가 거론됐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천지는 물론 백두산 전역을 우리나라 영토로 지도에 표기하고 있다. 이로인해 통일 이후 국경분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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